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it과 함께하는 한국사이야기 31) 고려 태조 왕건 - 천하를 하나로 후삼국을 통일하다 / Korean history

in #kr-history7 years ago

안녕하세요 @eunhaesarang입니다. 오늘 나눌 이야기는 고려 태조 왕건입니다. 왕건은 송악의 호족 왕륭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왕륭은 궁예에게 송악을 내주고 충성을 맹세하게 됩니다. 궁예의 밑으로 들어간 왕건은 여러 차례 후백제와 전투를 벌였습니다. 왕건의 집안은 해상 무역을 오래 해와서 그 노하우를 활용해 물길을 이용한 공격을 벌였고 남쪽으로 내려가 아래서부터 후백제를 공격하는 전략이 적중했습니다. 전라남도 나주 지역에 근거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하게됩니다. 후백제는 남북으로 협공당하는 꼴이 돼 버렸습니다. 왕건은 후백제와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인품도 훌륭해서 궁예도 왕건을 신임해 913년 시중에 임명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2인자가 되는 거죠. 얼마 지나지 않아 궁예가 폭군으로 돌변하자 918년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신숭겸, 복지겸, 홍유, 배현경이 반란을 주도하여 성공하게 됩니다 이들은 왕건을 왕으로 추대했고 나라 이름은 고려로 정하게 됩니다.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뜻입니다. 연호도 지었는데 반란이 아니고 하늘의 명을 받은 혁명이라는 뜻으로 천수(天授)라고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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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 탤런트 최수종님]

그 다음 해 태조 왕건은 송악으로 수도를 옮기게 됩니다. 아무래도 근거지가 그곳이라 든든했겠죠 그리고 난 다음에는 호족들을 포섭하게 되는데 호족들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고 딸이 없는 호족들에게는 왕씨 성을 하사하게 됩니다. 고려가 점점 안정화되고 가고 있는 순간에 후백제는 신라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후백제군은 신라의 대야성, 조물성을 공격했고 마침내 927년 견훤은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습격하게 됩니다. 이때 신라의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는데 급히 고려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후백제 병사들은 닥치는 대로 약탈과 사람을 죽였습니다. 마침내 신라 경애왕은 견훤 앞에 끌려오게 되는데 견훤은 한심하다며 경애왕에게 자결하라고 명합니다. 그래서 경애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견훤은 새로운 왕에 경순왕을 앉히고 철수하고 명을합니다. 뒤늦게 태조 왕건이 기병 부대를 이끌고 달려와서 퇴각하는 후백제 군대를 공산(오늘날 대구)에서 칠 예정이었습니다. 견훤은 고구려군을 전략을 이미 읽고 있는 상태였었기 때문에 오히려 고려군이 포위되어 버렸고 태조 왕건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후백제의 대승으로 끊나게 됩니다. 고려가 전세를 역전시킨것은 930년 고창(경북 안동) 전투였습니다. 후백제는 연승 거두고 있던 때였던 시기여서 태조도 자신이 없던 전쟁이었는데 의외로 후백제는 8천여 명의 병사를 잃게 됩니다. 고려가 대승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승리의 비결은 신라의 호족들에게 있었는데 경주의 만행을 기억하고 있었던 신라의 호족들은 일제히 고려를 지원했고 고창 전투가 끝난 직후 30여개 군현이 또 얼마 지나지 않아 110여 개의 성이 추가로 고려에 항복을 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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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백제에서 큰 사건이 터집니다, 견훤이 후궁의 자식 금강을 후계자로 정하자 장남인 신검이 발란을 일으킨 겁니다. 신검은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게 되는데되 견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려도 달아나게 됩니다. 왕건은 그런 견훤을 극진히 맞아들였고 한때 적이었지만 이제 동지가 됐으니 상부로 모셨고. 양주 땅도 식읍으로 주게 됩니다.태조 왕건에게는 겹경사가 찾아옵니다. 935년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를 찾아와 항복의 예를 갖추게 됩니다. 천년 왕국 신라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죠. 더불어 후삼국 시대의 통일이 빛이 보이는 순간이었죠. 936년 태조가 후백제에 대해 총공격령을 내리고 고려군은 일선군(경북 구미 선산)으로 진격했고 일리천이란 하천을 사이에 두고 후백제군과 격돌했는데 고려의 승리로 끝납니다. 마침내 고려가 한반도를 통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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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후 태조 왕건은 북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게 됩니다.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족을 원수로 규정하고 여진족을 공격하여 옛 수도인 평양을 서경으로 격상시킨 뒤 북진 정책의 전진기지로 삼았습니다. 태조 말년에는 청천강에서 영흥만에 이르는 고구려 영토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태조는 불교를 숭상했고 백성의 화합을 추진했습니다. 옛 백제의 유민, 신라 유민, 발해 유민을 포용하여 지방 호족들도 자기 편으로 끌어는 정책을 씁니다. 그 일환으로 6명의 왕후를 포함해서 29명의 부인을 맞는 것도 호족들이 배신하지 못하도록 그 가문의 딸과 정략결혼을 한 것입니다. 사실 호족의 세력이 아주 강했습니다. 호족들이 배신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고려의 위기가 올 수 있었기 때문에 태조 왕건은 호족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호족의 가족을 수도로 불러 인질로 잡아두는 기인 제도를 운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왕권이 약한 것은 변하지 않았는데 왕권이 강력해진 것은 4대 광종 때부터였습니다. 광종은 고려의 기초를 다진 사실상의 고려의 건국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은 광종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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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이야기,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신라의 합병이 꽤나 순조롭게 진행됐군요. 피튀기는 전쟁이 있었으리라 예상했는데... ㅎ

생각보다는 그런것 같습니다
하지만 몇차례의 전투가 았었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좀 있는 것으로알고있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와 어릴적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진짜 재미있게봤는데!!!

ㅎㅎㅎ 그런가요
새록 새록 떠오른다니 기분이 좋네요
행복한 하루 됫에ㅛ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예전에 배웠던것들이 새록 새록 살아나고 재미있네요.

네 감사합니다
저도 하나씩 적어가면서 재미를 느끼네요 ㅎㅎ

학교다닐때는 그렇게 지루하던 국사였는데 은혜사랑님 글은 재미난거 같아요~ㅎㅎ

감사해요 재미나게 읽어줘서

신라의 호족들의 지원에 눈길이 가는군요.
그만큼 덕을 많이 쌓아야 할 듯 합니다.

맞아요 배신의 정치인데
적을 많이 쌓으니 그렇게 순순히 호족들이 도워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또한 호족들도 목숨하고 달려 있어서 그랬겠죠 ㅎㅎ

즐거운 스티밋!
힘내세요 빠샤!

넵 감사합니다 오늘도 힘을 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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