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의 백치와 죽은 그리스도

in #kr-histor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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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홀바인 <무덤 속 죽은 그리스도의 시신> (1520~1522) 전체 그림(위)와 부분 확대(아래). 30.5 x 200 cm, 스위스 바젤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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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지미르 보르트코 감독의 러시아 미니시리즈 10부작 ‘백치’(2003). 주인공
미슈킨(예브게니 미로노프)이 홀바인의 그림 ‘무덤 속의 그리스도’ 앞에 서 있
다.
스위스 신학자 발터 니그는 “그리스도인은 좌초하게 마련이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그리스도를
닮은 미슈킨 공작은 문자 그대로 좌초한다. 그의 순수한 연민은 싸구려 동정심으로 오해받고, 그의
선의는 이용당하며, 그가 도와주려고 했던 인물들은 죽거나 파멸한다. 그의 휴머니즘은 우유부단으
로, 겸손은 무능으로 치부된다. 그는 주인공으로서도, 그리스도의 대역으로서도 실패했다.

‘실패한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도스토옙스키 부부가 1867년 8월 12일 바덴바덴에서 제네바로 가
는 도중에 들른 바젤에서 형성되기 시작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16세기
독일 화가 한스 홀바인의 ‘무덤 속의 그리스도’를 직접 보기 위해 바젤 미술관을 방문했다. 부인의 회
고록을 읽어보자.

“그 그림은 남편을 압도했다. 그는 그림 앞에서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나는 너무나 참혹
한 느낌이 들어 다른 전시실로 갔다. 15분인가 20분 쯤 후에 돌아와 보니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그
그림 앞에 붙박인 듯 계속 서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홀바인을 “놀라운 예술가이자 시인”이라 부르며 열광했다. 도스토옙스키 사전에
서 ‘시인’이란 신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를 지칭하는 찬사다. “남편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의자에 올
라서서 그림을 보았다. 나는 벌금을 물게 될까봐 조마조마했다.” (중략)
그의 그림은 도전이자 시험이다. 마치 “이래도 믿을 테냐”라고 묻는 듯하다. 미슈킨의 말처럼 그런
그림을 보고 있다가는 “있던 신앙심도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그림에도 ‘불구하고’ 더 깊은 신
앙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폰비지나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강해질수록
신을 믿고자 하는 욕구는 더욱 강력하게 자라난다”고 썼다. “불행 속에서 진리는 더욱더 밝게 빛난
다”고도 했다.

  • 석영중의 <맵핑 도스토옙스키 33> '바젤: “완벽하게 아름다운 인간” ' 중에서

내가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읽었더라면, 내 『명화독서』 책에 『카라마조프 형제들』과 크람스코
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도 넣었을텐데! 만약 후속편을 쓰게 된다면 써볼까? 하지만 석영중
교수님이 이렇게 잘 써주셨으니, 내가 더 붙일 말이 없을지도...
그러고 보면 도스토옙스키는 참 탁월한 미술 감상자였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내가 그의 소설을 좋
아한 것도 그의 소설들이 드라마틱한 회화나 연극 미장센 같은 면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게
다가 그는 그림들에서 인간을, 이미지의 표면 이래의 깊이와 이미지의 정지 의 시간을 아우르며 펼
쳐지는 인간의 심리를 읽어낸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와 홀바인의 <무덤 속 죽은 그리스도의 시신>에 대한 석영중 교수의 더 자
세한 이야기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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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문소영 기자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 2018. 0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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