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it과 함께하는 한국사이야기 25) 신라 신문왕 - 통일신라 기틀을 마련하다 / Korean history

in #kr-history7 years ago

안녕하세요 @eunhaesarang입니다.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통일신라 기틀을 마련한 신라 신문왕에 알아보겠습니다

통일신라는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습니다. 일단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귀족들의 권한을 약화 시켜야 했고,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을 잘 보듬는 것도 아주 중요한 숙제였습니다. 다행히도 신문왕은 이런 문제를 잘 풀어가서 통일신라의 기틀을 잡는데 성공을 합니다. 신문왕은 정치 체제부터 정비합니다. 귀족들의 화백회의를 약화시키고 왕의 직속기관인 집사부를 강화시키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화백회의 의장인 상대등은 약해지고 집사부의 우두머리인 시중의 권한은 강화되었습니다. 자신에 반대하는 귀족, 특히 외척의 진골 세력은 확실히 제거하게 되는데 그중에는 장인도 처형해 버리고 왕비도 내쫓게 됩니다. 당연히 귀족들은 벌벌 떨게 되었겠지요. 다음으로 정비한 것은 군대였습니다. 자신의 측근들을 장군에 임명하고 중앙정부를 보호하기 위해 9서당이란 중앙군을 두고 이와 별도로 지방에는 10정을 두었습니다. 그 다음엔 682년 국학을 세워 학자들을 양성하고 학교도 만들게 됩니다. 신문왕은 국학 출신의 학자들이 성장해서 왕의 친위 세력이 되어주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2.jpg

행정구역도 대재적으로 정비하게 되는데 전국을 9주소 5소경으로 나누웠고 수도는 통일신라 이전과 마찬가지로 금성(경주)에 두었습니다. 오늘날의 직할시에 해당되는 5소경은 금관경(김해), 남원경(남원), 서원경(청주), 중원경(충주), 북원경(원주) 이렇게 5소경을 둔것입니다 이제야 통일신라의 골격이 어느 정도 만들어진 것 같지요 행정구역도 어느 정도 정비가 되었으니 말이죠. 마지막 개혁 하나가 남았습니다. 689년 신라 신문왕은 녹읍 폐지합니다. 녹읍은 귀족들에 나누어 주는 땅인데 관료가 되어서도 일을 하지 않아도 귀족들이라면 누구나 녹읍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귀족들은 경제적으로 부담을 안 가지고 살았겠죠. 이 녹읍을 폐지하고 나니 귀족들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비도 내쫓고 장인도 처형을 해버린 신문왕을 감히 두려워서 누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녹읍을 폐지하는 대신 관료들에게 '관료전'이란 땅을 주고 직급에 따라 곡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때의 개혁을 바탕으로 훗날 722년 모든 농민에게 '정전'을 지급해 농사를 짓게 합니다

3.jpg

신라 신문왕 덕분에 신라는 산뜻하게 출발하고 그 이후로도 한동안은 태평성대를 이룹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불교의 발달입니다. 불교를 빼고는 통일신라를 논할 수가 없습니다. 불국사, 석굴암 등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을 보면은요. 신라에서 불교가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통일 전쟁을 전후해서입니다. 당시 많은 승려들이 불교를 배우러 떠나는데 그중에 한 명의 원효입니다. 오늘은 통일신라 기틀을 마련한 신문왕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은 그 유명한 원효대사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같도록 하겠습니다

Sort:  

다시 한주의 시작을 짱짱하게 시작해야죠!
날씨도 풀렸고 화이팅입니다!

네 한주 시작 열심히 달려봅니다
가즈아~~~~

경제적 기반인 녹읍을 뺏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었죠.
무시무시할 정도의 왕권이라 성공적인 개혁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타지에 나가게 되어서 추억 릴레이는 내일이나 모레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ㅠㅅㅠ

그렇죠 힘이 있어야 뭐를 할수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스팀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어요

딱딱한 역사이야기를 참 잘쓰시네요~^^잘읽고갑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8
TRX 0.15
JST 0.031
BTC 60795.60
ETH 2627.31
USDT 1.00
SBD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