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궁극적인 종착지 - 써커 펀치 리뷰
보통 예술가들은 자신이 어머니가 되어 외부에서 받은 영감을 잘 키워내 작품으로 발표한다. 인간은 한번 수정에 한번 출산하지만 예술가는 좀 다른 것 같다. 예술적 배아가 수정되는 시기도 다르고 성장하는 시기도 다르고 출생하는 시기도 다르다. 물론 사산하는 경우도 많다.
예술가는 가난하기 마련이다. 습성이 가난함을 부르게 된다. 최선의 것은 그만큼 귀하고 값비싼 희생을 치른다. 그렇게 얻어낸 최선은 이중적이어서 누군가에겐 다이아몬드보다 귀한것이 되고 누군가에겐 잘 싼 똥덩어리 취급을 받는다. 고흐처럼 되기 싫은 예술가들은 결국 나쁜 고아원 원장이 되어 자신의 자식들을 잘 훈련시켜 팔아먹는다. 그러면서도 한탕 잘 벌어서 이 짓을 그만두고 여유롭게 살고 싶어한다.
E Sens - Back in time 중
그러나 대부분 그저그런 짬만 찬 예술가가 되거나 굶어죽거나 은퇴하게 된다.
한편, 출생되지 못한 배아들은 어떻게 될까? 예술가들은 본인이 아니면 그 배아들을 성숙시킬수 없다고 믿지만 유감스럽게도 예술가는 집단심리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출생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예술적 배아는 언제 출생할수 있을까?
그 답은 예술 작품마다 다르다. 그리고 그것이 예술작품의 주제가 된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예술가들은 고통의 기간을 가진다. 써커펀치는 스토리가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 베이비돌의 판타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 판타지가 현실을 은유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전두엽 절제술 장면을 이어받은 버스 정류장 엔딩장면은 거대한 거짓말이 진실임을 폭발적으로 보여준다.
비슷한 영화로 킬빌이 있는데 킬빌은 환영받는 반면 써커펀치는 환영받지 못한다. 꽤 인상적인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