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와 욱하는 성격

in #kr8 years ago

요즘 무화과를 많이 먹는다. 먹기 전, 먹은 후 처리가 귀찮은 과일들은 질색이라 귤, 천도복숭아, 자두 정도 외에는 있어도 잘 먹지 않게 되는데, 무화과는 반을 갈라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하는데도 요즘 꽤 즐겨 먹는 편이다.(사실 냉장고에 무화과 밖에 없다.)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겠지만, 무화과는 열매가 아니라 꽃이다. 열매의 껍질처럼 보이는 것은 꽃받침인데, 무화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껍질 채 먹기도 한다고 한다. 무화과는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뜻인데, 사실 과일처럼 보이는 덩어리 안쪽에 꽃이 빽빽하게 가득 차 있다. 덕분에 일반 나비나 벌은 꿀을 따먹을 수 없으며, 무화과와 공생하도록 진화된 좀벌들 만이 열매 밑동으로 기어들어가 꽃들을 수정시켜준다고 한다.
나는 사실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인데, 진화라는 것이 '아, 무화과를 수정시켜 줄 만한 벌이 없네요? 그렇다면, 제가 한번 열매 밑동의 눈곱만 한 구멍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진화해 보겠습니다.' 하면서 이 주만에 덜컥 완료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무화과는 진화가 이루어지는 수백 년 동안 대체 어떻게 수정을 하여 개체가 멸종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예전에는 다른 식물들처럼 꽃이 외부로 만개했었지만 어떤 계기로 친한 몇몇 벌들과 의기투합하여, 수백 년에 거쳐 무화과는 꽃받침으로 꽃을 감싸고 벌은 몸을 길이 1mm 이하 좀벌로 진화했을 수도 있다. 물론 둘 중 어느 하나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많이 난처했을 것 같지만, 다행히 둘은 약속을 수백 년에 걸쳐 잘 이행했고 결국 무화과는 현재처럼 꽃까지 먹히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하긴 과일은 없으니까 아주 손해 보는 모양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담과 이브가 수치심을 느끼고 옷 대신 입은 것도 무화과 잎이었다. 입었다기보다는 가린 것이지만. 마태오 복음서를 보면 예수가 배가 고파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려 했는데 마침 열매가 없고 잎사귀만 보여서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여, 아무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할 것이다.'라고 저주를 퍼부었다고 한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얼굴이 선해 보여서 - 그것이 실제 얼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예수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이 사건은 좀 치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무화과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었는데, 예수도 그 후 사람들이 꽃을 먹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 같다. 만약 예측을 했다면 '아무도 너에게서 열매나 꽃을 따먹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여러 사연이 있는 열매 아니 꽃이기는 하지만, 다른 과일들처럼 너무 달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아서 추천하고 싶다. 추천하지 않아도 다들 이미 많이 먹고 있을 것 같지만.

Sort:  

원본 글에서 원본 글쓴 아이디로 스팀잇 포스팅을 언급해주시면 원 저작자임이 인증됩니다.

저도 무화과를 참 좋아합니다. 저는 집에서 요거트를 만들어서 먹고 있는데요 무화과쨈과 요거트를 섞어서 먹으면 그 맛이 아주 기가 막히답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5
TRX 0.12
JST 0.025
BTC 53991.35
ETH 2418.60
USDT 1.00
SBD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