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령화 가족 --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steemCreated with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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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식구의 차이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가족의 정체성의 핵심이다. 가족은 서로 피가 섞였다는 점이 타인과 차별되는 근거가 된다. 그런데 개 같은 가족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달러 베이비>에 나오는 가족처럼. 밀리언달러에서 가족은 피를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가족은 메기와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사랑에 기반하지 않으면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구(食口)를 국어사전에서 이렇게 정의한다.

[명사] 1.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왜 끼니를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한가? 인간은 밥을 먹지 못하면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가족을 해체시켰다. 대학을 나왔지만 영화감독으로 실패한 후에 인생을 포기한 인모, 총체적 난국 식충이 한모, 남자 갈아치우기 전문 미연, 왕싸가지 조카 민경, 그리고 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엄마.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가 없는데 같이 밥을 먹는다. 피가 섞이지 않았는데도 같이 밥을 먹는 식구들이다. 왜 이들은 서로 잡아 먹지 못해서 안달하면서 같이 사는지,,그 이유는 이 장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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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왕리 해수욕장에 놀러가는 식구들, 옆자리 사람들과 싸움이 붙고 서로 엉켜 싸움을 한다. 동생 미연이 시비를 걸면서 싸움을 하자 동생을 위해 싸우는 두 오빠. 그 옆에서 난장판이 되든 말든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는 엄마.

딱 한가지 잘하는게 있다며, 세 자식들을 응원하는 엄마는 흐믓하다. 가족이 별건가? 서로 위해주면 가족 아닌가?

엄마는 매일 삼겹살을 사온다. 도무지 무대책인 백수건달, 구제불능인 아들들을 내치지 않고 어떻게든 돈을 구해서 애들에게 밥을 멕인다. 세상의 모든 엄마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들 목구녕에 밥 들어가는 게 가장 좋다고 하지 않나. 로맹가리의 <새벽의 약속>에 나오는 엄마가 생각났다. <고령화 가족>의 엄마는 오로지 자식들 밥 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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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밥을 먹여주고 키워줬으니 엄마다. 낳기만 하고 버린 엄마가 엄마인가? 깜방 들락거리고, 집에서 백수로 놀고, 조카 팬티 뒤집어쓰고 딸딸이 치는 불상사를 저질러도 감싸주는 길러준 엄마가 진정한 엄마인가? 엄마에게 받은 사랑은 한모의 가슴 속에 움이트고 싹이 자란다. 밤새 미용실 아기씨를 생각하며 만두를 사들고 기다리는 심성은 분명 엄마에게 배운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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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이 콩가루 같은가? 인모는 떡치는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무엇을 하든 그게 중요한가요?"

해석이란 무엇인가?

해석은 나의 기존 사고방식에 대한 전환이다. 내가 어느 한 가지 관념에 집착해 있을 때 다른 관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은 어떤 안경을 썼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 노란 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노란색으로 보인다. 배추 흰나비가 보는 세상과 개구리가 보는 세상은 달라 보인다. 세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노랑색 안경을 쓴 인간과, 파란 안경을 쓴 인간과, 배추 흰나비와 개구리가 보는 세상은 각각 달라 보인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해석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노란 해석과 파란 해석은 왜 존재할까? 내가 세상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내가 인지하는 세상은 내가 어떤 사고를 갖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고 해석하느냐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당신이 세상을 비관이라는 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게 비관적으로 보일 것이다. 당신이 낙관적이라는 안경을 꼈는가? 당신이 보는 세상은 즐거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당신이 용서라는 안경을 꼈다면 당신은 타인의 허물도 이해해줄 수 있는 아량이 생길 것이다.

인모는 엄마를 이해하고 감싸안는다. 나는 이 장면에서 끝내 울고 말았다. 인모가 변한 것이다. 인모는 세상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엄마가 창녀라도 당신은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엄마는 당신에게 사랑 밖에 준게 없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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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이 세 번째로 결혼하는 남자. 결혼 횟수보다 더 황당한 미연의 가족사를 받아들이며 미연을 사랑하는 이 남자. 사랑이 과거의 허물을 따지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여자를 사랑하느냐 마느냐 문제라는 것. 사랑은 둘이서 만들어가는 건축이라는 것.

사랑의 한문은 愛 를 우리말로 변역할 때 '애' 라고 한 것은 애껴준다는 애다. 사랑은 애껴주는 것이다. 사랑이 허물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애껴주고 싶은 감정의 발로다.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을 애껴주고 싶은가? 그럼 당신은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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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
단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위대하다.
자식을 밥 먹이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하는게 엄마다.
엄마는 미래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엄마는 지금 당장 자식이 밥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근시안적이라고?

그렇다. 엄마는 지금 당장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것만 찾는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사랑에 눈이 멀어서 근시다.
이 엄마 때문에 엄마를 생각하며 울었다.
나는 어떤 엄마여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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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진상, 진상, 이런 진상들이 없다. 그런데도 이 집 엄마는 이런 자식들이 뭐가 좋다고 매일 매일 고기를 구워 먹인다. 이 영화를 하기 전에, 잔소리하는 엄마 역할은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나는 이 영화에 정말 감사한 것이, 내가 엄마로서 승격한 것 같다. 자식들이 집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게 엄마 품이고 다 내 핏줄이니까 서로서로 제 갈길 가면서 다 같이 사는 모습들...이게 가족인 것 같다."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묻는 이 영화를 통해 같이 식사를 하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라. 콩가루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버물려지면 얼마나 이쁜 영화가 탄생하는지 직접 확인해보시라. 당신이 죽을 때 이 세상에 남기고 갈 것은 사랑 밖에 없다는 것.

당신의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 무엇인지 머리끄댕이 잡고 쌈질하는 콩가루 집안의 일상을 보면서 확인해 보시라.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고 사랑을 설교하는 송해성 감독을 만날 것이다. 그 위대한 영화 <파이란>을 만든 감독이지 않은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만든 감독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