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출범과 광주시민들의 한(恨)
안녕하세요~
@keydon 입니다~
오늘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38주년 되는 날입니다.
38년 전이라고 하니까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사이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네요~
오늘은 5.18 민주화 운동이 끝난 후~
출범된 프로야구에 대해서 포스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끝난 후,
결국 낙지 대가리가 대통령이 되었고,
낙지 대가리는 정통성도 없이 국민들을 탄압하여~
손에 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3S 정책을 실시합니다~
3S 정책이란~
즉, Sports , Screen , Sex
이 세가지의 머리 글자를 딴 것으로~
위 세가지를 통해 5.18등을 통해 극에 달한~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른곳으로 돌리기 위한 교묘한 정책입니다.
결국 낙지 대가리의 3S 정책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야간통행금지가 사라지고
그에따라 술집,모텔,성매매 업소등의
다양한 유흥 산업들이 발전하게 되며~
필연적으로 양은이파나 서방파와 같은 조폭들도
덩달아 그 규모가 커지게 됩니다.
또한, 영화 산업쪽에서도 통제가 많이 완화되어~
애마부인같은 개방적인 성인영화가~
상영관마다 급속도로 퍼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스포츠 분야에서는
바로 프로야구 출범이 가장 큰 이슈였죠~
당시 축구를 좋아하던 낙지 대가리는 처음에
축구를 프로스포츠 산업으로 육성하려 했으나~
축구는 정부지원금이 많이 들어~
대신 대기업들에게 야구단을 하나씩을 떠맡기는 방식으로~
정부지원금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야구를 프로스포츠 산업으로 육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야구단을 하나씩 맡기려 했던 대기업들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구단 운영을 선뜻 맡기를 꺼려했죠~
현대의 故정주영 회장은 88 서울 올림픽 유치에
들어간 돈도 많은데 야구단 운영까지는 힘들다며 거절했고~
럭키금성(LG)도 구자경 회장의 확답을 못받았다는 핑계로
발을 빼게 됩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MBC가 서울을 연고로~
삼미가 인천을 연고로~
OB가 대전을 연고로~
삼성이 대구를 연고로~
롯데가 부산을 연고로~
서울~부산을 잇는 경부선 프로야구 연고팀이 확정됩니다.
하지만 전라도 지역의 연고팀을 맡아줄
기업은 쉽게 구할 수가 없었죠~
당시, 낙지 대가리에게는 5.18 등으로 분노심이 극에 달한
광주지역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호남 지역의 프로야구팀 출범이 절실했습니다~
결국 , 청와대측에서는 기업 오너가 호남사람인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프로야구팀 창단을 권유하게 되죠~
하지만 대표적인 호남기업이었던 금호와 삼양, 그리고 교보는
비싼 야구단 운영자금 때문에 거절하게 됩니다.
그러던중, 해태라는 기업이 야구단 창단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고~
야구단을 운영하기에는 규모가 다소 작았던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결국 해태가 광주를 연고로
야구단을 창단하는 것을 승낙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업규모가 작아서 많은 돈을 쓸 수 없었던 해태는
겨우 다섯명의 투수로 야구단을 창단하게 되었죠~
감 독: 김동엽
코 치: 조창수, 유남호
투 수: 김용남, 이상윤, 강만식, 방수원, 신태중
포 수: 박전섭, 김용만, 김경훈, 홍순만
내야수: 김성한, 김봉연, 차영화, 조충열, 최영조, 차정득, 임정면
외야수: 김준환, 김일권, 김종모, 김종윤, 김우근
그래서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내야수 김성한이 투타겸업을 하게 됩니다~ ㅋㅋㅋ
하지만 이런 어려움 끝에 간신히 창단한 해태를 향해
다른 기업들의 반발이 있었는데~
롯데는 동종업계의 기업이라는 이유로~
삼성은 기업 급이 안맞고 듣보잡 기업이라는 이유로~
(금성도 없고 현대도 없고~)
반발이 좀 있었다고 하네요~ ㅋㅋㅋ
아무튼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인천,서울,대전,광주,대구,부산 연고의
총 6팀의 프로야구 창단팀이 확정되었고~
그렇게 1982년 3월 27일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삼성 vs MBC의 개막전~
당시 개막전 시구자는 낙지 대가리가 맡았고~
개막전 "첫 안타"와 "첫 홈런"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잘 아시는 삼성의 이만수 선수가 차지합니다.
