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 어느 밖에서 문을 잠그는 선방.

in #kr-newbie7 years ago


 지난 3월 2일은 음력 정월 대보름이다. 달집에 붙은 불은 하늘을 향해 길을 재촉하는 한 편, 대한불교조계종 산하 총림(대형규모의 종합수도사찰)과 선원(참선만 하는 곳)에서는 일제히 동안거 해제를 맞았다. 90일 간의 집중 수행기간. 최소 8시간에서 16시간까지 수면과 식사와 약간의 개인정비를 제외하고 침묵속에 자신을 던지는 시간들이 마치는 날, 승려들은 스스로를 다시 같이 수행했던 동료들 앞에서 내려놓는 자자(자자)의식과 해제날의 법거량과 법회를 통해 자신을 점검하고 3개월 간의  만행을 떠난다.  음력과 양력의 시간 차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대학의 방학과 학기를 '반대로' 산다고 생각하면 아마 그 시간들에 대해 감이 잡힐 것이다.

 매년 여름과 겨울의 안거가 끝나는 날 이면 한 사람의 입에 주목한다. 대한불교조계종 기본선원 조실이자 신흥사 무문관 조실이신 설악 무산스님. 속명인 오현이 법명도 구분 못하는 문인들 덕에(...) 또 다른 법명이 되고 만 설악 무산(오현)스님의 법문은 매년 시의적이면서도 직설적이고, 복잡한듯 간결하다. 무엇보다 문장과 행간에 말의 맛이 있다.

  ... 대장경 속에서 부처님이 어떻다더냐. 그것을 버리는 날이 해제 날이다. 절간은 스님들 숙소이지, 절간에 부처는 한놈도 없다. 삶의 스승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늘상 만나는 사람들이 나의 스승이고 선지식이다. 그들의 삶이 살아있는 팔만대장경이다 ....  (2012년 동안거 해제 법문 중)
 “사람들은 스님들을 보면 뭘 좀 많이 안다고 지레짐작하고 이번에 누가 대통령이 되냐? 고 물을 것입니다. ‘삼독(三毒)의 불길을 잡는 사람이 민심도 잡고 대권도 잡는다’고 정중하게 전하십시오.”  (2017년 동안거 해제 법문)
 “(나는) 대중 여러분 한번 바라보고 대중 여러분들은 나 한번 바라보고, 나는 내가 할 말을 다했고 여러분들은 모두 들을 말은 다 들었습니다. 서로 한번 마주보고 그랬으면, 할 말 다하고 들을 말 다 들었으면 오늘 법문은 이게 끝입니다. (손뼉 세번)”   (2017년 하안거 해제 법문)

   

 올해 겨울동안 스님들은 설악산, 그 중에서도 백담사를 주목했다. 무산스님이 계시는 신흥사와 백담사는 결제와 해제를 같이 하는 형제사찰이다. 게다가 백담사는 기본선원과 함께 무문관이라는 수행처가 있는 곳으로 대한불교조계종의 선불교 전통의 "기초"와 "심화"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특히 무문관. 문이 없는 관문이란 의미의 이 수행처는 1인실이 기본이고, 청소같은 잡다한 소임이 없다. 엄청 편해 보인다고? 대신 문은 밖에서 잠근다. 밥도 하루에 한번만 준다. (화장실은 안에 있다) 최소한의 지원은 하겠지만 죽든지 살든지 3개월 동안 알아서 하라는 식의 무지막지한 이 무문관 수행은 선사에게는 한번 쯤 넘어야할 산 이고 쉽지않은 과제다. 그런데 이걸 사판승, 그러니까 행정전문가인 전 총무원장이 하겠다고 나섰다.  감이 안오는 사람을 위해 군대식으로 비슷하게 설명하자면 서울에 위치한 국군중앙경리단의 경리장교가 전역 전 직업보도반에 입교하는 대신 자신의 군생활을 돌아본다며 특전사 707특임대에 전입해 훈련받고 수료한 것 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편하다.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마쳤다. 말 한마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 30년 탐관오리 짓, 업장이 많이 소멸된 것 같다."

의외다. ( 물론 업장이 소멸됬는지를 스스로 안다면 부처의 경지이리라 생각하는데, "같다"라는 가정형을 썼으니 이건 희망사항이라고 보더라도..... )자신의 전 생애를 부정하는 듯 한 단어선택에 놀랐다. 물론 자승스님의 8년간에 대한 비판과 옹호의 의견이 있고, 나로서도 전 총무원장 스님의 행보에 대한 비판의 정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탐관오리"라고 평한 저 말 한마디 만큼에는 실로 머리가 숙여졌다.  자승스님의 행보가 끼친 불교사적 명암은 곧, 그리고 언젠가 승가와 불교사가들이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일 인의 수행자로 돌아오려는 스님께는, 깊은 환영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이를 보던 무산스님은 한 마디만 하셨던 모양이다.

 "괜한 걱정을 했다."  (불교신문 3월 2일자 기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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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스님의 한 마디에 놀랐습니다. 의외네요.
무산스님께서 끄떡이셨다면 ... 저도 자승스님에 대한 시각을 다시 ... 손모음

모든 승가에는 덕목이 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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