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온도 (시편 104편 1절 ~18절) 조약돌묵상

in #kr-life6 years ago

시편 104:1~18.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옷으로 덮음 같이 주께서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로 솟아올랐으나 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하며 주의 우렛소리로 말미암아 빨리 가며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곳으로 흘러갔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샘을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도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를 찬양하는 기사와 그 창조하신 세계를 하나님께서 긍휼로 다스리시는 기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시인은 주의 권능과 지혜, 그리고 피조물들을 향한 선한 섭리하심을 그리고 있습니다. 본시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 자연을 다스리시는 여호와, 짐승과 사람을 먹이시는 여호와, 피조 된 세계를 보호하시는 여호와 등입니다.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공중누각을 세우시기 위해 물 위에 그 들보를 놓았다’라는 말입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물’을 두 층으로 보았습니다. 곧 궁창 위의 물(대기권 속에 떠 있는 모든 수분)과 궁창 아래의 물(바다를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물)입니다. ‘누각’은 건물 위의 건물 즉, 높은 건물 위에 또 세운 건물로 그래서 공중누각 이라기도 하며, 왕궁을 상징하는 건물로 보기도 합니다. 대들보라고도 하는 ‘들보’는 지붕을 세우기 위해 세우는 기둥과 기둥을 가로지른 나무를 말합니다. 결국 이 말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궁전을 궁창 위에 있는 물들 위에 세우기 위해 들보를 놓는다는 말로, 여호와의 ‘전지전능’성을 묘사한 말입니다.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세우셨으니 이 땅이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기초를 놓기 위하여 땅을 받치는 기둥을 세운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본문의 요지는 땅을 떠받치는 기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온 땅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동설을 주장하던 갈릴레오와 논쟁을 벌일 때, 천동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강력하게 인용하였던 표현이라고 합니다. 이 시에 따르면 지구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오히려 성경은 지동설을 지지합니다. 바로 욥기에 '땅을 공간에 다시며'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공중에서 내려온 어떤 줄에 땅이 매달려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땅이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라 그렇습니다.

뜨거운 사랑이 있고 식어버린 사랑이 있는 것을 보면 사랑에는 온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시인이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뜨거웠습니다. 그의 눈에 빛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옷이었습니다. 하늘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커튼이었습니다. 구름이 보였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구름은 승용차였고 바람은 하나님의 전용비행기였습니다. 활활 타는 불길의 불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종이었습니다. 그의 눈에 드넓은 대지와 깊은 바다가 보였습니다. 순간 태곳적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역사를 한 눈에 보고 말았습니다.

교만한 바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땅을 던져 그것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반항해 산들 위로 솟아 올랐습니다. 하나님이 물들을 꾸짖었습니다. 우렛소리 같은 여호와의 명령에 그만 혼 줄을 놓은 물은 주께서 정해 주신 곳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높은 산이고 낮은 골짜기입니다. 그리곤 다시는 물은 땅을 넘보지 못했습니다. 바다와 땅의 경계가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그것을 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았고, 들었고, 그분의 사랑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이 탄생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없었다면 결코 오늘과 같은 아름다운 시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뜨거우면 문제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고통까지도 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식어 있다면 문제가 정말 문제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모든 것이 다 잘못된 작품입니다. 사고와 불행은 원망과 절망의 대상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식으면 식을수록,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문제만 더 커져서 죽을 지경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하나님 사랑을 찾는 것이 관건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문제 해결은 다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 사랑이 다시 뜨거워진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다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구해야 합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사랑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에 대해 건망증이 걸린 것이지요. 거기서 조금 더 심하면 치매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언제 하나님 사랑을 했는지 기억을 못하는 것이지요. 거기서 조끔 더 나오면 아주 심각해집니다. 영적 나병에 걸리고 마는 것입니다. 도무지 그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것은 비극 중에 비극입니다. 그 전에 조치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았고, 또한 성화의 길을 가고 있으며 장차 영화로운 날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되찾아 다시 뜨거워지는 것이 지상 최우선의 과제입니다.

연인에 대한 사랑의 온도 체크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직장이 서로 달라도 늘 곁에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배우자에 대한 사랑의 온도 확인해 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설령 미국에 있더라도 SNS를 통하여 더 깊어지고 더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온도 점검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자연과 사람이 모두 다 하나님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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