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it과 함께하는 한국사이야기 69) 광해군 -뛰어난 중립 외교를 펼친 임금 / 대동법과 동의보감 / Korean history

in #kr-history6 years ago

안녕하세요 @eunhaesarang입니다.

오늘 이야기 할 인물은 왜란의 침입으로 도망을 간 선조의 자리를 지킨 광해군의 대한 이야기입니다.

광해군.png

후궁의 자식으로 선조에게는 늘 외면당하며 자랐습니다.

선조는 신성군을 더 아꼈지만 피난길에 사망하자 어쩔수 없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606년 세 왕비(훗날 인목대비)가 영창대군을 낳자 선조는 세자를 바꾸려 했지만 1608년 선조가 급사하면서 광해군이 왕위에 오를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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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된 후 임진왜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복구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일단 불타버린 궁궐을 복원했고, 세금제도도 고쳤습니다.

특히 지방마다 특산물을 공물로 바치던 것을 쌀(대동미)로 통일하는 제도, 대동법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한의학적으로 현재까지 최고의 한의학 서적인 [동의보감]을 허준에게 쓰도록 했습니다.

광해군은 국제적 감각도 뛰어났습니다.

일본과의 국교를 회복시키며 승려 유정을 대표로 파견해 조선 포로를 데려오도록 했고, 통신사도 다시 파견했습니다.

또한 북방 정책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1616년 후금(청)이 건국되었는데, 후금이 명을 능가할 거라고 생각하고 중립외교를 펼쳤습니다.

후금이 명을 공격하자 위기에 처한 명이 조선에 지원군을 요청했습니다.

신하들의 의견은 분분했습니다.

사대주의자인 서인은 상국인 명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광해군은 고민 끝에 지원군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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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중립외교를 지키고 싶었기에 지원군을 이끌고 가는 강홍립에게 명을 적극 돕지 말라는 비밀 지시를 내렸습니다.

후금을 자극하지 말라는 의미이지요.

강홍립은 왕의 명령대로 싸우는 척하다가 후금에 투항했습니다.

탁월한 외교였지만, 서인들은 명을 배신하는 행위로 여겨 비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무렵 광해군은 당쟁 때문에 지쳐 있었고 서인은 이런 광해군의 모든 행동을 비판했습니다.

결국 왕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무서운 폭군으로 돌변하게됩니다

자신의 형제인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1618년 아버지 선조의 부인, 인목대비도 폐위시키고 후궁으로 강등시켰습니다.

인목대비를 폐위시킨 것에 대한 분노로 서인들의 정권 타도의 기회를 주게 된 셈이지요.

결국 1623년 서인들은 광해군을 패륜아라고 비난하며 반란을 일으켜 축출하여 유배지로 보내고 유배지에서 광해군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능양군이 인조 임금이 되는데 이것이 인조반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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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인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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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안타깝네요. 사랑만 더 받고 자랐으면 훌륭한 성군이 되었을텐데...

맞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것 같아요
반려견도 사랑을 주면 잘 따른데 광해군이 참 고독한 생활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16세기의 연산군,17세기의 광해군...
연산군은 그렇다 쳐도, 광해군 대에 반정이 성공한 것은 조금 의아하네요. 왜란, 호란 때문이었을까요? 이후로는 반정이 없었던 걸 보면 정세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다만 왕이 되어서는 십수년간 조선을 망친 암군이 광해죠 ㅜㅜ 궁궐만 재위 기간 내내 ...

짱짱맨 부활!
호출감사합니다

유명한 광해!군요...
아쉽네요 저렇게 많은 일을 하고도 결국엔...
정치란 주변 참모들이 참 중요한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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