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없는 설 명절.
설날이네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부모님 건강이 걱정되지만 또 막상 자기 생활에 매이다 보면 평상시엔 소홀하기 마련이죠.제가 딱 그렇고요. 그러면서 설이나 추석, 또는 가끔 주말에 찾아뵙고 예전보다 좀 더 기력이 빠진 것 같은 부모님을 뵈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아, 더 자주 찾아뵈어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죠. 그 때뿐이라는게 여전히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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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첫날.
아침에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안방에서 아버지께서 부르셔 가보니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고 있더라구요.
이미 어제 감기가 심해서 병원에 가서 약 다 받아오시고 주사까지 맞으셨다는데 웬 일이지 하면서 보다가,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근처 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갔습니다.
피 뽑고 엑스레이 찍고 소변검사 하지만 딱히 이유를 모르겠다는군요.
그 사이 해열제 덕에 열은 좀 내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방법 밖엔 없었습니다.
약을 타왔으니 약을 위해서라도 식사를 하셔야 했기에, 간단하게 드시고 다시 안방에 누우셨는데, 이번엔 속이 너무 메스꺼워서 안되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게 꾀병이 아닙니다. 진짜로 힘들어 하시더라구요.
(원래 저희 아버지께서 엄살이 좀 심하셨기에 온 가족은 약간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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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를 불러야 할 정도로 괴로워하시기에, 아까와는 다른 병원으로 다시 응급실로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검사결과가 좀 심각했습니다.
가벼운 장염증세일 거라 생각하고 어머니는 다시 집으로 보내드렸고 제가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담당의사가 저를 부르더니 혼자 남았냐며, 혈압이 너무 낮아서 문제라고. 중환자실로 입원을 하셔야 하는 상황이랍니다.
지금 설 연휴라 여기에는 담당의사가 없는데,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모셔서 더 적극적 대처를 하시는 방법도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게 그냥 장염 정도 걸리셔서 오한 나고 속 메스꺼운 거 같은데, 뭔 대학병원 이야기까지 나오는가 싶었는데 의사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자니 겁도 나고 고민도 깊어집니다. 그렇다고 평상시 다니시는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서 울 아부지를 위해 중환자실을 비워두고 기다리는 것도 아니지요. 40~50분 걸려 앰뷸런스를 타고 가도 여기서 했던 검사들 싹 다시 한번 해야지요. 그것도 응급실 어딘가 누워서 말입니다.
무지하게 고민되는 10분이었습니다. 의사들은 그 시점에선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자신들은 정보는 다 주었다고, 선택은 본인의 것이라고. 사실 그 정보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정보 자체를 준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인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라는 질문을 거꾸로 할 수 밖에 없는 수준의 정보들이니까요. 객관적이란 말은 그렇게 무섭기도 한 모양입니다.
새벽 2시. 그 병원 중환자실로 아버지를 모셨습니다.
결정을 해야 했고, 다시 서울로 가면서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느니, 빨리 항생제와 혈압상승제를 투여해서 위험한 고비를 넘기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아버지는 장염에 의한 급속패혈증으로 의심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결정한 내용이었습니다.
급속패혈증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얼굴이 더 굳어지더군요. 무서웠습니다.
중환자실로 들어가신 이상 그 앞에 있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담날 아침에 오기로 하며 3시경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침 면회시간은 6시 40분부터 20분간 가능했습니다. 두명만.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모르지만 평상시 드시는 약을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혈압만 잡히면 일단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의사의 말이 기억에 있었기에, 간호사 분 얼굴을 보자마자 혈압이 어때요? 하고 물었습니다.
바로 어제밤 들어온 환자 보호자였기에 제 얼굴을 기억하시는지, 비교적 따뜻한 얼굴로 괜찮아요 정상으로 돌아오셨어요. 오히려 지금은 약간 높아져서 혈압상승제는 중단했고요, 지켜보는 중이예요. 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1년과도 같았던 4시간 여의 설 전날밤 긴장감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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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손이 다시 따뜻하게 돌아왔고, 속은 괜찮으시단다. 중환자실이라서 어쩔 수 없이 소변줄을 꽂고 기저귀를 차고 계셨다. 이런;;
괜찮다고 하시면서. 빨리 가서 차례 모시라고 하십니다. 허허.
저와 어머니는 서로를 쳐다보면서 그래도 다행이다 라는 눈짓을 교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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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오늘 아침 설날은, 아버지 없이 지내는 첫 설 차례였습니다.
지방을 직접 써 본 적도 없고, 상차림도 매번 곁눈질로만 했고, 막상 차례를 진행하려니 그 동안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순서들도 머리속에서 다 뒤죽박죽이 되더군요. 그렇게 해서 여차저차 설 차례를 마쳤습니다.
언젠간 현실로 올 수 밖에 없는 아버지 어머니 없는 설 명절...
끝끝내 내겐 현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말도 안되겠지요.
그런 날이 오기 전에 부모님께 더 열심히 잘 하라는 큰 울림을 주시기 위해 오늘 설날을 맞이해서 이런 이벤트를 조상님들께서 기획하신 모양입니다.
이제 점심 면회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점심에 한 번 더 뵙고 나면 더 좋아지셨을 테니까요.
연휴에 퇴원이 가능할까 모르겠습니다만, 빨랑 집으로 모시고 오고 싶네요.
세배드려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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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없는 이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데, 막상 하루를 겪어보니 그야말로 끔찍했습니다.
엄마, 아버지.. 건강하셔야 합니다..
2018년 설날 아침
(우선 지금은 다양하게 제 이야기와 생각들을 쓰면서 적응해가는 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