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어떤 시대였을까.

in kr-writing •  20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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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은 참 엄혹했구나


영화 <동주>를 봤다. 그저 인기 배우로만 생각했던 강하늘이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줄 몰랐다. 어쩌면 소심한 듯, 어쩌면 단호한 듯, 시대의 흐름 속에 내동댕이쳐지는 시인 윤동주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주었다.

그저 '시인'으로만 생각하던 윤동주 선생님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건, <무한도전> 덕분이었다.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힙합과 콜라보를 해서 독립운동가들을 알려주던 에피소드. 그걸 보면서, 아, 그렇지. 그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운동가였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됐었다.

영화에서 특히 인상에 남았던 건, 교도소 안에서 자신을 취조하는 일본 순사에게 눈물흘리며 대답하던 장면이었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 시를 쓰고 싶어하고 시인이 되고 싶어한 자신이 부끄럽다며 오열하던.

그저 시를 사랑하고, 시를 쓰며 살고 싶어하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는 시대. 그건 어떤 시대였을까.


그 시절은 참 엄혹했구나


문득 전에 재미있게 봤던 <미스터 션샤인>이 떠올랐다. 코믹한 재미도 놓치지 않으면서, 가슴 아픈 역사를 선명히 그려냈던 명작. 거기에서도 등장인물들은 휘몰아치는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었다.

'이양화로도, 쿠도 히나로도 살지 말고, 가방에 총 대신 분을 넣고, 방엔 펜싱 칼 대신 화사한 그림을 걸고, 착한 사내를 만나 때마다 그대 닮은 예쁜 옷이나 지어 입으면서, 울지도 말고, 물지도 말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으면 했지만, 결국 때로는 울고, 때로는 물어야만 했던 이양화.

수나 놓으며 꽃으로 살 수도 있었지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하는, 불꿏으로' 살아간 고애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며, 원체 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지만, 결국 신문을 발행하고, 애국이든 매국이든 모든 걸 기록하게 된 김희성.

각자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우리 자신을 위해, 언젠가 저 여인이 내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름의 방법으로 고군분투하며 스러져갔던 시대. 그건 어떤 시대였을까.


그 시절은 참 엄혹했구나


전에 재미있게 챙겨봤던 <대화의 희열>도 떠올랐다. 입담이 좋은 유희열과 내가 좋아하는 작가 김중혁이 MC진이어서 더 좋아했던 프로그램. 유시민이 게스트로 나왔을 때,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 하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이야기를 해줬었다.

학교에서 시위해도 신문에 한줄 나지도 않는데, 3분 동안 민주화를 외치고 징역 3년을 살던 그 시대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시위를 못 한다.

다만, 그냥 있으면 너무 못나 보이니까. 못본 채 지나가도 되는데, 등 떠미는 이도 없는데, 내 앞길 닦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지만, 그저 외면해버리면 너무 비참하니까.

세상을 못 바꾼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존엄하게 살기 위해 학생운동을 했다는 유시민.

불의와 부조리가 판치는 현실. 그걸 외면하고 제 앞길만 닦으면 너무 비참하니까,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만 했던 시대. 그건 어떤 시대였을까.


엄혹한 시절, 많은 분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이 정도로 굳건한 민주주의 국가를 지키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을 그분들께 신세지고 있다는 것도.

새삼, 앞길을 걸어가신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오늘


그리고, 오늘. 신문 기사를 하나 봤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와 관련, "검찰이 이 일을 이렇게까지 밀고 온 과정에서 본 검찰의 무지막지함, 비인간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오만한 작태에 대해 싸우지 않으면 제가 너무 비겁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정치를 그만두고, 책 읽고 글 쓰며, 지식소매상으로 살고자 했던 이가 다시 혼란한 정국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시대. 혼자 소소한 행복을 즐기며 살기엔 스스로가 너무 비겁하게 느껴지는 시대. 토요일 저녁 소파와 일체가 되어 TV 리모콘을 돌리던 몸을 일으켜 촛불을 들고 나서게 만드는 시대. 그건 어떤 시대일까. 먼 훗날, 오늘을 어떤 시대로 기억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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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과 우리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군요 ㅠㅠ

요순시대 말고는 태평성대가 없나봐요.

한국만큼 혼란과 갈등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나라도 흔치 않을 듯 합니다..
부패하고 오만한 권력층과 같은 나라의 국민임에도 가치관의 기준이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한두 세대의 정권으로 어떻게 될 문제도 아닐꺼 같구요.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이 있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퇴보하진 말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