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paper] 아이콘(ICON) 백서 탐구
ICON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철학에 많은 영감을 받았으며, “중심화된 지점이 없는 세상, 어떠한 지점도 다른 지점들로 연결되는 과정일 뿐인 세상”을 꿈꾸고 있다.
워메, 천 개의 고원의 인용으로 시작하는 이 백서는 나에게 기대를 불어넣어 주었다. 과연 들뢰즈의 철학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기술적으로 녹여냈을까. 오프라인과 온라인, 그리고 여러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의 '연결'을 강조하며 리좀적 생태계를 꿈꾼다고 하는 아이콘. 이 수평적 연결의 개념을 과연 아이콘이 어떻게 녹여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다른 블록체인과의 비교
이더리움, 뱅코르, 이오스에 대한 비교를 적어두었는데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높은 수수료'와 '대용량 처리 능력의 한계'로 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암시하는 한 가지 사실은 현실에 적용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카카오뱅크부터 각 은행별 앱까지 수수료 무료 혜택이 있는 경우도 다수이고 송금도 1초 컷으로 끝나는 요즘이다. 물론 블록체인이 추구하는 바가 이러한 송금 기능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기는 하나, 해당 블록체인의 기본 기능이 될 송금 기능에 관하여 이러한 빠름과 무비용에 익숙해있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혹은 이를 납득할만한 다른 효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이콘이 추구하는 연결이 의미
인류에게 있어 '연결'은 인류의 번영과 가장 큰 연관이 있는 사건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이콘 역시 이러한 점을 시사하며 현재의 연결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 완벽함에 다가가는 것은 곧 하나의 전환을 의미하며 이를 '기존의 중앙 집중화된 연결보다는 분산화된 연결을 지향'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이 무엇인고 하니, 연결에 필요한 일종의 신용이나 신뢰에 대하여 이를 보증해주는 중앙 집중기관의 권위 혹은 권력을 아이콘 내의 여러 프로젝트들에 나누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전환에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모든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지향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중앙의 보증이 없어도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은 은행이 없어도 당사자 간의 송금이 직접 가능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블록체인의 모태인 비트코인의 핵심과 다를 바 없다. 당사자 간의 직접 연결을 가능하게 하여 중간 과정을 제거하는 것이 블록체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콘은 이 직접 연결이 가능한 대상들을 단지 그 블록체인의 사용자에 한정 짓는 것이 아닌 현 사회 내의 거의 모든 조직으로 확장시키려고 한다. 백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각 조직 즉 각 커뮤니티 내에서 가치있게 여겨지는 것들이 아이콘의 가치 전달 수단에 의하여 다른 조직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이 말은 곧 힙합 커뮤니티의 인디 음악들이 중고 거래 커뮤니티의 물품들과 아이콘을 기반으로 교환될 수 있음을 뜻한다. 혹은 내가 작성한 특정 상품에 대한 인스타 광고 포스트 3개로 맛집 커뮤니티의 점심 식사권을 교환할 수 있음을 뜻한다.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비트코인으로 집을 살 수 있음을 뜻한다. 커뮤니티 간의 가치 네트워크가 아이콘이 지향하는 바이다. 물론 '가치 네트워크' 자체는 모든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추구한다. 그리고 아이콘과 같이 블록체인 프로젝트들 간의 연결을 통해 더 큰 네트워크를 만드는 블록체인을 우리는 인터 체인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인터 체인 프로젝트는 아이콘 말고도 아이온, 코스모스 등이 있다.
어떻게 이를 실현할 것인가
인트로가 너무 길었다. 아이콘이 지향하는 바가 위와 같다면 이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어떻게 디자인될 것인가?
커뮤니티, C-Rep, ICON Republic
커뮤니티는 아이콘 네트워크의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 리좀의 뿌리들이 되는 부분이다. 이 커뮤니티는 C-Node로 구성되어 있는데 쉽게 말하면 어떤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는 고정닉 유저이다. 각 커뮤니티는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대표해줄 C-Node들을 뽑는데 이를 C-Rep라고 한다. 국회의원 같은 것이다. 그럼 ICON Republic은 뭘까? 국회 같은 곳이다. ICON Republic은 국회와는 다르게 ICON 네트워크 전체에 적용되는 어떤 규칙이나 법칙을 만드는 곳은 아니고 단순히 각 커뮤니티 간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통로들로 작동한다.
