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섬에 대한 짧은 상념] 문래 철공업 단지

in kr-newbie •  8 months ago
  • 지금은 폐간된 계간지 <Holden!> 2013년 2호에 실렸던 제 글입니다.
  • <Holden!>은 제 지인이 창간해서 4-5호 정도까지 발매했던 잡지인데, 서울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작업집을 한 데 모은 것입니다. 일종의 Curation, Compilation이라 할 수 있겠네요.
  • 저는 영등포의 문래 철공소 단지를 첫 주제이자 장소로 다뤘습니다. 이후로도 2회 정도 더 글을 실었지만, 아무래도 이 글에 많은 애착이 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 글이 아주, 아주 깁니다. 한글2014 기준, A4 5쪽 정도에 이릅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봐주신다면 아주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제 부끄러운 졸문(拙文)의 일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 섬(島)의 특성을 규정하는 것은 고립성이다. 섬을 둘러싸고 있는 창해(蒼海)는 뭍사람에게 쉬이 목격되지 못하는 비일상성을 제공하며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반면 섬사람에게 그것은 뭍과 섬을 갈라놓고 고립을 강요하는 아주 몹쓸 놈이다. 요즘에야 섬에서 생활하는 것은 목가적 삶을 영위한다는 일종의 환상마저 품게 하는 낭만적인 무언가로 취급될 수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것은 ‘다 먹고 살 만’해지기에 나온 2차적 욕구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돌아갈 곳(歸處)으로서의 기억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섬의 가치는 결코 경시될 수 없다. 김성우는 수필 <돌아가는 배>를 통해 고향인 통영에서 바다와 함께 한 삶을 긍정의 언어로 재구성한다. 다만 이 미문이 ‘어릴 때에는 고생했지만 뒤돌아보니 바다를 벗 삼았던 시절이 좋았더라’ 라는 식의 회고로만 이해된다면, 젊어서 과문(寡聞)한 스스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
  • 도시의 특성을 규정하는 것 역시 고립성이다. 푸른 바다 대신 너와 나를 갈라놓는 것은 회색의 콘크리트 벽이요 각자가 지닌 소유의 ‘양’으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촌극이다. 그럼에도 섬과는 달리 도시에는 각종 부(富)가 집산되기에 사람들은 ‘섬’을 떠나서 이곳으로 몰려들고, 그 과정에서 다시 ‘섬’을 만들어낸다. 그 ‘섬’은 낙도(落島)와는 달리 사통팔달하여 손쉽게 갈 수 있지만 감화되기는 어렵다. 분명히 차로 15분이면 가는 곳인데도 동네의 모습이 너무나도 다르다. 어느 곳은 ‘땅을 사랑해서’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집이 즐비하고, 어느 곳은 고층 건물이 무시로 하늘을 긁어댄다. 그래서 박탈감은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
  • 대한민국 공화국에서 서울에 관한 몇 개의 수치 및 지표는 다음과 같다. 2011년 기준 GRDP 약 283조 원, 2013년 1월 기준 인구 약 1043만 명, 2012년 AT & Kearney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 순위 8위를 차지한 곳, 최근의 싸이 열풍으로 인해 주목받고 있는 강남대로, 이 정도가 서울에 대한 ‘대외적’ 시선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하긴 이전부터 서울은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깍쟁이라는 격하된 평가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체로 서울 사람이라 하면 무언가 ‘모던-걸’과 같이 도회적이고 현대적이며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존재로 인식되기 마련이었다. 1964년 리 시스터즈(Lee Sisters)가 부른 ‘서울의 아가씨’는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서울의 아가씨는 멋쟁이 아가씨, 서울의 아가씨는 맘 좋고 슬기로워 (중략)
서울의 아가씨는 깍쟁이 아가씨, 서울의 아가씨는 맘 좋고 슬기로워 (중략)
서울의 아가씨는 명랑한 아가씨, 남산에 꽃이 피면 라라라라 랄라라 (중략)
서울의 아저씨는 멋쟁이 아저씨, 서울의 아저씨는 돈많고 매너좋아 (후략)

♬ 리 시스터즈(Lee Sisters), ‘서울의 아가씨’ (1964)

그런 서울을 구성하는 우리네 평균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 서울의 속살을 바라보는 ‘대내적’ 시선은 무엇을 향해야 할 것인가. 대내적인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 애초 서울이라 일컬어지는 지역이 지금의 종로구와 그 일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영등포구와 같은 서울 외곽의 1차 ‘부흥’시기는 일제강점기이다.

