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청년과 지역정치, 그리고 지역정당〉 후기
한성 _ 노동정치사람 청년사업팀
지역정당 논의를 처음 접했을 때 청년 그리고 소수자로서 저와는 먼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한국 지역사회라는 공간이 특정한 몇몇 구역을 제외하고는 청년 그리고 소수자라는 특성상 마땅히 관심을 갖거나, 소속감을 느낄 메리트가 적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성・청년과 지역정치, 그리고 지역정당> 강연을 들으니 제가 지역사회, 지역정당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정치란 갈등과 문제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란 중요한데, 갈등과 분열을 드러내는 것만큼 동시에 조직적・발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한 수단이 바로 ‘정당’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지역 또한 나름의 갈등 표현과 문제해결이 필요하고, 따라서 지역정당이 존재해야 한다는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유별나게 지역정당이 제도적으로 제한되는, 또 중앙당에 지역단위가 일방적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는 정당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지역의 욕구와 의지, 갈등이 적절히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한편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의사결정권을 지역과 떨어진 공간에 의탁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포스트권위주의’라는 특성, 즉 한국 민주주의가 아래로부터 작용하는 대중의 힘이 반영되는 과정과 결과가 아닌, 기득권을 재생산 하기 위한 형식적인 과정으로 작동하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만 오늘날 한국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에 압도되는 면이 있다고 해서 지역에서 정치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 자체가 부재한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는 유대감과 애착을 기반으로 할 때 형성됩니다. 저는 갈수록 우리 사회가 다른 구성원에 대한 유대감과 애착이 낮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청년 중 대부분의 욕구 중 하나가 “동네 친구 만들고 싶다”라는 점을 들으니 생각을 조금 달리하게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그런 욕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유대감과 애착 욕구 자체가 낮아지기 보단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오늘날에 맞는 틀이 부족한 것이란 점을 보게 됐습니다. 지역사회 내 커뮤니티에 청년들이 결합하지 않는 이유도 어떤 ‘긴밀한’ 관계를 요구하던 이전의 이웃 관계보단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는 ‘적당한 거리가 있는 관계’라는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점이 많이 공감됐습니다. 이런 점을 잘 공략(?)한다면 지역정당은 기존 정당이건 어느 조직이 됐건 조직하기 어려운 청년 세대에게 매력적인 관계망, 나아가선 정치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지역정당을 고민한다면 청년 스스로가 주체로 나서 지역 내 기성 조직, 문화가 놓치고 있던 문제를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특히 저는 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있어서 이 점과 지역정당운동을 연결지어 생각해봤습니다. 소수자 정치, 소수자 커뮤니티와 접촉하기 위해선 자신이 사는 구역이 아닌 서울(그리고 서울 안에서도 특정 구역)로 가야합니다. 지역사회 소수자에 대한 포용성, 소수자와 소통하기 위한 기반이 부족한 탓입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소수자들이 지역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기분, 자신이 늘 머무는 공간에서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자신이 많은 시간 머무르는 공간에서 홀로 있는듯 한 감정은 인간의 정서적 안정감을 헤치게 되고 이는 소수자의 삶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또 한편으론 소수자 의제가 정당이나 정치단체에서 표현되는 방식은 지역과는 구분되는 부문의 영역으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수자 정치의 영향력과 활동 영역은 몇몇 거점이나 인터넷, 언론과 같은 공중으로 좁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수자 문제가 마치 지역 내지는 일반 시민들 삶의 현장과 구분되는 ‘특수한 문제’로 다뤄지는 점이 있는데 늘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또 한국 정치제도, 구조가 기득권 재생산에 초점을 두고 작동되는 점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이런 형식의 정치가 지속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럴 때 지역정당운동이 소수자, 소수자 운동이 그간 접근하기 어려웠던 지역이라는 공간, 더 나아가 소수자 정치를 가로 막았던 한국 정치구조에 도전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지역정당운동은 생활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것, 지역사회 안에서 감춰진 자원을 발굴하는 것을 과제로 안고 가야하는데, 이 과정에서 진보적 지역정당은 지역 내 소수자들과 소통해야 할 것이고 이는 소수자들은 그들이 지역사회와 연결하는데 지역정당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는 소수자정치에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가능성을 제공할 것입니다. 또 지역정당운동은 군부독재 시절로부터 이어지는 한국의 기득권 중심 중앙집권형 정치지형에 ‘파열음’을 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기성 정치는 지역을 단순 관리의 대상, 기득권 재생산의 공간으로서 통치했기 때문에 지역 내 많은 욕구와 갈등을 감춰왔습니다. 그러나 이를 분명히 드러내는 과정에서 그간 은폐 됐던 노동자, 시민, 여성, 청년, 소수자 등 구성원의 욕구와 의지를 기성 진보정치의 한계를 넘어 새로이 표현하고 조직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작은 승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진보정치의 긍정적 경험이 누적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러한 기대와 함께 앞으로도 지역정당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더 다채로운 모습의 운동을 만들어가는 동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