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별 특성 고찰 대상으로써의 건널목

in #kr8 years ago

대부분의 도시에는 길이 있고, 그 길로 차가 다니며, 사람들은 그것을 건너 다니게 되어있다.

뭔가 심플해서 일반화시키고 규칙을 만드는데 크게 어려움도 없을 것 같고, 실제로도 복잡하지 않게 관리가 되고 있지만 - '건널목을 만들고 신호등을 얹은 후 빨간불이면 멈추고 녹색불이면 건너도록 한다' 같은 -, 사실 그 간단한 규칙 하에서 사람들은 사회별 각양각색의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개인 경험을 끄집어내 두서없이 한번 늘어놓아 보려 하는데 먼저 영국이다.

이 나라는 큰 도로건 작은 도로건 대부분 보행자가 버튼을 누르면 (엄청 긴) 일정 시간 후 녹색불이 들어오는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고약한 기다림 덕분에 사람들은 그 시스템을 모르는 외국인인 척 그냥 건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행자들이 신호등의 색깔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길을 건너고 있으면 운전자들은 기계적으로 멈추어 주는데, 아무리 빨간불이라도 클랙션을 울리지 않고 젠틀하게 무표정이다. 이게 좀 섬찟할 정도로 호감 안 가게 신사적인데, 보행자들도 운전자들이 미소를 짓던 악을 쓰던 상관하지 않고 무표정으로 길을 건너기는 마찬가지다.

프랑스도 비슷하게 보행자들은 건널목의 신호등을 잘 지키지 않는다.
운전자들은 보행자가 지나가면 본능적으로 차를 세우고 얼굴에 웃음 한가득인 상태로 천천히 건너가라며 손짓을 해주는데, 한국인이라면 사랑하는 사이라도 저 정도 표정은 힘들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운전자는 보행자가 빨간불에 건널목 앞에서 파란불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차를 멈추고 건너가라며 범법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는데 정말 너무 조건 없이 친절해서 놀라게 된다.

독일은 생각보다 보행자들이 건널목의 신호를 잘 지키는 편인데, 오호담당제처럼 서로서로 살펴보고 있다가 제대로 못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바로 지적에 들어간다.
신호등은 보통 빨간불이 들어오기 전에 상징적 시그널이 있기 마련인데 - 녹색불이 깜빡깜빡 거린다 던지 보조 전광판의 숫자가 줄어든다던지 - 독일은 그런 게 없이 팍 빨간불로 순식간에 변해버린다. 덕분에 로컬 보행자들도 도로 중간에서 번뜩 놀라서 후다닥 뛰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독일이라니 왠지 국민 건강 및 전시 대비를 위해 일부러 국가에서 계획/설계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 번은 건널목에 서 있는데 어떤 버스 운전사가 지나가라고 손짓을 하길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건너갔더니, 갑자기 쌩 하고 달려와 내 등을 스치듯 지나간다. 아마 정확하게 계산하고 악셀을 밟았을 것 같다. 독일이니 말이다.

이탈리아는 신호등이 녹색과 빨간색 사이에 주황색이 하나 더 있는데, 주황색인 경우 서있는 모습이지만 건너도 되니 멈칫 하지 말기 바란다.
사실 이탈리아에는 건널목이나 신호등이 왜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보행자나 운전자 모두 신호를 잘 지키지 않는다. '이렇게 좁은 골목에?'할 만한 곳에도 차들이 쌩쌩 잘도 지나다니며, '건널목이 없는 저렇게 넓은 도로를?'할 만한 대로에도 사람들은 슥슥 잘도 건너간다.
특이한 것은 가끔 길을 건너고 있는 사람을 보면 가속을 하며 돌진해 오는 운전자들이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 경험하게 되면 상당히 무서워 다리가 얼어붙을 수도 있으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대충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은 잘 지키는 편이며,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은 차들이 또 잘 양보해준다. 건너기를 기다려주는 운전자들 표정도 프랑스만큼은 아니지만 '저건 웃는 것이군' 하고 느낄 수 있으며, 보행자들도 까다롭게 도로로 진격하거나 하는 일이 없다. 대충대충 잘하는 느낌이랄까. 뭐 특별한 특징도 없이 그냥 무난하게 잘들 지나다니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 총기사고가 난다는 거.

마지막으로 한국은 정말 보행자도 투덜거리면서 신호등을 잘 지키고, 운전자들도 욕을 하면서 건널목에서 잘 정차한다는 느낌인데,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지만 왠지 가장 우울한 느낌이 드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일반화시켜 이야기해보긴 했지만 아무리 프랑스라도 다혈질인 운전자라면 건널목을 건너고 있는 보행자에게 돌진해올 수도 있으니 늘 조심하는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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