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13일 | 토미가 들려주는 삶

in #kr-pet6 years ago (edited)

토미는 하루에 두 번씩 다섯 가지의 약을 먹는다.

토미가 어릴 때는 소세지 안에 알약을 허술하게 끼워넣어도 잘 받아먹었다. 지금은 방광과 신장이 안좋다보니 입이 짧아졌다. 약이 들어간 음식은 귀신처럼 알고 입도 대지 않는다. 그래서 토미 돌봄이들은 '주사기로 약 먹이기'를 배워야했다.
토미는 이런 섭취 방법이 난생 처음이어서 놀란 눈치였다. 마치 테러를 당한 것 같았다. 약을 먹이는 입장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매번 기쁘게 받아먹던 토미였는데 이제는 싫다는데 억지로 먹여야 한다니. 착한 역할만 하다가 갑자기 악역을 맡은 기분이었다. 아 악역은 싫은데. 그래서 더 약을 먹이기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나 아빠는 달랐다. 아이를 키워봐서 그런가. 해야하면 어떻게든 해 냈다. 그런 모습이 참 멋지다고 느꼈다. 반면에 나는 현실을 외면하려고만 했다.
어느 날 엄마가 5박 6일로 여행을 가신단다. 언니와 나는 큰일이 났다. 당장 토미약은 어떻게 하지? 우리는 서로 미루다가 어쩔 수 없이 약을 먹이기로 했다. 주사기 조준과 압력 조절에 실패하는 횟수가 잦다. 약값도 비싼데 내 잘못으로 흘렸으니 자괴감도 만만치 않다. <토미는 약을 먹어야 삶이 연장되고 지금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는 배경 설정은 날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어느 날의 내 눈빛은 결의에 찼다. 그날은 약을 흘리지 않았다.
살다보면 벼랑 끝처럼 보이는 걸 마주한다. 벼랑을 외면한다면 비슷한 삶이 반복된다. 상황을 외면할 수 없거나 호기심이 생긴다면 벼랑 끝처럼 보이는 걸 마주하고 걸어가 보기로 한다. 그러기로 마음 먹은 사람에게 삶은, 다른 차원의 나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보너스 열쇠를 준다. 그것은 벼랑이 애초에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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