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이재용의 대국민 사과에 부쳐 – 진정한 사과는 엄정히 처벌받는 것이다.

in #kr-politics4 years ago

논평

삼성전자 부회장이자 실제 삼성재벌의 총수인 이재용이 5월 6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감시위)가 경영권 승계문제와 노조탄압에 대하여 총수의 직접적 사과를 권고했고 이재용이 이를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과는 진정성이 없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한 그룹승계과정의 회계부정, 박근혜 국정농단 과정에서 뇌물공여 및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 중인 이재용은 그저 감시위의 권고에 맞춘 형식만의 사과를 했을 뿐이다.

애초 감시위 자체가 문제적 조직이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2019년 10월에 느닷없이 “기업 내부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운운하면서 삼성에 감시위를 설치하고 적절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내면 작량감경에 반영할 것처럼 주문을 한 것이다. 재판부의 주문에 따라 설치된 조직이 바로 이 감시위였다.

당연히 사법부와 삼성의 유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재용에게 면죄부를 줄 구실을 찾았고, 감시위는 그 구실의 일환이며, 감시위의 활동과 권고에 따라 이재용이 반성하는 태도를 취하면, 이를 근거로 재판부가 형을 감경하여 주는 시나리오가 작동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다.

그 시나리오에 의해 이제 감시위는 권고를 했고 이재용은 사과를 했다. 그러나 이재용의 사과문은 ‘이 정도로 끝내자’는 오만방자한 회장님의 품격만을 보여주었다. 이재용은 이 사회와 시민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내가 없으면 누가 너희들을 먹여 살릴 것인가?

사과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모 방송사의 드라마 “황후의 품격”은 가장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드라마에서 공주는 나인에게 모욕을 준 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황후가 사과하라고 하자 건성으로 사과한다는 말만 던진다. 그러자 끝내 회초리를 든 황후는 공주에게 이렇게 가르침을 준다.

“상대방의 다친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사과에요.”

그러나 이재용의 사과에는 “상대방의 다친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이재용이 보여준 “재벌의 품격”은 드라마 “황후의 품격”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달랐다.

“황후의 품격”에서 황후는 피해자인 나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공주의 사과가 진심으로 느껴지기 전까지 절대 공주의 사과를 받아주지 말아요.”

이재용의 사과를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무노조 경영원칙을 빙자한 노조탄압으로 고통받은 삼성의 노동자들은 결코 이재용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이재용이 진정으로 사과하고 싶다면, 만 1년이 되도록 삼성본사 앞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자 김용희에게 직접 사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재용이 스스로 언급했듯, 편법에 기댈 궁리를 접어야 한다. 사과와 별개로, 이재용이 엄정한 사법적 판단을 받음으로써 편법에 기대지 않겠다는 본인의 의지를 증명하기 바란다. 더불어 이를 통해 사법부와 삼성의 법경유착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때로는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욱 드라마틱할 수가 있다. 이젠 아무리 삼성재벌의 총수라고 할지라도 엄정한 처벌을 받는다는 현실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오만한 “재벌의 품격”이 발 디딜 수 없는 “공화국의 품격”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재용은 꼭 “황후의 품격”을 시청하기 바란다. 최소한 “사과란 무엇인가”를 깊이 깨닫기만 하더라도 그의 형기는 “슬기로운 깜빵 생활”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 5월 7일
노동·정치·사람

노동·정치·사람 홈페이지에서 보기 - http://laborpolitic.red/?p=6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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