인공지능 동시통역은 불가능하다

in #kr7 years ago

안녕하세요. 아직 갈 길이 먼 뉴비 @armdown 철학자입니다. (armdown은 '아름다운'으로 읽어주세요.)

지난 번에 인공지능을 통한 기계번역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으니까 한 번 읽어보시면 이번 글을 읽을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인공지능을 통한 동시통역 문제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페이스북 포스팅이나 언론 기사로 동시통역 기계가 소개되곤 합니다(심지어 동영상 시연 장면도).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페어링해서 이어폰만 꼽고 있으면 자동으로 통역이 됩니다. 한 사람은 스페인어 말하고 다른 사람은 영어로 말하는데, 그 대화에서 '스페인어<->영어' 번역이 자동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아, 이제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겠네!

과연 그럴까요? 저는 지난 포스팅들에서 다루었던 기계번역의 문제점들 때문에 동시통역이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일상적인 대화 상황에서는 대화 유형이 패턴화되어 있기 때문에 기계번역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필요한 일상회화 정도라면, 문장의 길이도 길지 않고, 소통하고자 하는 내용도 비교적 명료하며, 화제의 범위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기계번역이 유용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계번역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은 없을까요? 지난 번 올린 두 번째 글에 @sleeprince 님이 댓글을 달았는데, 구글 번역 최고 담당자 마이크 슈스터의 발언 중에서 두 구절을 인용하면서(“사람의 대화는 문화적 차이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언어의 의미나 소통 중에 사용하는 표정, 제스처 등에 따라 달라진다.” “단어로만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번역기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시점은 어떻게 보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석을 붙였습니다. "이 말들은 줄글 번역에 대한 말이 아니라 통역에 대한 말이로군요. 역시 표정이나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해석하지 못하면, 제대로된 통역을 할 수 없겠네요. 통역에 비하면 문학의 번역이 좀더 쉬운 수준이겠습니다." 멋진 논평입니다(그래서 댓글에 미미하지만 풀보팅했습니다^^). 대화 상황이라는 건 단순치 않습니다. 그래서 문자로 기록된 언어를 번역하는 상황과 전혀 똑같지 않습니다. 이를 언어학에서는 '담론(discourse)'과 '화행론(pragmatics; 화용론)'의 문제로 보며, '의미론(semantics)'이나 '구문론(syntax)'의 문제를 훨씬 넘어서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태 보려 합니다. 대화 상황은 시간 속에서 펼쳐집니다. '영어 <->프랑스어<->스페인어<->중국어' 간 번역은 비교적 쉽습니다. 시간 속에서 언어의 의미가 구성되고 펼쳐지는 방식이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독일어는 어떨까요? '영어<->독일어'와 '한국어<->독일어'의 경우, 둘 중 인공지능 동시통역이 더 쉬운 상황은 어느 쪽일까요? 일단 문자로 기록된 상태라면 '영어<->독일어' 사이의 기계번역이 훨씬 잘 될 겁니다. 같은 유럽어니까요. 하지만 대화 상황이라면 그렇지 않습니다. 영어는 '부정'을 나타낼 때 주어 바로 다음에 not을 표기합니다. 중국어도 동사나 형용사 앞에 不를 붙이면 되지요. 반면 독일어는 문장 맨 끝에 nicht를 표기합니다. 한국어는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지요? 왜냐하면 긍정/부정이 정해지는 건 문장이 끝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어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한국어, 일본어, 독일어 등에서 대화 상황에서는 문장이 긍정이냐 부정이냐 자체가 문장이 끝나면서만 정해지는 겁니다.

문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어느 언어끼리라도 번역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있겠지요? 지난 번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정한 한계는 있겠지만 일상적인 대화의 많은 경우에는 기계 통역도 유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번역이 이루어지는 속도까지 고려한다면, 우리가 상상하고 기대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건 언어가 구사되는 구체적인 방식의 차이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입니다.

제목을 다소 강하게 붙인 건 생각을 자극해 보자는 취지였으니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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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alphago의 약진 이후 다시 한번 기술적 특이점 이야기가 나오면서 AI 만능론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막상 현업에서 AI를 다루다보면 여전히 IF나 Switch, for-loop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_-a. 아니면 Marokv Chain이라는 무식한 연산력(...)으로 때려박는거밖에 없더군요.

