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4일 | 토미가 들려주는 삶

in #kr-pet6 years ago (edited)

최근에 엄마가 허리 통증이 심해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엄마가 없는 집에는 아픈 토미가 있고 우리 언니는 직장엘 다닌다. 아빠는 다른 곳에 사시고. 나야 자유로운 영혼이랍시고 시간을 유연히 쓸 수 있으니 토미와 엄마 돌봄이로 자진 당첨.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해도 당연하게 해왔던 일을 포기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집에 있는 토미가 걱정이 돼서 매일 드나들던 요가원엘 못간다. 마음이 편해야 요가를 하지. 엄마도 말은 안하지만 병원에 가면 심심하셨는지 날 반겨준다. 그래서 요가원에 가는 시간을 삭제하고 엄마와 토미에게로 간다. 남자친구 만나는 시간을 삭제하고 엄마와 토미에게로 간다.
엄마가 없으니 엄마가 해왔던 일을 내가 한다. 토미 약도 챙기고 토미 먹을 것도 챙기고 칭얼대는 토미랑 같이 자고 집안 환기를 하고 토미 콧바람도 쐬어주고 쓰레기도 정리하고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집안 청소도 한다. 한사람의 자리가 이렇게 크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계산해보면 몸이 고되야 하는데 오히려 가볍다. 눈이 반짝 떠진다.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자꾸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다. 기분이 좋다.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던데 정말인가? 내가 포기한 것들로 토미나 가족들이 편히 지내는 모습을 보면 저 아래에서부터 옅은 미소가 올라온다.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비싼 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을 부시럭 사들고 온다. 왜 또 사왔어. 비싼데. 그만 사오라니까 하면서도 밥 숟가락으로 푹푹 퍼먹는 둘째딸의 기쁨을 뜯어보면서 뒷통수로 미소짓던 아빠 마음이 이런 거였을까. 나도 이제 아빠처럼 엄마처럼 토미처럼 언니처럼 베풀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간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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