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결혼식

in #kr-writing6 years ago (edited)

마지막 결혼식

드디어 올해 초대받은 결혼식의 대망의 마지막.
대략 이십여년을 알아온 동문이고 친구이다. H.
나는 비교적 사생활에 대해서는 친구들에게도 선을 긋는 타입이라서 서로의 친구들에 대해 관여를 안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내가 굳이 그의 친구의 친구를 만난다거나, 친구의 여자친구를 만난다거나 이런 일은 별로 없다는 거지. 특히나 내 친구들과 내 가족들이 엮이는 일들은 살짝 피하는 편. !

요즘 사람들은 대체로 나랑 비슷하게 행동할 것이다. 근데 이들은 촌출신들이라 그런지, 정이 많아 그런지, 나보다 나이가 많아 그런지 사촌들, 친척들, 친구의 친구들이 더한 친구들이 되어 모두와 함께 니나노 하며 무장해제된 사이가 된다. 그렇게 인연들이 끈질기게도 살아남아 결혼할 시점까지 명맥이 유지되었다. CONGRATS, MAN. YOU SUCCEED.

누군들 결혼식을 자기식대로 멋지게 하고 싶지 않겠냐만은,
다들 돈과 편의때문에 웨딩홀을 택하는 것이겠지.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귀찮게 굴었다. 모바일 초대장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초대장에는 사귀어 온 히스토리 사진을 첨부했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그러니까 새로 포즈 잡고 찍은 커플 사진이 아니었다는 거지. 이들의 역사가 담긴 일상의 평범한 사진들이었다.
그럼에도 문자에 주소를 찍어달라고 했다. 청첩장을 보내겠단다. 단체카톡방이었기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전화를 해서 주소를 물어보더라, 나는 속으로 세상 참 빡시게 사는구나 싶었지.
그리고 나서 며칠 후, 초대장이 왔는데 당연히 받는 사람에 나의 이름이 있었고, 짧은 편지가 있었고, 훅- 하고 우리의 이십여년의 추억이 느껴졌다. 쌓아온 시간을 이기는 우정은 없는 것 같다. 복리이자같은거지.
그리고는 그들만의 조촐하지만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카페도 직접 섭외했고, 모든 스탭들을 스스로 꾸렸다. 정말 좋은 결혼식이 될 거 같았다. 신랑이 축가를 스스로 부른다고 해서 놀리긴 했지만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근데 결혼식 전전날부터 우리는 카톡창에서 웃기 시작했다.
토요일날 비가 100프로 온다고 했기 때문이지.
나는 축의금 담당이었기 때문에 조금 일찍 갔는데, 비를 피하기 위한 천막위에 비가 고여서 곧 쓰러질 것 같았고, 비의 양은 줄어들 기세가 아니었다. 바닥에 물도 고이고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본인이 직접 신부에게 축가를 부르는 것도 웃겼고, 동생분 친구들의 카타르시스 느껴지는 성악도 끝장나게 시원했다. 성악가들은 늘 신기함.
결혼식도 어쩜 참 캐릭터대로 하는가, 싶었는데… 신랑신부는 다음 피로연 장소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스탭이나 마찬가지였던 우리를 두고 떠났는데, 심지어 축의금이 든 가방을 놓고 가버린거다. ㅋㅋ 결혼식이 끝나자 부처님오신날 행사로 거리는 마비되었고, 우리는 차를 뺼 수도 없게 되었었다. 뭐 여튼 비 때문에 웃기는 결혼식이었다. 비가 안왔으면 아름다울 뻔 했지만, 어쨌든 기억에 남을 이벤트는 확실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어쨌든 피로연을 거나하게 한 나머지
나는 일요일 저녁까지 침대에 누워있다는 거-
그들은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신행을 즐기느라 침대에 누워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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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에 고인 비의 무게로 무너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사진찍는 셔터감이 어떠한가?
누구의 정면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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