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언과 명시 감상> (1)
출처 - 구글
- “군자불천노 불이과 君子不遷怒 不貳果”
이 말은 <논어-옹야편 論語-雍也篇>에 나오는 글인데, 공자께서 제자인 안회(顔回)를 칭찬하는 말입니다. “哀公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 “애공이 묻기를: ‘제자 중에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하기를: ’안회가 배우기를 좋아하는데, 불천노하고, 불이과하다‘’”
애공(哀公)은 공자가 활동하던 시기 노(魯)나라의 26 번째의 군주(BC521~468)이다.
여기서 “불천노(不遷怒)”라 함은 자신의 어떤 일로 생긴 노기(怒氣)를 아무 상관도 없는 남에게 전가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고사성어로는 “노실시색(怒室市色)”이란 말이 있습니다. 해석하자면: “노실(怒室)은 집안 일로 생긴 노기(怒氣)이고, 이 화(火)를 바깥(市)에서 드러낸다(色)”는 뜻으로, 안에서 생긴 화를 바깥에서 엉뚱하게 남에게 푼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다스리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의 몸 안에서 생긴 화기(火氣)입니다. 그래서 중의(中醫)에서는 이것을 내화(內火)라고 칭하여 밖의 기후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부터 인체에 미치는 외화(外火)와 구분지어 말합니다. 이 내화(內火)가 정도가 지나쳐 인체 상부인 위로 치솟게 되면 뇌졸중(뇌출혈)으로 중풍에 걸려 말을 더듬거나 반신불수 등의 병이 발생하게 됩니다. 절집에서 스님들께서 좌선(坐禪) 중에 잘 걸리는 상기병(上氣病)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역시 내화(內火)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재물을 구하기 위해 고심을 하나, 도(道)를 구하기 위해 좌선을 하나, 얻으려는 노력이 내화(內火)를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 것을 좌선수행(坐禪修行)이라고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를 내는 것도 습관이 됩니다. 작은 화기(火氣)를 잘 참아 넘기는 것도 습관화할 수 있다면 내화(內火)가 생기는 근원이 없게 되고 이에 따른 질병도 미리 예방하는 방법이 됩니다. 더구나 자기의 화기(火氣)를 남에게 전가시켜 남까지 병에 걸리게 하는 전염병은 만들지 않게 됩니다.
“불이과 不貳果”의 이(貳)는 두 이(二)이 문언체입니다. 과(果)는 과실이나 과오는 말합니다. 직역하자면, “두 번의 과실을 저지르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같은 잘못을 두 번 반복해서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통 사람의 실수나 과오가 반복되는 것을 삼가 조심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스승인 공자로부터의 배움을 몸소 실천하는 덕행의 결과입니다. 유가(儒家)의 덕목(德目) 중에서 행함을 중시하는 배움을 말합니다. 현대에서 말하는 “배움”이란 현실에서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대인들은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않는 배움에는 힘을 쓰지 않고, 돈 벌이가 되지 않는 배움을 하찮게 여깁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은 잘 못 배웠다는 등식이 쉽게 성립됩니다. 또한 현대인에 있어서 사람의 격(格)은 돈으로 치장될 수 있다는 오해를 하게 됩니다.
안회(顔回)가 살았던 시대에도 무력을 중시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시대였으니 예(禮)와 인(仁)을 주장하는 공자의 목소리는 작을 수밖에 없었고, 늘 공자의 무리들은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안회는 그런 공자를 나이 14에 스승으로 받들어 40세의 이른 나이에 죽을 때까지 불평 없이 공자의 뜻을 받들고 실천하였습니다. 안회는 평생을 형편없는데서 살고 변변치 못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공자의 학문을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身在陋巷,一箪食一瓢饮).
- 공자께서는 처음엔 안회(顔回)를 상당히 미련한 제자로 여겼으나, 그의 학문에 대한 성실함과 진실한 인품에 탄복하여 제자 중 가장 아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회가 죽었을 때 공자께서 대성통곡을 하셨다고 합니다. 공자는 걸출한 안회를 만나 가르치는 보람을 얻었고, 안회는 공자라는 대단한 스승을 만나 평생 그의 학문을 흠모(欽慕)하면서 살았으니 스승과 제자 사이의 극(極) 보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문을 하면서 이 정도의 행복을 현대에서도 얻을 수 있을까?하고 고민해 봅니다.
덕분에 좋은말 배워갑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