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참새의 죽음

in #kr-diar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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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햇빛이 너무 밝아서 그랬는지 새벽 5시에 잠에서 깼다. 이왕 일찍 일어난 김에 2주 정도 모아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기로 했다. 쓰레기통을 비우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좁은 방안이 조금은 넓어진 기분이 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오랜만에 새벽바람을 맞으니 산책이 하고 싶어진다.

#2

햇빛은 강하지만 공기는 제법 쌀쌀하다.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골목 여기저기에는 쓰레기가 굴러다닌다. 어떤 취객이 바닥에 던져버리고 갔을지 상상해본다. 밤을 새우려고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 사람, 가로등 밑에서 담뱃불을 밝히던 사람, 급하게 택시를 잡으려고 뛰어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3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평소와는 다른 골목으로 들어섰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골목 한가운데에 참새 세 마리가 앉아있다. 무엇을 하는 걸까? 보통은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날아가 버리는데, 이 녀석들은 무슨 까닭인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4

참새의 코앞까지 접근했는데도 도망가지 않는다. 나는 쪼그려 앉아서 참새 세 마리를 관찰했다. 한 마리는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남은 두 마리는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담벼락에 놓여있는 쓰레기봉투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액체가 흘러간 자리 위에 참새 세 마리가 앉아있었던 것이다.

#5

나는 이 처참한 사건 현장을 보면서 추리를 시작했다. 주변 건물이나 쓰레기봉투의 내용물을 봤을 때, 그 액체는 술, 세탁 세제 혹은 락스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 참새들은 그것을 먹이라고 착각하고 마셔버린 것 같다. 한 마리는 이미 옆으로 쓰러져서 미동이 없었고, 남은 두 마리는 눈을 깜빡이며 숨을 헐떡거릴 뿐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6

나의 뒤에서 어느 중년 부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얘네 뭐 하는 거야? 왜 도망가지 않아?"
"이러면 도망갈걸?"
쿵! 쿵!
발에 힘을 주어 쿵쿵 소리를 내어도 참새들은 도망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중년 부부도 순식간에 참새들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지금 나는 내 몸 하나 챙기기에도 벅차기 때문에 참새들의 생사는 이분들께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던 길을 간다. 뒤에서 무언가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알아서 잘 해주실 거야.'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한다.

#7

계속 참새들이 생각나서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갔다. 역시 참새 세 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 중년 부부가 어떤 조치를 취해준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다만, 참새가 아직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숨을 쉬고 있던 두 마리의 참새는 썩은 동태 눈깔 처럼 흐리멍텅한 눈빛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바닥에 떨어진 참새의 깃털을 보면서 명복을 빌어주었다.

#8

참새들에게 인간이 사용하는 물건들은 독극물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스팀잇의 생태계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플랑크톤, 피라미, 돌고래, 범고래, 고래가 스팀잇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데, 범고래급 이상이 되면 마음먹기에 따라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속담처럼 싸움 구경에 지쳐버린 플랑크톤은 스팀잇을 떠나는 것이다. 고래들의 싸움에 보이지 않는 독성물질이 스팀잇의 바다에 퍼지는 것이다. 피라미, 돌고래급 정도가 되면 조금이나마 버틸 힘이 생기는데,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져 버리는 플랑크톤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인 것이다.

#9

아직은 스팀잇 생태계에 '종의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피드에 보이는 획일화된 글의 주제나 스팀파워의 격차, 진입장벽 등의 문제는 모두 '종의 다양성'과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직 스팀잇은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이 모여서 놀다가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는 정도의 수준인 것 같다.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스팀잇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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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양심적으로 스팀잇 너무 버벅거리네요ㅎ
안그대로 불편한데 이래가지고는...

흠냐.. 저만 그런게 아니였군요. 엔터키를 몇번이나 눌러야 다음화면으로 넘어지네요. ;;;
덤으로 가끔씩 로그온된게 튕기는 현상도 ㅠ

주말내내 많이 멈추네요.ㅠㅠ

스팀잇에 다양성이 부족한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죠~
개발자들은 탈중앙화니까 니들이 알아서 하라는둥~
개소리만 하고 있구요~

결국은 깨어있는 스티미언들이 스팀잇 생태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데~
오랜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 태그별로 이끌어주는 반장님들이
많아지면 좋을꺼 같아요~

쓸데없이 이런저런 태그만 많고 속이 꽉 찬~
태그들이 그리 많지 않네요~

유저가 일을 더 열심히 하는 독특한 구조를 이루고 있죠.ㅎㅎ

맞아요... 저는 아직 완전 뉴비라 직접적으로 그런 싸움을 느낀적은 없지만 생태계에 대해서는 이미 완전히 느껴졌어요 ㅎㅎ... 이런경험을 하시고 바로 스팀잇이 연관되어 떠올랐다는게 신기하네요! 스팀잇에 남다른 애정이 있으신것같아요 ㅎㅎ

아직 스팀잇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겠죠?ㅎㅎ

그러네요... 꿈꾸던 세상을 만났다고 막 설레고 그랬던 스팀잇 입문... 지금은 그 기분이 줄어들긴 하지만 그래도 즐길래요~~~^^ 더 밝은 스팀잇의 미래 기대해봅니다! 행복한 6월되세요^^

@hyosun님도 행복한 6월 되세요. :D

어머! 가여운 참새들 ㅜㅜ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네요 ㅠㅠ
스팀잇의 미래를 기대해봐요!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곳 ㅎㅎ

조화로운 맛있는 비빔밥이 되기를 바랍니다! :D

많은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글이네요
영문도 모르고 피해를 입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게 짐승이든 사람이든

스팀잇에서도 고래의 한 마디에 플랑크톤 여럿이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죠.ㅎ

그러고 보면, 지난해 제가 처음 스팀잇에 발을 들여놓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엄청 많이 질적으로 좋아진 것이지만, 앞으로도 개산되어야 할 문제는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발전과 성장의 여지가 많다는 의미겠죠. 스팀잇 가즈아~

개인들의 컨텐츠의 힘을 집중시켜줄
특화된 목적의 서드 파티들이 그 역할을 해주겠죠

서드 파티도 많이 기대됩니다. :D

참새에게 괜히 미안해지네요...ㅠㅠ
그래도 꽤 괜찮은 곳인 것 같습니다 스팀잇은. 안 좋은 일도 있지만 즐거운 일이 더 많아요^^

좋은 사람, 좋은 글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ㅎㅎ

참새.. ㅠㅠ
이곳도 하나의 사회이니 이런사람 저런사람 다 있는거겠죠..?
저도 설렘과 기대와 거대한(?)각오로 시작했다가 여기 뭐지.? 하며 실망도 많이했었는데..
그래도 나와 맞는 친구들이 생겨 이젠 조금은 즐기며 하는 스팀잇이 되었네요~

아직은 규모가 많이 작아서 그런 것 같아요.ㅠㅠ
관심사가 맞는 분과 즐거운 스팀잇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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