그리고 리그 "첫 시즌"에서
OB 베어스가 박철순 선수의 22연승을 앞세워서 우승하고~
초대 홈런왕은 해태의 김봉연 선수가 차지하죠~
뿐만 아니라 MBC의 백인천 감독겸 선수는 꿈의 4할 타율을 기록하고~
투타 겸업의 해태 "김성한 선수"는 3할 13홈런 10승이라는~
동화같은 성적을 기록합니다~
흥행에도 성공하여 매경기 구름떼같은 관중들이 몰렸으며~
TV에서도 야구단을 보유한 MBC를 필두로 야구경기가 연일 중계됩니다~
당시 "평균 월급" 20만원~30만원이던 시절에~
야구장 특석표가 3만원에 육박했다고 하면 믿으시겠는지요?
5.18 민주화 운동의 아픔이 채가라앉지 않은 광주에서도~
프로야구의 붐이 일어나서~
결국 낙지 대가리는 본인의 의도대로
광주시민들의 분노를 어느정도 잠재우고~
광주시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스포츠로 이동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당시 광주 성인 남자 1인당 연 4회의 야구장 방문 통계가 이를 증거합니다.
당시 타지역에 비해 낙후된 환경과 차별
그리고 5.18 민주화 운동등의 정치적 희생에 대한 한(恨)을
광주시민들은 야구로 풀었던 것이죠~
당시 야구장을 찾은 광주시민들은
팀내 4번 타자이자 홈런왕인 김봉연 선수만 보면~
"오늘도 한 방 쳐서 광주시민들의 한 좀 풀어달라고"
넋두리 했습니다~
이런 광주시민들의 마음이 선수들에게도 전해졌을까요?
겨우 투수 5명으로 창단하여 다른 팀의 절반밖에 안되는~
선수단 규모였던 해태 타이거즈는 이듬해 1983년
한국 시리즈에서 MBC 청룡을 4:1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경기장에는 목포의 눈물이 울려퍼지며~
광주시민들은 가슴 속에 깊히 맺힌 한을 풀어내며 기뻐합니다.
그렇게 해태왕조의 역사는 시작되었죠~
오늘 포스팅은 여기까지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구독자 감사 힌트>
본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제가 진행하는 "간식값 나누기" 이벤트의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해 드립니다~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저희 동네에서는 브라보콘 5개에 3,500원에 팝니다~
그럼 "간식값 나누기 이벤트" 꼭 당첨되세요~
재밌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_^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낙지대가리 이놈!!!!!!!!
이벤트 참여 감사합니다ㅎㅎ
보팅 꾹 누르구 가용~^^
고맙습니다~
살아있는 역사이야기네요. 낙지대가리 호칭이 넘 공감이 가네요.
역사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서 앞으로도 자주 올릴거 같아요~ ㅎㅎ
이시스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기아의 과거 네임 해태~잘 읽었어요
오늘도 낙지대가리가 여러번 등장하네요ㅎ
울동네랑 아이스크림 가격이 같군요^^
근데 미미님은 광주 어느 동네 사시나요? ㅎㅎ
혹시 제가 아는 동네 사시나? ㅋㅋㅋ
어느 동네를 아실려나요ㅋㅋ
저는 북구 토박이예요~번화가 아니어서 모르실거 같아여ㅎㅎ
캬... 일목요연한 정리~~
요새 바빠?
넴... ㅠㅠ
원년 프로야구는 이런 모습이었군요. 잘 보고 갑니다!
해태는 어떻게 투수5명 + 김성한을 가지고 80게임을 치뤘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스테리합니다~ ㅋㅋㅋ
갑자기 궁금해져서 찾아봤더니 팔 갈아마시기 아닌가 싶네요... 타자 전향한 김성한 빼고는, 투수 5명 모두 커리어가 8년 이하로 짧네요 ㅠㅠ
와-근데 더 충격적인게 뭔지 아세요? 다른 팀들도 투수진이 최대 8명이에요 ㅋㅋㅋ 심지어 삼성은 6명인데 그 중 2명은 10이닝도 안 던져서 실제로는 투수 4명이서 80게임 ㄷㄷㄷ
하루에 투수 많이 나와봐야 2명이었겠네요~
완투쯤은 해줘야 호투라고 인정받았겠어요 ㅋㅋㅋ
[5·18기념 퀴즈이벤트] 블록체인 언어로 오늘이 어떤 날인지 맞춰볼까요? 이벤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
정답을 잘 맞춰주셨네요 ㅎㅎㅎ 보팅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ㅎㅎ
<행복한 스팀잇 만들기 프로젝트> 이웃의 글을 추천하고 보팅도 받고에서 @mimistar님이 추천 해주셔서 응원보팅 하고갑니다~ :D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D
고맙습니다~ 저도 참여하러 가겠습니다~
야구 역사를 너무 정리를 잘해주셨네요
잘보고 갑니다~ 오리궁뎅이 김성한~ 그립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