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31일 | 토미가 들려주는 삶

in #kr-pet6 years ago

요즘 대부분은 현관에 비밀번호를 띡띡띡띡 누르는 도어락을 쓸 것이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건전지를 갈아달라고 음악이 나온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미루다가, 집 안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AA 건전지를 찾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 찾다가 건전지는 AAA만 발견했고 더 재미있는 것들 발견했다. 큰 김치통 안에 들어있는 토미 사료다.
토미는 아주 애기일 때부터 제리(야생견, 토미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거의 사료만 먹이면서 키웠다. 때는 2000년, 사람이 먹는 것을 개가 먹으면 좋지 않다는 개 상식이 한국에도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토미는 사료를 와그작와그작 맛깔스럽게 먹방하는 것으로 우리집에서는 유명했던 애다. 좋아하는 사료도 분명하게 있어서 이것저것 섞어주면 이것은 밥통 바깥으로 빼 놓고 저것만 먹는 귀여운 짓도 했다.
작년 겨울쯤인가부터 토미는 사료를 입에 대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서 이유는 몰랐다. 추측하기로는 이가 아파서 딱딱한 사료를 못 먹나보다, 신장이 안 좋으니까 입맛이 없어서 자극적이지 않은 사료는 먹기 싫은가보다 쯤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토미는 거진 일년 동안을 <주사기로 먹이는 곰국, 치즈 육포, 구운 고기들, 치킨 중에서도 바삭바삭한 껍질 중심, 써니사이드업 계란 후라이 중에서 노른자 중심, 닭가슴살, 고구마과자, 홈런볼 중에서 초코 부분말고 바삭한 과자부분, 고구마 말랭이 간식, 요거트, 우유, 각종 치즈, 달달한 빵 종류, 역시 주사기로 먹이는 두유, 말랑말랑한 껌이나 간식 등>으로 연명했다. 입맛도 너무 짧아서 우리 가족들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토미입에 먹을 것을 갖다바쳤다. 먹는 것은 토미 마음이었다.
짧은 추억팔이를 끝내고 이제는 필요없어진 사료를 버리기 전에 한 알 가지고 토미에게로 갔다. 눈을 꼬옥 감고 자는 토미를 깨우기가 뭐해서 좋아했던 사료 한 알을 코 앞에 놓았다. 그리고 화장실에 있었는데 나는 엄청난 광경을 목격한다.

토미가 킁킁대며 눈을 뜨더니 사료를! 그 큰 사료를!(좀 큰 네잎클로버 모양) 와그작와그작 먹는 것이었다!!!!!!

와.............................................. 너무 감동적인 장면을 라이브로 보고 있었다. 토미는 그 이후에도 적은 양이지만 와그작와그작 사료를 먹었다. 가족들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그동안 우리 가족들은 토미는 이제 '사료를 안 먹는 강아지'로 단정지었다. 그래서 시도도 하지 않았던 것이 너무 미안했다. 현관 건전지가 닳지 않았더라면, AA건전지를 바로 찾았더라면, 사료를 보고 버렸더라면, 토미가 그 순간 사료를 먹지 않았더라면 토미가 아직도 사료를 먹을 수 있고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이건 '그렇게 될 일'이라고 밖에 여길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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