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참여] 시골소년의 고백

in #kr7 years ago

1985년 평범한 농촌시골에 살았던 어느 소년의 이야기 입니다. 지금의 50대중후반 60이상 되신 분들은 한창때 이셨을 것이고 40초중반대 나이되신 분들은 당시 국민학교 현재는 초등학교 다니셨을 쯔음 되겠네요. 사실 이 시대 농촌에서 생활하던 어린이들은 현재의 농어촌 어린이들 보다 훨신 뒤쳐진 문명의 혜택속에서 살았습니다.세상이 발전하면서 생활환경 또한 많은 발전을 해왔기 때문에 공감을 못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을꺼라 생각됩니다 잠시 이 소년의 생활 환경을 되집어 보자면 이러했습니다. 집안의 주된 일은 당연이 농사였기에 토요일 쉬는 일요일 내지는 공휴일은 농사에 일손을 거들어 주어야만 했습니다 봄철이면 논에 가서 "모쟁이" ( 한다발씩 묶은 모를 모심는 사람들 뒤에 가져다 주는 일) 라는 논일 부터 이당시만 해도 사람이 직접 손으로 모를 심었지요 어른들은 모를 심고 아이들은 이모를 가져다 주는 허드렛일을 하고 밭일이며 가축 밥 주는일 땔감을 주워 오는일 등 할수 있는 모든일은 다 해야만 했습니다 워낙 그때도 일손이 부족하고 이러한 집안일을 돕는 것이 아주 당연시 되던 그런시절 이었죠

이렇듯 시골에서 생활하다보니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도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격어 볼수가 있었는데요
여러분 "햄" 다들 아시죠? 먹는햄이요 이소년은 중학교입학후 한참이 지나서야 햄 이란걸 알았고요 용돈 이란건 중2정도 되서야 알았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시험공부, 학원 (이때는 주산,부기)이런것도 중학교에 가서 알았을 정도 입니다 이렇듯 시골촌구석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는 중 어느날 굉장이 궁금한 것이 하나 생기게 됩니다 머리속에서 잊혀진채 십수년이 흘러가지만 당시에 소년은 이궁금함 때문에 한동안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죠

시골에선 서로 이웃끼리 또래끼리 정말 가족같이 허물없이 생활하죠 정말 누구네집 숟가락 젓가락 몇개 까지 알고 산다잖아요 이곳도 그런 시골이다 보니 서로 친구네 집에 서슴없이 들락달락 거리고 아무집에나 가서 밥도먹고 잠도자고 정말이지 네집 내집이 없는 그런 꼴이죠

어느날 이소년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중 학교 근처 친구집에 가서 좀 놀다 올 목적으로 친구네로 향했습니다.
늘그렇듯 "ㅇ ㅇ 야 노 올자!!!" 를 외치며 친구네 집으로 들어 갔습니다 시골집 다 그렇듯 대문이라고 해봐야 있으나 마나 항상 열려 있고 그런거 신경 쓰지도 않고 하니 거슬릴께 없으니 친구방까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들어 갑니다. 근데 불러도 친구는 없고 집에 아무도 없는듯 조용하기만 하니 이소년은 친구가 오길 기다리며 방안에 대 자로 누워 친구를 기다려봅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잠깐 잠이들었는지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 지고 소년은 잠에서 막깨어 눈도 부시시 하니 제대로 못뜬 상태로 시골방의 방문 틈 사이로 밖을 응시 하는데 보이는것은 친구의 부모님 이셨습니다 큰 모자와 목에 두른 수건을 풀어 마루에 던지시고 이내 웃옷을 벗으시며 수돗가에 엎드리시는 친구의 아버님, 이에 익숙한듯 친구의 어머니는 장갑을 벗으시며 바가지에 물을 연신 친구의 아버지 등에 퍼붓습니다( 이른바 등목이죠 ) 시원함을 느끼셨는지 벌떡 일어나셔서 어머님 목에 걸린 수건으로 몸에 묻은 물을 닥으시며 어머니 를 바라 보시는가 싶더니 와락!! 껴안으시며 한마디 하십니다. "ㅇㅇ 옴마 사랑혀~~" 이에 어머니도 한마디 하십니다" 지두유~~~"

