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2번의 전환점 중 그 첫번 째 이야기. ( 轉禍爲福 전화 위복)

in #kr-life6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야구 이벤트 진행 하는 @banguri 입니다.

비가 촉촉히 내리는 오후인데, 오늘은 제가 살아온 발 자취를 기록 해보려고 합니다. 많이 배우지 못 하신 부모들이 저희 4남매를 키웠다는 이야기는 한번 포스팅을 했는데, 그래서 였는지 저는 무척이나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약한 몸으로 잘 할 수 있는 일이 공부 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하지만 누구나 사춘기를 겪듯이 중학교 까지는 그나마 열심히 한 공부가 고등학교 올라가서 사춘기가 왔는지, 2학년이 되면서 내리막 수준이 아니라 그냥 꼬라 박게 됩니다.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 라는 말 처럼 지나와서 보면 핑계는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으로 인해서 집에서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당시에는 학력고사 시대 였고, 재학생은 학원과 과외 금지에 야간 자습이라는 것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저희 학교는 신설 학교라서 2학년 부터인가 3학년 부터 야간자습을 했던 것 같습니다. 늦은 사춘기와 부모님에 대한 반항이 겹쳐서 오면서 지방에 있는 그저 그런 대학을 진학했습니다. 수학은 그래도 지속적인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한번 만 하면 잘 했는지라, 수학과 관련있는데로 진학을 했습니다.

80년대 학번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3월이 되면 춘투가 시작하고, 4월 5월 광주 민주항쟁 시위, 반 독재 시위, 졸업정원제 폐지 시위 같은 것들이 매주 있었고, 학교 시험은 거의 치르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대학은 공부하고 학문을 연구 하는 곳이 아닌 시위의 장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공부를 역시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시대의 아픔을 외면 할 수있는 용기는 없었고, 시대의 아픔을 같이 하려고 했으니 더더욱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하다가 입대 시기를 놓칩니다. 대학 4학년이 되어서야, 늦었지만 다시 공부를 해야 겠다고 마음 먹게 됩니다. 도전해보고 싶은 시험도 있었고, 대학원에 진학도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자대가 아닌 타대의 대학원에 진학 하는 일은 상당히 힘이 드는 일이었고, 정말 말 그대로 공부를 할 수 있는 곳 이었습니다. (혹시나 제 생각만 그랬을지도...) 타대에 전공과 관련된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만 하다가 졸업을 하고 입대를 하게 됩니다.

대학을 마치고 제대를 하고 늦은 나이에 대학원 준비를 다시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많이 쓰지 않는 머리로 다시 시작한 공부는 쉬울 일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죽자 살자 한 공부였는지, 운이 있었는지 다행히도 서울에 있는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을 합니다. (중간 과정이 너무 기네요. 생략 ^^)

공부를 하면서 재미 있었습니다. 해보고 싶은 공부였고 도전 하고 싶은 시험도 관련이 있는 전공이었는지 참 열심히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합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한 없이 내려 갈 것 같은 인생도 언젠가는 오르막이 있습니다.

진학을 위해 서울에 올라 갔지만 그 당시 사실 아버지께서 참 많이 아프셨습니다. 10년이 넘게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상태였고, 옆에 누가 있어야 했는데 그걸 제가 아닌 여 동생들이 뒤치닥 거리를 했습니다. 그 아버지께서 돌아가십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집안이 조금 힘들어집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이 하신 일이 아파도 계시는 것과 아예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것은 차이가 났습니다.

그때까지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공부를 하면 참 힘이 들었습니다. 아니 하루에 많은 시간을 공부하면 당연히 힘이 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몸이 참 약했습니다. 안 믿으시겠지만 그 당시 키는 180에 가까운데, 몸 무게는 50 Kg 가 조금 넘었으니 걸어다니는 해골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힘들다고만 생각했지 건강이 그렇게 나빠진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병은 급성 간염... 많이 안 좋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 하십니다. 빨리 입원 하라고...

그렇게 휴학을 하고 제가 크고 자란 고향으로 내려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5~6개월 후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아버지를 잃고, 그나마 아들 하나뿐인 제가 또 그렇게 되었으니 어머니의 충격은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거의 2달을 입원한 후에 퇴원을 하고 집에서 무위도식을 하다가 아침에 큰 뉴스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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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가 붕괴를 합니다. 저는 아주 놀랐습니다. 사실 거의 매일 저 다리 위로 저 다리가 무너지는 그 시간 부근에 버스를 타고 제가 다녔습니다. 아마 붕괴한 시간이 출근 그리고 등교하는 시간 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더 생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학교 가까이 이사하기 전에는 준비하는 시험 공부를 위해서 수업이 없어도 거의 도서관에 간다고 성수대교를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저 다리를 꼭 지나가야 했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 그랬다고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드니, " 정말 너는 다행이다. 몸이 많이 아파서 내려와서 그 나마 저런 사고를 안 당했는지도 모르잖아. 이제 빨리 툴툴 털고 일어나서 아버지하고 엄마가 한 일 같이 하자. 엄마 혼자서 너무 힘들다. 그리고 니 성격에 또 올라가서 공부한다고 그러면 아마 정말 큰 일 날 것같다. 그러니 공부 하지말고 그냥 나랑 장사하는 것이 어떻겠니? " 라고 저에게 제안을 하십니다.

