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네버웨어 by 닐 게이먼 ㅡ 때로 모험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in #kr-book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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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도 통하지 않는 미지의 나라로 가야 하는 걸까.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1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배낭여행을 해야 하는 걸까. 물론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때로 모험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사소한 행동 하나가 모험의 빌미가 된다. 바로 이 책에서처럼.

<네버웨어>의 주인공 리처드는 런던에 살고 있는 평범한 남자다. 그에게는 저녁에 돌아갈 수 있는 작은 아파트가 있고, 튼실한 직장이 있으며, 아름다운 약혼녀가 있다. 매일매일은 그저 똑같이 돌아간다. 때로 지루할 순 있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그건 불평할 수 없는 행복한 현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리처드는 길모퉁이에서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한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그는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치료해주고 쉴 수 있게 해준다. (웬일인지 그녀는 병원으로 가기를 거부했다) 다음날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났지만, 이번엔 리처드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자기를 못 보고, 마치 투명 인간인 듯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전철을 타려 해도 매표원이 자기를 보지 못해 표를 살 수가 없었고, 도로에 뛰어들어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택시가 멈춰 서지 않았다. 겨우겨우 도착한 회사에서는 자기 책상이 치워져 있고, 약혼녀마저 자기를 못 알아본다. 급기야는 부동산에서 빈 집이라며 자기 아파트까지 세놓으려 한다. 내가 버젓이 이 집에 살고 있는데!!!

리처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자신의 일상을 그리워한다. 그 지루하고, 멋있었던 일상을.

I'm going to go home. Everything is going to be normal again. Boring again. Wonderful again.

난 집으로 돌아갈 거야. 모든 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거야. 다시 지루해지고, 다시 멋져질 거야.

이 모든 이상한 일의 시작이 자기가 길거리에서 도와줬던 그녀였다는 걸 깨달은 리처드는 그녀를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길을 나서는 리처드. 아는 것이라고는 '도어(Door)'라는 그녀의 이름뿐이다. 사라져 가는 도어의 흔적을 찾아 떠난 리처드는 보통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런던의 지하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위험한 악당과 괴물, 그리고 천사가 살고 있는 지하 세계로.


출처: 교보문고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평범한 현대인의 모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모험 이야기는 특정한 시대와 공간에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아니면 주로 어린이들의 이야기이거나. 그런데 이 책은 평범한 어른의 모험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다. 나도 주변을 잘 둘러보면 지금이라도 당장 모험을 떠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주기 때문이다.

런던의 지하세계를 다루고 있는 만큼 지하철역이 배경으로 많이 나오는데, 그 지하철 역 이름에 맞춰서 신기한 모험이 펼쳐진다. 예를 들어 '얼스코트(Earl's Court, 백작의 법정/중정)'역에는 진짜로 백작이 있고, '블랙 프라이어스(Black friars, 검은 옷을 입은 수도사들 - 도미니크 수도회 수도사들)'역에서는 수도사를 만날 수 있으며, '엔젤(Angel, 천사)'역에는 실제로 천사가 살고 있다. 마치 서울로 따지자면 잠실역 지하에는 아직도 신비한 존재들이 누에를 기르고 있다던가, 서빙고역 지하에는 커다란 얼음동굴이 있다던가 하는 식이다. 이 책을 재미있게 보고 나니, 어느 글 잘 쓰는 작가가 서울의 지하철을 배경으로 이렇게 환상적인 소설을 써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어른이 주인공인 현대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 같은 느낌이다. 판타지 모험 소설을 좋아한다면 권하고 싶다.


한국어판 제목: 네버웨어
영어 원서 제목: Neverwhere
저자: Neil Gaiman (닐 게이먼)
특이사항: 원래 BBC 텔레비전 시리즈였는데, 그걸 다시 소설로 쓴 것이다. 2013년에는 제임스 맥어보이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등장하는 라디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판타지 모험 소설.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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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정말 재미 있을거 같아요..
다들 모험이라고하면 어디로가 떠나야 하는걸로 생각하는데..
평범한 어른의 모험이야기라는점이 엄청 마음에 듭니다.
기발하기도 하구요. !!!!
오늘도 브리님의 재미있는 책소개 읽고 갑니다.. ^_^

평범한 어른의 모험 이야기에 끌리는 걸 보니.. 저도 모험을 떠나고 싶나봐요. ㅎㅎ
읽어주시고 댓글로 소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요즘 책을 통 못읽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장르가 소개되었네요~
기회가 되면 읽고 싶네요.. 기회를 만들어야 될텐데

아이 키우면서 독서할 시간까지 챙기는 게 쉽진 않죠. 마음에 꼭 드는 책 발견하시면 독서의 여유도 즐겨보세요. :)

Booksteem 테그 한번 이용해 보시는것 추천해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일...단 표지가 예쁩니다. ㅋㅋ

ㅎㅎㅎ 사실 오래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던 표지가 훨씬 예뻤는데, 독후감 쓰느라 찾아봤더니 그건 절판이 됐더라고요.

흥미롭네요.

이런 상상력 정말 부럽습니다.

서점에 가 보면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있는데, 그 틈바구니 사이로 또 이런 멋진 소설들이 나오는군요.

닐 게이먼이 이런 판타지 작가로는 유명해요.
상상력이라면 @rt4u님도 만만치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시체가 사라지는 소설! 그 대문들!! :)

오오... 재밌겠네요! 판타지 소설 한때 열광적으로 좋아하던 때가 있었는데 오랫만에 옛날 감성 떠올리며 읽어 보겠습니다. 책 추천 감사 드려요~

닐 게이먼이 영국 판타지 작가에요. 이 책을 읽고 재미있으셨다면 닐 게이먼의 "스타더스트"나 "그레이브 야드 북"도 추천합니다. :)

오 이책 왠지 영화로나오면 굉장히 재미있을것 같네요 ㅎㅎ
스토리까지 다나와있으니 영화로 제작만하면 될듯 ㅎㅎ

네. 이미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영국에서는 꽤 인기가 있어요. 조금 각색하면 영화로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

꺅!!! 딱 제 스타일의 책이군요 ㅋㅋ 이런책 완전 사랑합니다 ㅋㅋ 리뷰 감사합니다 @bree1042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여행을 좋아하시니 책도 모험 이야기를 좋아하시는군요. :) 마음에 들어하시니 제가 다 기쁘네요. @myhappycircle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말그대로 투명인간이 되었군요... 이것이 시사하는바가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 한 번 읽어보고싶어지는 책입니다!

현대판 도시 판타지물인 만큼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들도 많아요. 특히 지하철에 상주하는(?) 홈리스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사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한 서술도 있고요.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생계밀착형 판타지인가요?ㅎㅎ 확실히 외국은 판타지의 영역이 넓은 거 같아요. 현재 한국의 환상문학은 끝을 모르고 추락중인데. 판타지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불이님 독후감을 읽으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책 이야기를 정말 흥미롭게 잘 쓰시는 거 같아요. :)

오늘도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은 몇번을 들어도 행복합니다. :)
@chocolate1st님도 행복한 하루 시작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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