설명이 길어 그렇지 사실 시간적으로 몇십초나 여튼 1분은 절대 넘지 않을 짧은 시간에 일어나 어쩌면 소년에겐 순간적인 이때 한가지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 왔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 이때 부터 고민을 시작 합니다 어른들의 대낮의 요상? 한 풍경이 이상할법도 한데 이소년의 답답함을 옥죄어 오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버님께서 말씀 하신 "사랑혀~~" 라고 하신 단어 이눔의 "사랑혀" 가 무슨뜻인지가 궁금한겁니다 무슨뜻인지 알길이 없으니 더더욱 생각 하면 생각 할수록 답답합을 느끼고 누군가 에게 물어 보기도 창피 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친구들한테 물어 봤는데 "너는 그것도 모르냐"고 놀림을 받을까 하는 염려와 부모님께는 더더욱 평소에 호랑이 같이 무서운 존재 였던 아버지께 무언가 말을 건네는것 조차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었고 해서 말이죠

요즘처럼 tv도 자주 보던 시절이 아닙니다. 기껏해야 저녁때쯤 말괄냥이 삐삐, 꼬마자동차 붕붕, 정도고 어두워 지면 방으로 쫒겨나서 잠을 자야만 했고 그나마 최고의 특혜는 1주에 딱 한번 전설의 고향을 볼때가 제일 늦게 까지 tv를 볼수 있었으니 그 시골 어린 나이에 "사랑혀"란 말이 낮설고 궁금 했던가 봅니다. 시골분들 옛날 분들이 그렇듯 부모님에게도 사랑한단 말 여태껏 못들어 봤으니 한국말 이긴 하지만 알길이 없었던 거죠.

그어린 시절 [사랑]이란 단어를 처음 듣고 언제쯤 그 궁금함이 잊혀졌는지 또 언제쯤 그 뜻을 알게 됫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대충 예상 하기론 상경후 20대 초반쯤 그어렸을때 처음들었던 사랑 이란 단어를 조금은 이해 하지 않았을까?하는 아련한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너무 늦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알아버린 소년, 그런 탓인지 [사랑]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있어 아직까지도 어색하고 서투르고 꼴랑 그래봐야 두글자 인것을 발음도 표현도 어렵기만 한것인지 어쩌면 아주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 보다 훨씬 덜 어려울수도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혹시 아직 어린 자녀분들이 있다면 늦게 알려주지 마세요 일찍알려 주세요. 조금이라도 일찍 알아서 만이 사용할수 있게 또 그래서 만이 받을수 있게 말이죠.

더 늦기전에 한번은 해보고 십습니다 어쩌면 정말 한번도 못한다면 훗날 아주만이 후회할꺼 같아서 용기내어 봅니다
"아버지~ 사랑해유!

Sort:  

흠.. 시골이면 TV도 다같이 이장님 집에 모여서 보는거 아니었나요?

ㅎㅎㅎ 그정도로 오래전 태어나진 않아서요 집에 아주작은 흑백tv 안테나 매일 이리저리 돌려가며 맞추어 보던 그때쯤 그런시절 입니다

크.. 옛날은 옛날이네요 ㅎㅎ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다." ㅎㅎ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거 같아요.
재밌는 글 잘 읽고 갑니다. ^^

촌무지래기로 자라서 놀구 먹고 밖에 모르던 시절 ㅎㅎ
재미있게 봐 주셨다니
고맙습니다.

정서를 자극하는 감동있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전 지방 풍속, 향토사에 대해 주로 글 쓰려는데 제글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아 ~~ 좋은 주제로 포스팅 하시는군요 벌써부터 관심이 쏠립니다
고맙습니다

"꼴랑 그래봐야 두글자 인" 그 말을 자주 표현하면 좋을텐데 정말 왜이렇게 어색하기만하고 어려운지 모르겠네요~ 옛날 우리집 풍경도 추억할 수 있었던 좋은 글 읽고가요 allpass 님! :)

아이구 무쟈게 쑥쓰럽습니다
뒤통수벅벅^^

Coin Marketplace

STEEM 0.29
TRX 0.12
JST 0.033
BTC 63071.06
ETH 3121.31
USDT 1.00
SBD 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