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표작은 신작이다.

in #kr-art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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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대한 날것의 전시공간에서 거대한 검정 의자를 그린 김상연의 <존재> 시리즈들을 마주쳤다. 난 그 그림 앞에서 압도당했다. 물론 내가 그 그림에 압도당한 이유들 중 하나는 3미터에 달하는 그림의 크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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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그의 <존재> 시리즈에 압도당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정 때문이다. 따라서 난 그 <존재> 시리즈 앞에서 ‘어둠의 심연’으로 빠져든다. 흥미롭게도 캔버스에 먹과 검정 아크릴로 그린 그림에 ‘검은 빛’이 발한다. 김상연의 답변이다.

“먹은 접착제(아교)가 굳으면 수성이지만 기름성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빛이 납니다. 먹은 약하게 갈면 수성성분이 많지만 진하게 갈면 갈수록 기름성분이 있는 수성이 됩니다. 곧 물에 녹는 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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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캔버스에 먹과 아크릴로 작업한 <존재> 시리즈와 달리 크기가 작은 하드보드지에 검정 먹과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김상연의 <육식> <부유> <역사> <육식> 시리즈 역시 ‘검은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김상연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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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드지에 먹을 여러번 반복하여 칠을 해 철판처럼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난 지난번 김상연 작업실 방문기에서 그의 작품을 보고 ‘말’이 필요 없는 작품이라고 중얼거렸다. 이를테면 그의 그림은 마치 ‘그림은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 단지 관객의 ‘눈’만 요구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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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거대한 의자를 그린 <존재> 시리즈에 대한 질문이었다. 거대한 검정 의자에 어떤 흔적들이 보이는데, 그것은 어떤 형상을 그린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김상연의 답변이다.

“저의 <존재> 시리즈는 범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질문하신 ‘형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형상에서 느끼지는 ‘기운’에 주목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사물의 리얼리티가 아닌 감성의 리얼리티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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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범관(范寬)의 전칭작으로 유명한 ‘계산행려도(谿山行旅圖)’가 떠올랐다. 2미터에 달하는 그 그림의 중앙에는 거대한 산이 우뚝 서있는 것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그 거대한 산은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점을 내리찍어 표현하는 우점(雨點)준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에 빠져들게 한다. 일단 그 거대한 산에 빠져들면 고원(高遠)·심원(深遠)·평원(平遠)의 삼원법(三遠法)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디테일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절벽 사이의 계곡으로 떨어지는 폭포수는 일품이다.

그리고 폭포수를 따라 내려가면 산 아래 안개가 드리워져있다. 그 안개로 인해 산의 거대한 크기가 묘연하게 된다. 따라서 그 알 수 없는 크기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혹자는 그 점을 세상만물에 내재된 ‘기(氣)’로 해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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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김상연이 자신의 <존재> 시리즈에서 어떤 형상을 묻기보다 형상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주목해 달라는 당부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아시겠죠? 그렇다면 그의 <존재> 시리즈는 8년 전 그가 범관을 ‘씹어서’ 자기 것으로 만든 작품이 아닌가?

두 번째 질문은 대표작에 대한 질문이었다. 김상연은 ‘대표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나의 대표작은 신작이다.” 특정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아티스트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오픈 스페이스 배의 김상연 개인전 <어둠의 심연>은 6월 15일까지 전시된다. 혹 부산을 방문하시는 페친이 계신다면 꼭 방문하시기 바란다. 강추한다!

사족 : 김상연은 ‘작가와의 대화’에서 신작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했다. 백색 화면 중앙에 마치 황금색으로 물들어있는 모호한 형상을 표현한 ‘불상’(2018)이 그것이다. 만약 당신이 ‘불상’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다면 어떤 ‘형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물론 김상연은 어떤 ‘형상’을 재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면서 “사물과 관객 사이의 중간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주체와 대상 사이의 ‘공통적 사건’을 뜻한다. 당신과 내가 포옹할 때 느끼게 될 우리 둘 사이의 공통적 사건 말이다.

그것은 일명 ‘수인회화(水印繪畵)’이다. ‘수인회화’는 김상연이 만든 신조어로 중국의 독특한 목판화 기법의 하나인 '수인목파화(水印木版畵)'를 섭렵한 후 김상연이 실험을 거쳐 탄생하게 된 ‘판화처럼 찍어서 만드는 회화’를 뜻한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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