AI 엔진이랍시고 비싸게 파는걸 디컴파일 해봤는데 뭐 (......) 결국 인간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라 아직까진 한계가 명확해보입니다. 인공신경망이 훨씬 더 발전해야 어찌 기술적으로 견적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현장에서 개발하는 분들을 계속 만나고 있는데요, 실제로 한계를 솔직하게 털어놓더군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 오히려 배우는 게 많습니다.
정작 문제는 말하기 좋아하는 '철학자'나 '미래학자' 부류더라고요. 기술에 대해서는 조금도 모르면서 상상을 펼치는 데만 능한... ㅠㅠ
앞으로도 개발자들께 듣고 배운 내용을 정리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이게 다 매트릭스 때문입니다. 워쇼스키 형제를 뚜까패야(......

터미네이터, 엑스 마키나, HER, 웨스트월드, 휴먼스 등도... ^^;

정말 미래에는 언젠가 기어코 도래하겠지만, 아직 현실은 현실 아니겠습니까.

인공지능 동시통역은 불가능하다

공감합니다.

아니 어쩌면 그정도의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언어공부에 관심이 많고 저희 형은 4차 산업혁명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형은 항상 저에게 조만간에 인공지능이 통역사도 다 대체할껀데 뭐하러 공부를 하냐고 하시죠.

하지만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본문에서 말씀하신것 처럼 언어적 능력 외에도 통역사는 여러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잘 읽고갑니다.
리스팀하고갈게용

담론을 주도하는 측이 기업이나 정책 담당자여서 문제라고 봅니다.
어제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실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면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개발하지 말라는 거냐?' '니가 코딩해 와라' 이런다고 하더군요.

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뇌파를 읽어서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다른 언어로 번역해주면 어떨까요? 함의를 좀 더 이해하기 쉬울려나... 허걱! 그러다가 상대방 욕하는 생각까지 번역해 줘 버리면... ㄷㄷㄷ

ㅎㅎ
뇌파를 읽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1000억 개의 뉴런이 각각 다른 뉴런들과 신호를 주고받는데, 그건 측정 자체가 난감합니다.

그럼 역시 표정이나 제스처를 분석하는게 낫겠네요 ^^

이른바 '감성 컴퓨팅(affective computing)'으로 불리는 분야에서 생기는 난점은 표정의 경우 분석이 쉽지 않다는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아래와 같은 사례가 그렇습니다.
김은정 표정2.jpg

ㅎㅎㅎㅎㅎㅎㅎ

제 보기에 AI가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영역인 이미지 인식 및 판별 등의 영역에서 조차도 AI로 해결하기 힘든 난제로 여겨지는 사례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 사례들을 눈에 띄는대로 주욱 모으고 있는데 꽤 모아지면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ㅎ

나중에 자료 정리되면 포스팅이나 논문을 통해 공유해 주세요~

동의합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다해도 대화라는 상황 자체가 복잡미묘한 경우가 적지 않고, 게다가 '시간'이란 요소를 고려해야 하니, 사실 전문통역사를 뛰어넘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맞는 말씀이예요. 사람들이 기술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너무 쉽게 떠들어대는 경향이 있지요.

Upvoted ☝ Have a great day!

완벽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용할만한 수준까지 발전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잘 읽고 갑니다.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지만 않는다면, 꽤 유용할 걸로 기대합니다.
근데 사람들이 눈이 머리꼭대기에 있어서 말이죠;;;

저는 공학을 전공했습니다만, 저도차도 AI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정의 내리기 힘드네요. 다만 관련 알고리즘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는 걸 보면 10년 안에는 실생활에 사용 가능한 수준들의 기술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글을 읽다보니 인공지능의 언어를 논할때 정보전달과 감정전달의 두가지 측면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문제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정보전달은 패턴을 분석하고 각 언어의 특징들이 분석, 정리, 알고리즘화 되면 가능 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다만 감정의 전달은 전혀 다른 영역일것 같네요.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대화들은
평범한 단어로, 평범하지 않은 내용들을 전달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조, 호흡, 말투,눈빛, 손짓 등을 언어라는 매개체에 싣어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히려 AI가 일상생활로 튀어 나오면 감정을 다루는 사람들의 가치가 더 올라갈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대부분 동의합니다. 계량화될 수 있는 정보는 교환이 쉬울 겁니다. 계량화할 수 없고 수로 처리할 수 없는 지점들이 문제겠지요. 언어는 전체적으로 보면 계량화할 수 없는 측면을 많이 포함하는 것 같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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