  • “구한말 경인, 경부철도의 부설과 융의 4년(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도의위치 및 관할구역]을 새로 제정 시행”, “한촌인 영등포리가 교통, 상업의 중심지로 급속도로 성장발전하여”, “1936년 4월 일제는 당시 경성부의 구역을 크게 확장”,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시장이 관할하는 서울시 영등포구가 되었으며, 1946년에 종래의 일본식 동명인 [정]을 우리말 동명인 [동]으로 변경 통일" 따위의 설명이 이를 입증한다. 문래동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30년대 군소 방적공장이 들어서자 일본인들에게서 계옥정(系屋町) 이라 불리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광복 후 우리식 이름으로 고칠 때 "물래"라는 방적기계의 발음을 살려 문래동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 보편적인 설명이다.

  • 2차 부흥기는 산업화 전개 시기이다. 1970년~80년 시기에 많은 이가 ‘한 건 잡아보려고’ 너도나도 서울로 향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른바 산업단지가 생겨난다. 언제나 현상에 한 발 뒤쳐져 그것을 규정하기 마련인 학문의 용어를 빌어보자면, ‘공업의 집적’이 일어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이익 덕분에 사람이 더욱 몰려든다. 문래가 선택한 경로는 철공이었다. 특히 문래동 3가가 철재상가 지역이 된 것은 1976년부터 3년에 걸쳐 세운 철재상가 건물이 생기면서다. 1960년대 초 경인로를 중심으로 들어선 철재상들은 이곳에 옮겨오기 시작했다. 한창 잘나갈 때는 800여 개가 넘는 철공소가 운영되었을 정도.

  • 하지만 1990년을 전후로 철재상들이 경기도 공단과 수도권으로 이전하면서 철재종합상가 건물 2, 3층이 비어 가기 시작했다. 2, 3층에 들어선 업체는 주로 1층의 철재가공업체와 고객을 연결시켜주는 매개기능을 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130여 개 정도만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한다. 차가운 철공소를 서로 살을 부대끼며 덥히던 사람마저 빠져나간 문래동 일대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 공장과 사람이 빠져나가 한적하고도 삭막한 곳에 최근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한 것은 서로 대립되는 2가지의 움직임 덕분이다. 하나는 ‘문래 예술촌’으로 명명되는, 예술가들의 문래 이주이다. 임대료가 매우 싸다는 이점 덕에 2005년께부터 예술가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7월을 제외하고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헬로우 문래’, 5월 4일에 열리는 51+ Festival 등 이채로운 축제에 도시농업 프로젝트인 ‘문래도시텃밭’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른바 ‘한국의 브루클린’을 꿈꾸는 이들이다.
  • 또 하나의 움직임은 이른바 ‘재개발’이다. 이미 2012년 서울시는 10월 문래동 1~4가 일대 준공업지역 27만9472㎡를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실제로 문래동 일대를 돌아다니면 재개발 지정구역 고시 공문 내지 그에 관련한 의견을 표출하는 현수막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건물주들이 재개발 시 가치 하락을 우려하여 임대료를 대폭 올리거나 퇴거를 요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실제로 이곳을 떠난 예술가도 있고, 도시텃밭 프로젝트는 압력을 이기지 못해 중도에 정지되기도 한다.
  • 대한민국 도시 어느 곳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문래동은 특히 상충하는 욕망이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되는지 잘 보여주는 공간의 전범(典範)이다. 문래동이란 예술가에게는 경제적 이윤을 담보하는 장소라기보다는 자신의 창작욕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반면 원주민에게는 지긋지긋한 삶의 터전, 특히 한 몫 잡아보려고 고향까지 등지고 올라온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문화도 뭣도 아니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고단한 현실이다. 덕분에 지하철 2호선 문래역부터 1호선 영등포역에까지 이르는 구간은 아주 이질적인 것이 상존하고 있다. 영등포 타임스퀘어로 대표되는 대규모 상업단지에서부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재개발 대상 건물,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앞서 밝힌 철공소 등의 공업시설 그리고 흡사 시골의 5일장 풍경이 펼쳐지는 영등포청과물시장 등에 이르기까지.
  • 올해 2월에 문래동에 입주한 음악가 이재우씨는 문래에 관한 감상을 다음과 같이 풀어낸다.
    “솔직히 문래 예술촌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이사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와 같이 음악을 하는 등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안 정도입니다. 다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 동네는 진짜 황량해요. 앞으로 살 동네니까 뭐가 있나 궁금해서 쭉 둘러봐도 정말 아무 것도 없거든요. 그래서 저조차도 약속이 있을 때에는 다른 곳으로 나가요. 다만 철공소 바로 옆에 과일가게, 그 바로 뒤에 재개발촌, 그 바로 뒤에는 시골 시장에서 볼 것만 같은 흙냄새가 진하게 나는 모습을 동시에 보고 있자면 솔직히 여기가 서울이 맞나 하는 착각이 들긴 해요.”
  • 2호선 문래역을 나와 영등포역 쪽으로 조금만 걷노라면 앞서 열거한 모든 풍경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문래동이다. 그곳에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파이프를 용접하고 자르거나 청과물을 정리하는 평균의 삶을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누구는 큰 규모의 청과물 가게를 예닐곱개나 가지고 있어 외제차를 굴린다든지, 어디 목 좋은 곳에 건물을 가지고 있어 임대료만으로도 잘만 먹고 산다더라, 는 식의 도시괴담 역시 만연하다.
  • 이런 이질감을 넘어 일종의 죄책감마저 들게 하는 장소가 있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바로 뒤에 있는 홍등가이다. 낮에는 긴 차양막을 쳐놓아서 뭐하는 곳인지 쉬이 알 수 없다 하더라도 건물 위에 붙어있는 작은 옥탑방, 바닥에 떨어져있는 낯 뜨거운 사진의 명함으로 미루어 그 성격은 점차 확고해진다. 얼마나 가까이 있냐 하면, 타임스퀘어 후문으로 나와서 10초만 걸어도 바로 보일 정도이다. 아무리 사회가 근대화되고 산업화된다 하더라도 결코 해소되지 않는 욕망의 집합소에서 논리와 이성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짧은 탄식 후에 서둘러 발걸음을 달리 할 수밖에 없다.
  • 서울은 장삼이사가 모인 곳이다. 지역도, 직업도 모두 다른 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변주곡은 결코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김현철은 “서울도 비가 오면 괜찮은 도시“라고 칭송했지만 현실은 절규에 가까울지 모른다. 어쩌겠는가. 그게 삶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많은 이에게 서울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서울 사는 아저씨의 고향은 광주, 서울 사는 아줌마의 고향은 대구
서울 사는 기사님의 고향은 강릉, 서울 사는 이모님의 고향은 충주

