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처럼-SWEDEN] 생활의 지혜 - 북유럽의 재활용 자동화기기
나는 산수 혹은 수학의 시옷 자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철저히 문과적인 인간이다. 웬만하면 계산, 특히 돈 계산 같은 것은 책임지고 하지 않는다. 그런고로 빠릿빠릿한 수세미양이 여행 중의 모든 돈 계산을 독점하고 맡아서 했다.
각 나라에 도착할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동전의 외모와 값어치를 매칭시키는 일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크기가 크다고 해서 비싼 것은 아니고, 모양이 다른데도 같은 값인 동전들이 있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낭패를 겪게 된다.
슈퍼에 가서 간단한 장을 보고 수세미양은 계산을 하고 나는 장바구니에 주섬주섬 물건을 넣고 있었다(장바구니는 매우 요긴한 물건이므로 적당한 것을 지참하시길 바란다). 계산하시는 아주머니가 동양인이기에 힐끔힐끔 보고 있었는데,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으시더니
“한국에서 왔어요?”
하시는 거다.
5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그녀는 서양에 사는 한국인들이 즐기는, 우리에게는 조금 짙은 화장과 표정을 장착한 얼굴로 반갑게 인사했다. 스톡홀름에 자리 잡고 사신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처음 계산을 시작할 때 영어를 쓰셨고, 우리에게 말을 할 때 한국어를 쓰셨고, 그 다음 손님에게는 스웨덴어를 쓰셨으니 무려 3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시는 멋진 분이었다. 자신의 명찰을 가리키며 한국 이름이 있지만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어려우니까 쉬운 이름을 지어 부른다며 그 짧은 시간에 폭풍 같은 수다를 쏟아냈다. 우리가 반가우셨던 모양이다. 우리도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눈 후 계산대를 나섰다. 타국에서 자국민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신기하고 마음 놓이는 일이다. 몇 년 살아보면 그런 느낌이 좀 덜해지려나?
북유럽 국가에서는 빈 페트병이나 캔, 병류를 슈퍼마켓에 비치된 자동화기기에 반환하고 돈이나 쿠폰으로 바꿀 수 있다. 그래서 간혹 지금 당장 출근할 차림의 멀끔한 사람이 커다란 봉투를 들고 길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져 페트병을 수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게까지 검소할 줄이야...
하루에 한 두 캔 정도 맥주를 흡입해댔던 수세미양도 그 빈 캔을 기계에 반환하고 알뜰하게 동전을 받아오곤 했다. 나도 한번 시도해보았는데, 단순하게 생긴 기계가 의외로 똑똑해서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잘도 알아채는 잔망스런 놈이었다. 괜히 내 낡은 슬리퍼를 집어넣으면 무엇을 내놓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는데, 그걸 집어넣었다가는 퉤! 하고 내뱉으며 스웨덴어로 당장 꺼지라고 호통을 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계산대의 한국인 아주머니에게도 면목이 없어질 것 같고.
나는 이런 류의 기계만 보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생활의 지혜로 똘똘 뭉쳐 이루어진 친구의 조언 중 하나다.
집에 곰팡이가 핀 건지 녹이 슨 건지 둘 다인지, 그런 췌장암이 피부에 전이된 것 같은 느낌(정말이지 느낌일 뿐 췌장암이 어찌 생겼는지 전혀 모른다)의 십 원짜리 동전이 몇 개 있었는데, 씻어보아도 별달리 소용이 없었다. 아니 뭐 그런 것을 또 굳이 씻었느냐고 한다면야 할 말이 전혀 없긴 한데, 십 원짜리 동전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안 씻어주는 것도 좀 매몰차지 않은가. 나름 돈으로 태어났는데 못생겨졌다고 버릴 수도 없고. 그것 참 생각하면 할수록 난감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좀 상하기도 하고 십 원짜리 동전 몇 개가 상당히 여러 개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걸 지갑이나 주머니에 넣기도 찝찝하고 어떻게 하나 하다가 그 친구에게 고민을 토로했더니 너무 간단히 답을 내놓았다.
“자동판매기에 넣고 반환해.”
고래맛 맥주와 생선뼈를 고아 만든 술은 무슨 맛일까?
SWEDEN
우월한 자존심
북유럽처럼
본 포스팅은 2013년 출판된 북유럽처럼(절판)의 작가 중 한 명이 진행합니다.
북유럽은 물리적으로 멀고 또 가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더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팔로우하고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