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전환점.

in #kr-gazua2 years ago (edited)

냉동공조공학과 댕김서 냉장고만드나?를 수백번들었는데, 일본에서 결국 냉장고 만드는 일을 한다.
어제가 5개월간의 연수를 끝내고 배치를 받아서 일을 시작한 첫날이었다.
대학에 간다는 것은 80%의 확률로, 20대를 좋은 직장을 위해서 살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그냥 냉동공조과를 졸업해서 냉장고 만드는 일을 하게되었다.
근데 이 간단한 한 문장에는 나의 20대가 다 담겨 있다.
고3때 부산에 있는 대학에 갈려고 일단 좀 이름있다는 부산대 동아대 부경대 경성대 등을 돌아다녔다.
부경대만이 평지에 있어서 여기가야지 했다.
책을 읽어보니 기계공학부가 취업이 잘된다고해서 지원했다.
(입학해보니 공학부는 전부 산속에 있는 캠퍼스였다..)
1학년 끝나고 세부 전공을 고를때 냉동공조과가 토목과 선배들이 취업이 잘된다길래 뭘 하는곳인지도 모르고 지원.
1학년 끝나고 공익을 갔다.
사실 군대간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만 시간이 남아돌았기에, 거기다 같이 공익하는 친구도 있었기에 주말마다 휴가마다 놀러 다녔다.
여름날 월급20만원이었던 나는 친구랑 해운대를 가서 까대기를 치다가 실패를 하고 패배자가 되어 같이 술마실때 쓸려고 사놓은 돗자리위에 누워서 씁쓸함을 맛보며 별을 보며 얘기를 나눴다. 이런 저런 헛소리를 하다가 내 인생을 바꿀 한마디가 나왔다. "나는 이제껏 제대로 된 여행이 없어서 좀 그렇다. " 보통 대학생의 로망은 여행이 아닌가, 너무 해보고싶지만 해본적이 없으니.. 그때 균학이가 "나도.."라고했다 "그라면 둘이서 가자" 2주일 후 기차타고 한국 한바퀴 돌았다. 나는 여행을 위해 태어났다고 할 정도로 행복했다. 모기장 하나 들고 강원도 바다에서 자면서 덜덜덜 떨고, 들고온게 반팔뿐이라 반팔 네겹 입고 목에 감고 다리에 감고 .. 그래도 행복했다. 그후론 국내여행이 우습고 돈 몇만원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있다는 생각이 전환이 생기고, 외국에도 나가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돈을 모았다.
하루에 16시간을 공사장에서 주말없이 3주 일하니까 삼백만원이었다. 너무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만큼 어떤 일도 해볼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캐나다에 워킹홀리데이로 가게되었다. 물론 처음엔 겁났고 삼개월을 방콕이었지만, 여름이되고 캠핑생활을 하면서 체리를 따러댕기고 매일같이 난관에 부딪치면서 하루하루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을 키워나갔다. 2학년때 학교에 복학했을땐 거의 공부를 안했다 외국에 나가고싶어서. 그리고 다시 호주에 갔다. 재밌었다 매일같이 마시고 여자친구도 만나고, 매주 주변 해변으로 여행을 갔다. 매주매주 새로운 바닷가에서 잠을 잤다. 그리곤 한국에 왔다. 이렇게 외국에서 재밌게 놀았는데 공부는 안되지. 2,3학년일땐 나는 냉장고가 어떤원리로 돌아가는 지도 몰랐고, 일본에있는 여자친구는 이런 나의 모습에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러가 현장실습을 하던중 만나게된 박사님 두분이 많은 걸 가르쳐 주셨다. 어렵다고만 느꼈던 취업이나, 일본생활등, 그분들은 다 겪은 것이라 많은 용기를 주셨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알려주셨다.
이 시기가 나의 두번째 전환점이다. 나는 이분들의 조언을 받들어서 냉동기사자격증을 땄고(기사 딸 정도의 수준이라면 취업해서 배워가면서 일하면 된다는 조언), 일본에가서 반년이라도 일본어 배우면 금새 늘것이라는 조언을 받들어 일본에 반년간 교환학생을 갔다. 처음에 갔을땐 일본어 하나도 몰라서 선생님한테 반말하고 일본애들이랑 다같이 모여서 밥이라도 먹을땐 벙어리였는데, 캐나다 호주에서 영어공부하면서 느낀 점들을 떠올려서 한국어에 관심있는 일본인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같이공부하자고 제안을 했다. 한국어에 관심이있다는 건 그들도 한국을 배우고싶다는 자세가 되어있는것. 현지인에게 하나하나배우는것이 가장 빠르고, 현지인에게 배우면서 개인공부까지하면 언어는 폭발적으로 는다는걸 나는 캐나다 호주에서 깨달았다. 그래서 일본에서 한국에 관심있는 애들을 찾아서 매일 공부하고, 끝나면 단어외우고, 방에들어가면 일본 드라마를 보고 잠들었다. 그리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본에서 열리는 취업박람회등을 기웃거렸는데 일본에 온지 딱 3달만에 학교 졸업하면 꼭 연락 달라는 기업이있었다. 내 일본어로도 취업해도 괜찮냐고 물으니 충분하다고, 앞으로도 배워나가면 될것 아니냐 공대학생들이 너무 적은 일본에선 너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물론 작은 기업이었지만, 여기서 용기를 얻고 나는 일본 취업준비를 했다. 딱 반년 일본에서 공부하고 나는 첫면접을 보고.. 떨어지고 두번째 면접..떨어지고, 결국 내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안된다는걸 깨닫고 100개정도의 내 전공과 관련 있는 회사에 나는 한국인이고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고 자기소개와 포부등을 보냈다. 20개 정도의 회사가 관심을 보였다.
내 자기소개서는 엄청났다. 쓸게 너무 많았다. 28살의 나는 어찌보면 8년간 백수였기때문에 그동안 해왔던 아르바이트가 20개가 넘었고, 캐나다 호주 1년씩 갔다왔고 반년동안 일본에서 산 경험도 있었기때문이다. 여기서 나온 경험들은 그냥 4년제 졸업 한 학생들과는 비교가 안됐다. 나는 메일을 보낸지 딱 2개월만에 3개의 회사로 부터 합격메일을 받고 지금의 냉장고 회사로 왔다.
그냥 냉동공조 공학과나와서 냉장고 만들어요. 하는 간단한 문장엔 나의 20대가 담겨있다. 많은 경험은 어디서든 활용이 가능했다.
나는 지금도 내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많은 경험을 한다. 매일매일이 공부라서 즐겁다. 일단 취업을 해서 앞으로 어찌될지모르지만, 인생의 큰 변화는 점점 줄어들것이라 생각하기에, 학생이었던 나한텐 취업은 하나의 결실이기에. 한번 적어봤다. 그리고 최근에 인생에서의 또하나의 결실을 맺었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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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가 돋보이네요.
한국어에 관심있는 상대를 잧아 함께 공부하는 시도는 효과가 큰 것 같아요.
제가 사는 싱가포르에도 한국어 공부모임 meetup이 있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한국 젊은이들도 영어를 배우는데 매우 효과적인 것 같더군요.