여기가 저의 첫번 째 인생에서 전환점인 듯합니다.
공부를 하다가 건강을 잃어서, 하는 공부 마무리를 못 지었지만 덕분에 큰 사고를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하기 싫은 월요일 오후 센티해집니다.
남은 시간 잘 보내세요.

지금도 성수대교 사고로 인해 큰 상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 분 들께 저로 인해 기억을 떠 오르게 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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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 날을 기억합니다.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렇죠. 머리가 띵했습니다.

어렸을때 몸이 안좋으셨군요! 지금은 건강하신거죠?
건강을 잃으면 모든걸 잃는거라고 하잖아요! 항상 건강이 우선입니다!

네. 건강이 많이 안 좋은 것이 아니라 많이 약했습니다.
공부 하면서 지치면 소주 먹고, 스트레스 받고 불면증에...
하여간 그 당시에는 많이 안 좋았습니다.

이제는 바닷가로 이사 오면서 담배 끊고 대신에 소맥을 많이 먹네요.
살도 많이 찌고 아저씨 배 처럼요. ^^

늘 고맙습니다.

저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학교에서 소식을 접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힘들고 어려운 시절, 가슴 속 아픔이 있는 글인데, 그리고 저보다 한참 선배님의 삶인데도 읽으면서 공감이 되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바쁜 중에 형님의 진솔한 글을 읽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네요. 그 또한 신기합니다.

마음이 편해졌다니, 저도 아주 좋은데요.
평창 일 잘 정리하세요. 저희도 처가에 집을 짓는데 참 머리가 아프네요.
처가 집 건축이 정리되고, 록엽씨도 정리 되고 하면 한 번 초대하겠습니다.

그 때까지 버팅기기
스트레스 받지말기
1일에 1포스팅 하기...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등교 후 TV 화면으로 사고 장면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죠. 저 즈음 믿을 수 없는 사고들이 참 많아서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도 했는데... 결국 IMF로 거덜내고 수십년 지나서도 세월호 참사를 겪어야 했던 걸 생각하면 열불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치열했던 80년대에 그냥 주저앉지 않고 맞서실 수 있던 용기가 멋집니다.

별 말씀을 요.
지금 살아가는 전체 세대중에서 저희 세대가 제일 꿀 빨던 세대입니다.

IMF 를 겪었지만 지금 연세드신 전후세대에 비할까요? 아니면 지금 사회에 막 진입하려는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에 비할까요?
지금 세대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에 사는 이들 거의 다 맞서 나갔습니다.

댓글과 방문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저는 성수대교를 지날 때 가끔 왠지 모르게 섬뜩합니다. 매일 다니는 그 길에서 사고가 났지만 .. 우연히도 피하게 되서 엄청 다행이네요 ; )

그렇겠죠? 아마 트라우마 가진 분들 많이 계실겁니다.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수동나눔]무조건-수동보팅 28회차 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tv로 저장면을 보곤 현실감이 전혀 없었던 기억이 나네요..
두달간 입원한건 힘드셨겠지만 큰 사고를 면할수있었네요 다행입니다.

살면서 지나와 보니 그러네요.
늘 감사합니다.

정말 운명이뭔지.. 이럴 때 보면 어쩌면 정해진 운명이란게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드네요..

쎈치해지는 글 잘 읽고갑니다.
2번 째 전환점이야기도 기대하겠습니다.
보팅완료.

네 댓글과 소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호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셨군요.
그래도 인생의 전환점이라니 이전보다 나아진거겠지요? 항상 건강 잘 챙기세요. 보팅하고 갑니다^^

아마 저 보다 힘든이들이 더 많을테니, 힘들지 않다는 것이 맞습니다. 건강도 하고요.

자주 소통하겠습니다.

최근 글을 클릭해서 들어왔다가 전편이 있는 거 같아 이 글부터 읽었네요.
그렇게 큰 키에 그정도 몸무게시라니..
얼마나 몸이 약해지셨는지 알겠네요.
아버님일과 공부하시랴 여러가지가 많이 힘드셨나봐요.
그래도 다행히 성수대교 사고때 피해가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후편 봐야겠습니다.ㅎㅎ
몰입해서 읽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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