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11일 | 토미가 들려주는 삶

in #kr-pet6 years ago (edited)

널 온전히 믿어.

사고가 있은 후 일정을 쪼개 드디어 본가에 왔다. 내 손길과 냄새를 알아차린 토미는 코를 아무데나 비비며 반가워했다. 사고 전보다 잘 먹고 씩씩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토미, 좀 더 살고 싶어진거야?
나의 이 연쇄 반응은 영원하고 일방적인 추측에서 비롯된다. 토미가 말을 못해서가 아니다. 순간의 '말'로 표현해버린 것을 가지고 '소통했다', '공감했다'고 하는 건 우주를 헤매이다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우리 드디어 같은 것을 봤어! 맞지? 하는 것처럼 경솔하다고 생각한다. 삶은 어디까지나 내 영역에서의 영원한 추측일 수 밖에 없다.
토미를 안는 공식적인 자세가 있다. 왼팔로 감아서 세워 안는 자세다. 그 자세로 토미의 몸을 훑다보니 엉덩이 쪽에 걸리는 게 있다. 똥이다. 물티슈로 닦으려다가 세면대에서 엉덩이만 닦기로 했다. 왠지 토미의 똥은 더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인가.
이 장면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게 전부를 맡긴 토미의 느슨함이었다. 기운이 없어서 풀어진 느슨함이 아니라 정말의 안정감에서 온 믿음짓. 지혜야, 난 널 온전히 믿어. 소리로 대화를 할 수는 없지만 살과 살이 닿고 서로의 미세한 움직임을 보고 느끼면서, 우리는 대화하고 있었다. 말로 하는 대화보다 낭만적이고 또렷하다. 마치 이 세상에 있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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