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솔릭의 경로 예측 건에 대하여 (부제1: 기상청을 위한 변호, 부제2: 완벽한 기상예측이란 없어!)

in #kr-science6 years ago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관통하여 지나간 가운데, 다행히 약해진 위력으로 인해, 예상했던 엄청난 피해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행히도 재해를 피한 가운데, 일부 사람들 (기자들?)은 너무 호들갑 떨었던 것이 아니냐, 기상청은 왜 태풍 예측을 제대로 못하냐 등등의 목소리를 내는 것 같습니다.

지진과 달리 태풍은 미리 알고 어느 정도 대비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입니다. 대비 없이 당하는 것 보다, 호들갑 떨며 헛(!)대비하는 게 저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물론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태풍 뿐 아니라 모든 기상 상황에 대해 기상청은 언제나 욕받이 입니다. 기상청을 욕하는 분들은 아마 기상 예측이라는 것을, 인간이 완벽히 할 수 있는 데, 왜 기상청만 못하냐는 인식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기상 예측"이란 원래, 애초에 불가능 하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어떨까요?


일단 이번 태풍 솔릭의 경로 예측부터 보시겠습니다.
8월 18일 15시
8월 20일 03시
8월 21일 09시
8월 22일 21시
8월 24일 03시

어떻습니까?
위의 시간순 예보를 보니 전 이번 솔릭의 경로 예측은 아주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결국 70%의 확률 반경에서 큰 변화 없이 예측한대로 다가왔으니까요.
태풍 눈의 상륙 위치가 변산반도에서 목포로 바뀌었다구요?
그정도는 예를 들자면 유효숫자 바깥의 오차입니다.
그리고 이정도 오차는 일부 사람들이 동경하는 미국에서도 흔한 일입니다.
아래에 작년 플로리다를 강타한 Irma의 예측을 보시죠.

9월 5일 17시
9월 6일 23시
9월 8일 08시
9월 9일 11시

플로리다의 동쪽과 서쪽에 큰 도시들인 마이애미와 탬파가 있는데,
Irma의 눈이 두 도시 중 어디로 가냐에 따라 각 도시의 피해가 기하 급수적으로 달라집니다.
초반에 탬파에서 중반 마이애미, 그리고 결국 탬파 약간 동쪽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대략 부산이냐 목포냐 정도 되겠네요.
이런 예보 덕분에 마이애미 권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북쪽으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뭐, 미국에선 흔한 일이죠.

미국도 못하는데, 한국이 하겠냐 하는 사대주의적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태풍/허리케인 예측 1위는 유럽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야기, 즉 "완벽한 기상 예측"이 왜 불가능한가에 대해 간략히 써보겠습니다.

기상 예측이란 무언인가?

먼저 배경 지식으로 기상 예측에 대한 개념을 얘기할 필요가 있겠네요.
기상, 즉 날씨라는 것은 결국 대기 중의 분자의 움직임에 따라 나타납니다.
공기 한 무리가 압력차 때문에 움직이면 이게 바람이고,
공기 중의 수증기가 여러 조건 때문에 응결하면 이게 구름이자 안개죠.
응결이 가속화하면 비가 내리구요.
따라서 기상 예측이란 결국 수증기를 포함한 공기의 움직임을 (열)역학 측면에서 예측한다는 뜻입니다.
역학/열역학 방정식은 이미 다 알려졌고, 따라서 초기 조건과 힘 (Force)만 알면 단위 시간 후 공기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완벽한 기상 예측이란?

완벽한 기상 예측이란 결국 대기 중의 모든 분자들을 추적하며 이 분자의 움직임을 예측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떻습니까? 가능할까요?
이 문제에 대하여 굳이 화학 시간에 배웠던 1몰에 분자가 몇 개 있는 지 기억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계산은 가능하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결정은 불가능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방 안에 있는 모든 공기 분자의 1초 후 위치를 계산했더니 그 결과가 (컴퓨터가 엄청나게 발전하여) 1만년 후에 나온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완벽한 기상 예측"의 완벽성의 완화

현재 기상 예보 모델은 모두 격자를 이용해 공간을 묘사합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상공의 기상을 예측한다고 하면, 한국의 땅 면적이 대략 10만 km^2니까 대략 주변부까지 쳐서 600km x 300km 넓이를 밑면으로 하는 대기를 모델링 한다고 합시다. 만약 격자를 1km 해상도로 잡고 수직으로 50층 잡으면, 600x300x50=9,000,000 즉 9백만개의 격자가 대한민국 공간을 대표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넓이 1km x 1km 안의 모든 공기들은 점 1개로 표시되는 거에요. 이런 상황에서, 만약 어떤 격자점에 비가 온다고 예보가 되었다면, 내 머리 위엔 안와도 같은 격자 안의 어떤 구역에 비가 한 방울이라도 오면 예측 성공입니다.