그 좋은데서 뭐하러 올라왔어? 그 땐 뭐 돈 좀 벌러 온 거지
그래서, 돈은 좀 버셨소? 어떻게 된 게 벌어도 벌어도 모잘라!

서울 사는 노총각의 고향은 경주, 서울 사는 대학생의 고향은 대전
나이차고 너도 나도 올라가는 통에 끼여, 그 유명한 서울 맛 좀 보러 왔는데
장가도 못가 취직도 안돼 재미도 못봐 내 집에도 못가

서울 사는 뮤지션의 고향은 산골짝의 다람쥐
서울 사는 도우미 아가씨의 고향은 북쪽 너머의 북쪽
서울 사는 깍두기의 고향은 비린내 나는 어느 부둣가,
서울 사는 사기꾼의 고향은 비밀

그래 서울 와서 꿈은 이뤘소? 꿈은커녕 죄만 짓고 사는 거 같어~
다 잊고 고향으로 가는 게 어떤가? 아 쉼없이 내려가야 되는디!
내가 보고 싶은 곳은 이젠 서울 아니요 (반복)

♬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서울사람 (2012)


<참고자료>

  1. 경향신문, ‘문래동 예술촌’ 재개발로 사라지나, 2008년 8월 12일, 뉴스메이커 787호

  2. 함영준, 한겨레 매거진 ESC, “문래동 예술촌은 ‘시한부’ 성업 중”, 2013년 4월 24일

  3. Cha Woojin의 [차우진의 워드비트] 머무는 도시, 서울 (2012.3.24.) (http://www.weiv.co.kr/archives/1548)


<주석>

주1. 제목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명작인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1995)를 겨냥하고 패러디해본 것인데, 의도가 전달되지도 않고 재미도 없게 느껴졌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잘못이다. 당혹감을 느꼈을 독자에게 지면을 빌어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주2. 본문의 노래 중 '서울의 아가씨'는 밴드 ‘무드살롱’(MoodSalon)에 의해 2012년 동명의 노래로 리메이크된 바 있다. 여담인데, 노래 대목 중 ‘돈 많고 매너 좋아’ 는 실제 공연에서는 ‘돈 많고 정력 좋아’로 개사되기도 한다.

