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 시절 이야기 - 어느 일석점호 때 생긴 일

in #kr-army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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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어 옛날 얘기를 글로 적어본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훈련병 때 받는 일석점호(밤에 자기 전에 받는 점호)의 분위기는 살벌하다. 잠을 자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라도 눈에 띄어 분위기를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랬다간 조교나 교관한테 당하고 분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때는 1999년 10월 중순의 밤이었다. 일석점호를 받았을 때였다. 당시 내무실을 지키던 조교는 훈육 분대장이던 이모 병장이었다. 이 사람은 훈련병들에게 얼차려를 많이 주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특히, 이병장은 묻는 말에 대답 못 하고 머뭇거리는 걸 싫어했다. 이로 인해 어리버리한 몇몇 훈련병들은 멋도 모르고 얼차려를 계속해서 받아야 했다.

우리 소대의 점호가 끝나고 대기하는 동안 우리는 열중 쉬어 자세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얼굴이 가려워지기 시작하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슬쩍 손을 올렸다. 그런 내 모습을 조교가 보고 말았다.

"야! 너 왜 움직여?"

순간 당황한 나는 이병장 앞에서 머뭇거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대답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차려 자세로 바꾸며 당당히 외쳤다.

"그냥 한번 움직여봤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황당한 답이다.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고... 그 말을 듣자마자 조교는 바로 엎드려 뻗쳐를 시켰다. 그러더니 그는 나한테 나지막한 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나도 그냥 엎드려 뻗쳐 시켜봤다."

예상 외로 이병장은 나한테 몇마디 말만 하고는 다시 일어나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한 대 얻어 맞았을 수도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잘 참았던 것 같았다. 아니면 너무 황당해서 그냥 넘어갔던가... 사람은 아무리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라도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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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나눔]무조건-수동보팅 12회차 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이 큰일(?)없이 지나갔네요

당시 의외로 저한테는 얼차려 많이 안주더라구요. 운이 좋았는지...

군대를 안다녀와서 모르겠지만
아찔한 순간이였던건 알겠네요 ㅎㅎㅎㅎ

정확히 보셨습니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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