그런데 이거 너무 느슨한 거 아닙니까?
격자의 크기가 한 10m x 10m 정도는 되어야, 요즘 유행하는 서울의 동 별 예보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럼 가로 세로 100배씩, 그리고 수직은.. 한 10배만, 그러면 격자의 개수는 900,000,000,000 즉 9천억개로 늘어나네요.
9천억개의 격자를 대상으로 계산 하는 것은, 슈퍼컴퓨터가 있으니 그렇다 치고,
각각의 격자점마다 저장되는 변수로는 간단히만 생각해도
온도, 바람 3방향 (u,v,w), 기압, 습도가 (최소한) 필요하고, 그 외에도 태양 복사, 지구 복사 에너지, 구름의 양, 응결된 물의 양, 응결에 영향을 미치는 미세먼지의 양 등등
이런 변수들도 간략히 해서 한 20개만 있다고 치면, 9천억개 격자점 x 20개 변수 x 4Byte (컴퓨터 메모리 상의 최소 저장 단위) = 72 TByte. 메모리가 이정도는 있어야 계산 빨리 할 수 있잖아요, 아니면 일부를 하드에 쓰고 다시 읽고 하면 어느 세월에 계산 해요? ㅎㅎ

그런데 이런 실제 환경에서의 제한 요건 말고도, 10m x 10m 넓이를 한 점으로 표한한다는 것 (이것을 모수화 또는 Parameterization 이라고 합니다)도 생각해보면 위험요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격자가 서울 강남의 한 빌딩 코너에 걸려있다고 합시다. 격자의 일부는 30층 빌딩 위고, 다른 일부는 1층 도로에요. 그럼 이 점을 대표하는 고도값은 어떻게 할까요?
다른 예로, 한 격자가 도로 한복판에 위치한다고 해요. 그런데 그 도로에 버스가 지나가요. 버스가 지나감에 따라 인위적인 바람이 일어나겠죠. 그럼 이 격자의 대표 바람 벡터는 어떻게 될까요?

여기까지 따라온 분이라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하실 수도 있어요. 버스가 지나가는 거랑 비가 올지 말지 하는 거랑 무슨 관련이 얼마나 있겠냐고요. 물론 관련이 작을 수는 있지만 아예 없을 수는 없습니다.

완벽한 초기/주변 조건은 가능한가? (feat. 나비효과)

위에서 모델링의 어려움을 몇 가지 짚어봤는데, 백번 양보해서 세상에 "완벽한 대기 시뮬레이션 모델"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봐요. 이 모델을 이용해 기상 예측을 하기 위해서는 초기 조건 (Initial condition)과 주변부 조건 (Boundary condition)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대기 모델은 비선형 (non-linear) 방정식의 영향하에 있기에 아주 작은 초기 조건의 변화가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이끌 수 있습니다. 예, 그 유명한 나비효과죠.

카오스 이론의 개척자는 Edward Norton Lorenz인데, 이 분이 기상학자입니다. Wiki의 Lorenz System 항목에 따르면, 1963년에 이 분이 대류를 모델링 하기 위한 방정식을 컴퓨터를 이용해 풀던 도중, 초기값의 작은 변화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받아들게 되었죠.
Screen Shot 2018-08-24 at 3.34.56 PM.png 일명 로렌쯔 방정식

자, 그럼 아까의 10m x 10m 격자의 모델로 돌아가 봅시다.
저 위에 제가 적기로 최소한 온도, 바람 3방향 (u,v,w), 기압, 습도 정도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했는데, 대한민국과 그 주변 바다까지 포함하여 격자 9천억개의 동시 관측값이 주어져야 이걸 초기 조건으로 해서 모델을 돌리고 예측을 할 수 있겠죠. 어떨까요? 가능할까요? 게다가 나비효과에 의해 소수점 작은 몇 자리 값까지 중요한 상황에서요. 일단 매 10m 마다의 촘촘한 관측망은 둘째 치더라도, 관측 장비의 유효값 때문에라도 애초에 "완벽한" 초기 조건이란 불가능입니다.

정리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기상 예측"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모델도 가능하지 않고, 완벽한 초기 조건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완벽한 미래 예측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임무죠. 기상청이 하는 일은, 자연이라는 확률 게임에서 그래도 1%라도 더 나은 승률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기상청 욕하기 전에 이 정도 배경 지식은 가지고, 깔 건 깠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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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예측이란것이 먼가 엄청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이 느껴지네요

그걸 알아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

여기까진 동의..
그래도.. 언론의 호들갑은 좀 그랬네요..
이해해줄 일말의 가능성은 있긴 하지만... 이번엔 좀 심했어요

한국에서 언론들이 태풍 상륙한다고 많이 오버했나보군요.
태풍이 갑자기 약해져서 기사 쓴 기자들도 뻘줌하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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