주3. "서울사람"(20120)는 라운드앤라운드 레이블이 2012년 발표한 [Seoul Seoul Seoul] 연작 컴필레이션 수록곡. 서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고 싶은 이에게 청취를 권한다. 3호선버터플라이는 '다시 가보니 흔적도 없네‘라는 탄식을 하며 얄개들은 ’무허가‘인지 ’무화과‘인지 알 수 없는 오두막의 노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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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예술촌, 몇년 전 한창 사진찍고 다니던 시절 가보고싶은 곳 중 하나였어요. 가려다가 어둠이 깔리면 분위기가 약간 쓸쓸하다해서 철길 찍으러 갔던 기억이 있네요. 글 잘 봤습니다! 다시 카메라를 들게 되면 제일 먼저 방문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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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가져다주는 느낌이 참 양가적이죠? 댓글 감사해요.

@yoon 님의 kr-pick 글을 보고 왔습니다. 필력이 너무너무 좋으시네요. 제게 있어 서울의 의미는 무엇인지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평소 보팅 게이지보다 더 높여서 보팅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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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필력이 좋단 말을 듣다니...@yoon 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ㅠ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글이 제대로된 보상을 받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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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봐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글이 고급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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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번을 적어놓지 않고 본가 다녀왔다가 이제야 확인합니다 ㅠ.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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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우 해놓고 보고 있어요. 문화계열 글 많이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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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종사자가 아니기에 깊은 속내와 이론적인 면모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 나름의 프리즘을 통해서 바라보는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으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우왕 ㅠㅠ

글 정말 잘읽었습니다. 글의 퀄리티에 한번, 글에서 묘사하는 문래동의 삶에 한번 깊은 인상을 받았네요. 언제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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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문임에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진하겠습니다!

매일 거니는 곳이네요. 매일 매일 지겹도록 ㅋㅋㅋ
근데 이렇게 보니 반갑네요 :D

문래동을 제대로 방문하지 못해본 게 아쉬워지네요. 서울같지 않은 그 흙냄새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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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생경한 풍경이었습니다. 무슨 경동시장에 온 줄 알았다니까요 ㅎㅎ
지금 가셔도 비슷하긴 할 겁니다. 사실 영등포는 지금도 부도심의 역할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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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시장하고 비교해주시니 뭔가 감이 오네요 ㅋㅋ 파견근무 때 항상 거기서 버스를 갈아탔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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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따라서 경동시장, 제기시장을 제법 다녔거든요. 그래서 그곳의 정취나 흥정소리, 이런 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다만 그 주변은 어느 정도 동질적인 것이 주변에 있다면, 문래동은 바로 옆에는 타워팰리스급 주상복합 건물이 있는데 바로 아래에서는 감자 당근 흙이 나뒹구는 등 이질적인 요소가 같은 공간에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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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님의 픽글을 보고 방문하였습니다. 좋은글 게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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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으앙 ㅠㅠ 저도 다른 분들의 좋은 글을 많이 발굴해서 추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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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제게 이런 영광이...비번을 적어놓지 않고 본가 다녀왔다가 이제야 확인합니다 ㅠ.ㅠ 앞으로도 열심히 글 써보겠습니다!

글쓰는 사람이 많아 멋진 문래동 8ㅅ8 부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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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마저도 또 변하겠지요? ㅎㅎ

길 지나다니면서 철공소가 멋스럽다 느꼈는데 slugnoid님 글을 읽고 가보면 다른 느낌이 또 들 것 같네요 :)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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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공소가 멋스러워진 것도 사실 최근의 일이지요 흐흐. 과찬 감사합니다.

저 이런 주제와. 이런 글 너무 좋아합니다.. 진짜 너무 좋아요.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문득 2호선 아현역, 아현동 판자촌이 떠오르네요....
누군가에겐 추억이 깃든 소중한 곳인데
지금은 아현동, 동 자체가 거대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 되었죠.
이런 거 보면 정말 씁쓸하고 슬픕니다.
문래동도 제 어린시절 기억엔 판자촌과 위의 예술마을(그 전엔 수많은 사람들이 숨을 쉬며 생업을 이어갔을 곳)이 선명한데..
현재 문래동 주위는 온통 대단지 아파트와 황량함 뿐이죠....
그 옆에 영등포(현 타임스퀘어 자리)엔 경방 방직 공장. 그 후 경방필 백화점. 그 후 지금 모습인 타임스퀘어까지. 20년이란 사이에 정말 많이 변했지요.
추억과. 향수가 하나하나 없어지는 것만 같아서 정말 슬픕니다.
도시란 정말 패러독스로 가득한 느낌입니다 항상...

정말 잘 보고 갑니다 @Slugnoid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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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도시는 보존이 아니라 늘 파괴와 재생산의 이미지로만 남아있는 게 참 아쉽습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어떻게하면 이렇게 글을 잘쓸수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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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쓰게 된 글인데 저 스스로도 꽤 맘에 들어하긴 합니다. 물론 잘 썼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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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쓰셨습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