감사합니다. 실패하다보니 요령이 생기더라구요 ㅎㅎ

나이가 드니 이과가 부럽습니다ㅎㅎ 여러 경험들이 많으시네요~ 잘 보았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친한 형들이 다 부경대 냉동공조학과를 나와서 뭔가 친근하다 형~ㅋ
한마디만 할께. 형 좀 멋지다!ㅋㅋ

오?? 내가아는사람들이 잇을까봐 겁나네 ㅠㅋㅋㅋ 고마워

졸업한지 10년들 넘었긴 해.ㅎㅎ
둘다 전공살려서 취직했다가
지금 한명은 아마존으로 이직했고 한명은 목사님 됐어.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같애.
어쨌든 형은 멋진 남자니까 지금 무슨 일을 하든 앞으로 멋지게 살거야.

아... 그럼 형이 나보다 형이네 ㅋㅋㅋ 아마존.. ㄷ ㄷ 내 미래도 그럼 아마존으로 할까... ㅋㅋㅋㅋ 조언 너무 고마워 형 지금 사실 저렇게 떠벌거려도 첫 사회생활이라 많이 겁났는데 힘이 나 ㅠㅠ 고마워

박형 일 시작했구나!!! (태그보고 급 반말..) 축하해!!! :D 이렇게 돌아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 두렵기도 했을텐데 한발 한발 내딛으며 경험하고 성장하며 인생을 채워가는 모습이 멋지고 든든하다. 이제껏 해온 걸 봐도 박형은 뭐든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또 하나의 결실도 정말 축하해!!!

고마워 스필누나!! 앞으론 존버 하면서 가정을 위해 살아야지 ㅎㅎㅎ 응원 너무너무 고마워

형 완전 사나이다잉!!

형 고마웡 ! 진짜로 일본에 널렸는ㄷ ㅔ 한국에 없는거 잇으면 알려줘 내가 사서 보내줄게 여기도 시골이라 없는건 많겠지만 ..

오오!! 멋지다!!! 정해진대로 남들처럼 살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사실 정해진 것도 없고.

뭔가 이끌리듯 물 흐르듯 살다보니 제가 일본에 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