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부당한 세상 이야기

in #kr-daily7 years ago (edited)

2월이면 선생님들은 눈치싸움에 들어간다.
원하는 학년, 원하는 업무를 맡기 위한 치열한 눈치싸움!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고 학교마다 원하는 업무, 원하는 학년이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초등에선 1학년과 6학년을 맡기 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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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우리학교도 어김없이 2월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다만 난 이 눈치싸움에서 열외다. 스스로 힘든 업무, 힘든 학년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ㅠㅠ

예전에는 편한 학년, 편한 업무만 찾아다니는 선생님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학교엔 정해진 일이 있고, 정해진 선생님들이 그 일을 해내야 하는데 자기 편한 업무, 편한 학년 맡겠다고 눈치보고, 우기고, 울고...

그런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다르다. 그런 선생님들께 학교의 큰 업무, 힘든 학년을 맡기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큰 업무를 맡기게 되면 결국 주변의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하고 있고, 힘든 학년을 맡기게 되면 사건,사고가 일어났을 때 “이래서 제가 이 학년 못하겠다고 했잖아요!”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좀 아쉬운 소리하면서 힘든 업무, 힘든 학년을 부탁하는게 낫다. 어차피 그들에게 돌아가게 되어있는 일이니...
거시적(?) 관점에서...조직의 운영을 위해...

너무 부당하다.

중등 교사인 아내는 한번씩 그런 얘기를 했다. 착실한 아이들, 모범적인 아이들에게 보상이 주어져야하고, 매사에 대충대충 또는 책임을 다 하지 않는 아이들에겐 처벌이 내려져야하는데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다고...

그러고보니 나 역시 일을 꼼꼼하게 잘 하는 아이들에게는 믿음이 가기 때문에 더 많은 부탁을 하고, 책임을 다 하지 않고, 사고 치는 아이들에게는 아예 책임이란 것을 지우지 않는 것 같았다. 착실한 아이들에겐 너무 미안한 일이다.

우리 교실, 또는 학교만 그런가 생각해보면 아니다. 대부분의 직장이나 군대, 공직 사회 등 조직에선 열심히 하는 사람,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이 주어지고, 편하게 사는 사람, 대충대충 일하는 사람에겐 최소한의 일이 주어진다. 그래야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성과도 더 높아지니깐...

그에 비해 주어지는 권리는 똑같다. 아니, 오히려 편한 일을 찾고 대충 일하는 사람들이 권리는 더 꼼꼼히 찾는다. 꼼꼼함을 업무에 쓰지 않다보니 권리 찾기에 쓸 여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아내 말대로 학교에서만큼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일 잘해봐야 일만 더하지” 라는 생각을 심어주게 되면 정의와 불의를 먼저 배워야할 학생들에게 요령이나 편법을 먼저 가르치게 되는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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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도 착실한 아이들에게 교실 정리나 친구 돕는 봉사 등을 부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그 아이들은 내 믿음을 상이라 생각하겠지만 그 믿음을 핑계로 난 우리 반이라는 조직의 수월한 운영을 꾀했던 것 같다. 반성한다.

아이들에게 정의를 먼저 가르쳐야겠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상이 주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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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쪽을 좀 더 케어할 수 밖에 없고, 관리를 해야하니 그런 것이 아닐까 싶네요 ㅠㅠㅠ ;;

관리하는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 좋은 해결책이 마땅히 떠오르지는 않네요ㅠ

크흑. 정말 멋진 교사 같아요!!! 이런 분들이 많아지셔서 우리나라 교육 환경도 발전할 수 있을텐데... 아무쪼록 보기 좋습니다!! :)

부끄럽습니다 더 열심히 해서 안 부끄럽도록 하겠습니다

학교에서도 어쩔수 없군요 1년의 업무가 달린 일이니 눈치만 보겠지요

네 1년이 결정되는 시기다보니 다들 눈치도 많이 보고 목소리도 많이 냅니다 ㅎㅎ

그에 비해 주어지는 권리는 똑같다. 아니, 오히려 편한 일을 찾고 대충 일하는 사람들이 권리는 더 꼼꼼히 찾는다. 꼼꼼함을 업무에 쓰지 않다보니 권리 찾기에 쓸 여력이 있는 것 같다.

공감이 많이 갑니다.
학교에서 정의가 구현되면 사회에서도 정의가 구현될 것입니다.
의무보다 권리를 부르짖는 사람이 늘어나거나 혹은 많은 조직은
그 조직 시스템에 문제가 있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외부의 쓰나미가 닥쳐야 그때서야 개선이 되는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렇죠. 조금씩 개선하면 그 충격도 덜할텐데 늘 외부에서 큰 충격이 와야 변하는게 저도 안타깝습니다.

같은 교사로써 동감하고 가요;
저역시 편안 업무만 하고 싶었는디^^;
그래도 열심히 하면
결국 돌아오더라구요!
힘내보아요~~!

열심히 하는 분들은 모두 그러더라구요 다 돌아온다고 ^^ 네 힘내겠습니다 ㅎㅎㅎ

크흡 졸업한지 10년도 넘었는데 왜 뭉클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키우시는 선생님들 화이팅입니다!!!

네 ㅠㅠ 열심히 해서 사람 제대로 키우겠습니다 ^^

선생님들이 싫어하는 학년이 1, 6학년이군요.
좋은 말씀인것 같습니다.
어릴때 잘못받아들인 사고가 평생을 갈수가 있으니 정확하게
가르칠 필요성이 정말 중요한것 같습니다.
realin님은 분명 좋은 선생님인것 같습니다.^^

ㅎ 학교마다, 해마다 차이는 있어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으나 아직 많이 부족하네요 ^^ 열심히 하겠습니다 ^^

이런 고민을 하신다는거 자체가 정말 좋은 선생님이시네요.

감사합니다. 그 말씀에 어울리게 좋은 선생님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좋은 내용이네요. 열심히 일하면 더 일하는 회사...

대부분 조직들은 그런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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