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할머니의 약속

---

오랜만에 외갓집에 다녀왔다. 큰집은 대전이고 외갓집은 옥천이라 멀지 않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가지 못했다. 이번 명절은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도 시골집에 오셨다기에 시간을 내서 다녀왔다.
세배를 올리자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직 장가 안든 겨?”

“네. 아직 못 갔어요.”라고 말씀드리자 할머니는 얼른 예쁜 색시 만나서 장가들라 하신다. 좀 잊으실 만도 하건만 기억력도 좋으시다.

할머니가 내게 처음 결혼 얘기를 하신 6년 전 생신 때였다. 내 나이를 물으신 할머니는 얼른 결혼하라고 하셨다.
나는 “네. 금방 결혼할게요. 그러니까 할머니도 저 결혼할 때까지 건강하셔야 돼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알았다며 내게 새끼손가락까지 걸며 약속하셨다.

오랜만에 뵌 할머니는 약속이라도 지키시듯 여전히 건강하셨다. 밥도 나보다 더 많이 드셨고 오래 피우셨던 담배도 끊으셔서 숨소리도 부드러워지셨다. 기력도 더 좋아지신 거 같다.

6년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결혼하지 못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올해로 106세가 되셨다.
할머니가 계속 약속을 지키실 수 있도록 결혼을 더 늦춰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