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30 [나에게 여행이란? - 여행의 기술을 읽고-]
코로나 19로 인해 하늘길이 막혀 여행에 큰 갈증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단비같은 책이었다. 어렸을적부터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행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나에게 그동안의 여행들을 추억하고 돌아볼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여행방식과 비교해보며 깊은 공감과 반성의 과정을 거치며 앞으로의 여행, 그리고 삶에 있어서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나에게 여행이란 여유를 충분히 만끽하고 소소한 행복을 찾아 유의미한 기억을 만드는 행위이다. 먼 과거 여행들을 회상하면 식견을 넓힌다는 명목하에 시간에 쫓겨 유명 관광지들만을 돌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굉장히 소모적 인 경험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사람들은 그저 많은 숫자의 장소들을 경험한 부분을 부러워하지만 나에게는 고통 스러운 경험이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아쉬운 기억들로 남아있다. 이후 부모님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립적 여행의 자유 를 누리기 시작하면서 그것들만으로 여행의 의미를 설명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여행을 추억했을 때, 경험한 것은 많지만 유의미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에게는 대영 박물관 투어보다 시드니의 하버 브릿지를 등반했던 것이 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것보다 맨체스터에서 삼촌과 함께 추위에 떨며 축구장에서 먹었던 핫도그가 더 기억에 남는다. 저자의 말 처럼 심리적 요소가 크게 작용했을 수도 있고, 훔볼트가 만물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것과 비교하여 나의 호기심이 부 족했을 수도 있다. 여기서 나는 가치 객관화의 위험성과 화려한 유명세만을 좇는 대중의 경향을 비판하고 싶다. 예술의 예시를 적용해 보겠다.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그림으로 표현한 반 고흐가 세계 최고의 예술인으로 추 앙받고 있지만 그에게도 아무도 그의 가치를 알아봐주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그의 작품에 감 동한 사람은 분명 있었을 것이고, 현재 그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유명해진다는 것은 더 많 은 사람들이 그 가치에 공감했을 뿐 그 가치가 절대 우월하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작품에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고 이 의도의 가치는 모두 순수하게 인정받아 마땅하다. 개개인에게 주는 의미와 효용은 전부 다르기 때문 이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꼭 유명하고 거창한 것을 감상하는 것이 여행이 아니다. 색다른 메뉴판의 글씨 폰트, 이 색적인 건물양식같은 작은 것들로부터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여행이다. 큰 기대를 안고 바베이도스에 갔던 저자와 런던에 갔던 데제생트가 모두 실망하고 돌아온 이유이다. 가치를 수용하고 의미를 내재하는 과정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심리적, 관심사적 요인등 여러가지 외부적 요인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똑같은 효용을 느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만으로 나에게도 똑같이 최고의 경험으로 다가오지 는 않을 수 있고,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보고 어떤 경험을 하는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어떻게 수용하는 지 의 문제이다.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감상하고 기대보다 작았던 크기에 실망하고 루브르에서 나와 강변에 있는 길거 리 화가의 그림에 감동한다면 오히려 후자의 경험이 더 유의미한 경험으로 남지 않겠는가?
정보통신기술과 SNS의 발달로 현대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정보공유가 활발해졌고, 그로 인해 타인의 시 선을 의식하고 따라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대중들은 유명한것이 더 고귀한 가치를 가진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 다. 의미를 찾기 보다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사진을 남기는 데에 집중하고, 독립적인 특성은 온데간데없고 모두 마 치 똑같은 클론들이 된 것처럼 유명한 장소만을 찾아 다니기 바쁘다. 또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짧은 기간에 여러 나 라를 한번에 여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제대로 그 장소를 체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주체적이지 못한 여 행에서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살펴 세밀한것에서 기쁨을 끌어내 나만의 행복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유명 세만을 쫓아 그것에 휘둘리기만 하다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에게 유의미한 것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나는 미리 짜여진 대중들의 루트,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소를 따라가 보는 것도 좋지만, 그곳에서 작은 것들에 호기 심을 가지고 나만의 기억을 만들어 그 순간을 충분히 음미하는 것을 추천한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장소도 좋다. 미국 에 갔을 때 길을 잘못 들어 멕시코 국경을 넘었던 적이 있다. 국경을 넘자 마자 상인들이 줄을 서서 차 문을 거세게 두드렸던 기억이 난다. 극한의 공포를 느꼈던 기억으로 남아 있고,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다. 이처럼 본인만의 소중 한 추억을 만들면 마음속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우선 시간이라는 제약이 줄어들면, 심리적 여유가 생긴다. 나도 경험상 빡빡한 스케줄로 가득찬 여행보다 여유가 있었던 여행에서 더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똑같은 것을 보 더라도 그를 통해서 배우고 느끼는 점들이 많았다. 나중에 기억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이런 소소한 부분들이 합쳐 져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를테면 하루종일 카페에 앉아 똑같은 커피를 마시지만 색다른 환경이 주는 특별한 커피의 맛을 느끼고 색다른 공기를 느끼며 사람들이 거니는 모습을 지켜본다거나 동네 거리를 걸어 다니며 어떤 특별한 모습이 있는지 둘러보는 것처럼 천천히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 면서 그 장소에 녹아드는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만물에 호기심을 가진 훔볼트, 주변 가까운 곳에서도 행복을 찾는 러스킨, 자신의 방을 여행했 던 드 메스트르를 보며 나의 여행들을 반성했다. 나의 호기심이 충분하지 못해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수 많은 순간들, 지금 도 주변에 숨어 있는 여러 보석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굉장히 안타까웠다. 앞으로는 이런 순 간들을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