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울: 1C 현실을 살아낸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

in #kr-movie6 years ago

이 영화가 다른 기독교 영화와 크게 다른 세 가지가 있는데 이적과 기적이 없고, 값싼 구원이 없고, 믿음에 대한 설득이 없다는 점입니다.

줄거리

A.D. 67년 로마 대화재의 범인으로 네로 황제는 신흥종교인 기독교로 지목합니다.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투옥되고 고문 받고 그리고 처형됩니다. 그들의 존경 받는 리더 사도 바울은 네로에 의해 불법재판을 받고 사형언도에 처해져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때 로마의 지하감옥으로 잠입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누가복음의 저자인 의사 누가입니다. 그 목적은 박해 속에 소망을 잃어가는 기독교인들에게 160,000 km를 여행하며 복음을 전한 바울의 사역과 그가 얻은 지혜들을 기록하여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는 사도 바울의 일생과 신앙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고, 그것에 따라 누가 복음의 후편인 사도행전이 완성됩니다. 그 과정에 초대교회 공동체의 삶이 여실현재는 인구 약 40만명의 몰타공화국입니다. 그곳은 ‘부활’, ‘글래디에이터’, ‘트로이’ 촬영장소이기도 합니다.

  1. 영화 바울에는 이적과 기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누가의 합당한 설득에 수긍한 바울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곧 사도행전의 초안입니다. 이를 위하여 누가는 바울이 갇혀 있는 감옥을 들락거려야 하는데 감옥사령관에게 이것이 보고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령관은 바울의 대필서인 누가의 글을 압수합니다. 혹시라도 그 내용 중에 방화의 사실이라도 나온다면 네로에게 영웅이 될 것은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3군 사령관에서 좌천이 된 그가 복직됨은 물론 출세가도를 재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가 난 사령관은 누가마져 투옥합니다. 그런 단서를 전혀 찾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제 누가는 공개처형 되어야 합니다. 그 날 밤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천사가 베드로의 감옥 문도 열어주었고, 지진이 나서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감옥도 열렸는데 그런 이적은 없었습니다. 이 영화에 이적이라면 바울의 과거 회상에 잠깐 나올 뿐이고, 차가운 현실인 다음날 죽음만 있을 뿐입니다.

  1. 영화 바울에는 값싼 구원이 없습니다.

로마 감옥에는 여인들과 어린이들도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들에게 내려지는 처형방법은 로마의 가로등이 되어 밝혀지거나, 사자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갇힌 누가는 ‘우리가 받는 고통은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우리 모두 함께 예수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곤 그들과 같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합니다. 그 다음 날 아침 감옥에 있던 모두는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라는 기도를 하고 햇볕이 드는 원형경기장으로 향합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겁과 두려움 그리고 원망은 없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구원은 대가를 치른 십자가였고, 그것은 값싼 것이 아니라 생명과 바꾼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바울은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금쯤 하늘에서는 천국잔치가 열렸겠네’

  1. 영화 바울에는 설득되는 믿음이 없습니다.

아침이 오기 전 사령관의 딸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인 의사라고 기피하던 사령관은 할 수 없이 누가를 감옥에서 급히 불러냅니다. 각종 신에게 제사를 지내도, 로마의 의사들도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누가가 전에 고쳤던 병입니다. 그렇게 사령관의 고명딸은 기적이 아니라 누가의 의술로 살아납니다. 그렇다면 사령관의 모든 집안이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신에 호의적인 사령관이 ‘그래도 믿지 않는다면 어쩔 텐가?’라고 바울에게 묻습니다. ‘당신을 설득하려 한 게 아닙니다’라는 말에 둘은 웃습니다. ‘그 분의 때가 있을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바울이 죽기 전 사령관에게 한 말입니다. 돌아가는 사령관의 뒷모습에 얼른 눈가를 닦는 모습이 전부입니다.

바울을 누가가 찾아가게 한 또 다른 목적이 있었습니다. 박해로 숨은 기독교공동체에서 답을 알고자 함입니다. 로마를 벗어나야 하는지, 인내로 버텨야 하는지… 그 때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님은 내가 우로 생각하면 좌라고 하셨고, 좌로 가려고 하면 우로 인도하셨다. 주님께서 인도하실 것이다’ 믿음은 격려할 수도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울은 그들에게 믿음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말에 발끈한 누가는 ‘믿음을 격려할 순 있잖아요?’라고 힐책합니다. 바울은 그 말에 ‘그러다 예수님보다 날 보게 면 어쩌나’라고 응수할 뿐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자신의 딸이 나을 수 있을까?’ 라는 전의 사령관의 말에도 바울의 답은 하나였습니다. ‘나도 모른다’ 능력을 보여달라는 주문에 그는 무능력자가 됩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낼 때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약한 것을 자랑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되고, 믿음은 그런 데에서 생기는 것이니까요.

에필로그:

영화 바울에는 믿음으로 견뎌내고, 믿음으로 로마를 떠나는 부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고발되면 곧장 군인들에게 잡혀가는 상황에도 고아와 과부를 받아주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만 의지하게 하는 리더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의 전쟁을 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있고, 사랑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진리가 녹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기 전 사울의 비포와 아프너가 소개되고 있고, 그의 돌에 맞아 순교한 스테반이 무게를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 편지인 디모데후서의 전달과정이 리얼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누가가 지켜 보는 가운데 사명을 다하고 가는 마지막 노사도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특별히 1세기의 현실을 결코 떠나지 않고 이겨낸 믿음의 선배들의 삶이 있습니다. 신앙은 현실에 지지 않습니다. 십자가로 얻어진 구원은 결코 값싼 것이 아닙니다. 그 귀한 구원은 보석처럼 빛날 것입니다.

영화 바울은 영화이기에 픽션도 있고 논픽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람 내내 논픽션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은 계속하여 이어지는 주옥 같은 대사가 거의 다 신약성서 특히 바울 서신서에 그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가에 의해 완성된 사도행전이 필사본으로 백 여권 작성되어 각 교회 공동체에 어떻게 전파되는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바울은 황홀한 그래픽도 심지어 클라이맥스도 없는 흥행보다도, 종교적인 칼라보다도 오르지 신앙의 본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영화 바울은 기독교 영화의 모든 편견을 깬 작품입니다.

Sort:  

이런 영화가 있었군요. 꼭 봐야겠어요. ㅠㅠ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5
JST 0.029
BTC 63396.80
ETH 2615.51
USDT 1.00
SBD 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