Citizen이라는 특수한 참여자도 있는데 이는 쉽게 말하면 ICON 위에 올라갈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사람이다. 앞서 언급한 커뮤니티 간의 가치 교환을 용이하게 해줄 서비스들을 만든다. 이를 분산형 애플리케이션이라 하여 DApp이라 하고 백서에는 DApp의 생성을 통해 Citizen이 ICON Republic에 참여할 수 있다고 적어두었다. 그렇다면 이제 ICON 네트워크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커뮤니티는 각각의 특성에 맞는 블록체인을 선택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블록체인이기만 하면 된다. 아이콘은 인터 체인이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 간의 연결의 주체인 C-Rep인데 loopchain이라는 기술을 통해 이들을 연결한다고 한다. 자세 들여다보면 결국 C-Rep끼리의 블록체인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또한 DEX(분산형 거래소)를 통해 C-Rep 간의 가치 교환이 일어나고 이를 커뮤니티 내의 C-Node에 전달하는 식이다.
한마디로 C-Rep가 서로 감시하는 하나의 거래소가 있고, 이 거래소 내의 교환으로 인하여 커뮤니티 간의 가치가 교환되는 식이다. 재밌는 것은 ICON Republic이라는 개념을 치환한 Nexus라는 개념이 나온다는 점, 그리고 이 넥서스에서는 운영 정책을 제안하고 투표할 수 있다고 나온다. 이 운영 정책이라는 것은 서로 감시하는 집단의 조정(누군가의 탈퇴, 가입), 전체 거래 수수료 조정 등의 네트워크 구성에 관한 것들이다. 넥서스에는 아무 커뮤니티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아이콘 네트워크 내의 기여도에 따라 점수를 주고 이를 바탕으로 C-Rep로서 넥서스에 참여하게 된다고 한다.
LFT(Loop Fault Tolerance)
결국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합의 알고리듬 부분이다. 각 커뮤니티의 대표들이 거래를 어떻게 합의하는지에 대한 이 알고리듬은 아이콘이 제시한 기존 블록체인의 문제들, 즉 '비싼 수수료'와 '처리량 저조'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아이콘 백서에서는 IBM이 지원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인 하이퍼 레저 패브릭에서 사용된 PBFT의 간단한 버전, SBFT를 합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장애 상황을 대응할 수 있는 Raft 알고리듬과 섞은 LFT를 제시한다.
POW 계열의 알고리듬은 주어진 수학 문제를 먼저 푸는 참여자의 거래 내역을 전체 시스템의 합의 결과로 인정하는 방식인 방면, BFT 계열의 알고리듬은 합의 참여자 간의 투표 방식이다.
POW 계열은 너무나 어려운 수학 문제이기 때문에 다수가 이에 참여해야만 풀 수가 있고, 이 다수가 블록체인 내의 일정 룰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전체 시스템이 유지되는 형식이다. 이 룰에서 벗어난 이들은 룰을 지키는 이들에 의하여 배척된다. 따라서 POW 계열은 다수가 이 문제를 푸는 동안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BFT는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소수에 의해 시스템이 받아들여야 할 옳은 거래를 정하는 방식이고, 투표에서 배제되는 이들이 없도록 장치를 둔 알고리듬이다. 이에 SBFT는 이 투표의 사회자 격인 참여자가 장애로 인하여 갑자기 참여하지 못할 경우에 대한 대안을 갖춘 알고리듬을 PBFT에 더한다.
정리하면 다수의 선택을 받은 소수의 대표자들이 투표로서 전체 시스템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시스템이다. 이로써 모두가 참여하여 합의를 이끄는 POW 계열이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암시한다.
총평
들뢰즈와 가타리로부터 온 '연결'이라는 촛불이 불꽃이 될 수 있을까?
앞 부분에서 제시되는 여러 개념들, 그리고 아키텍처 부분에서 언급되는 개념들, 그리고 중간중간 제시되는 개념들 간의 통일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이콘 백서를 만들며 제시된 다양한 개념들에 대한 종합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느껴진다.
몇 가지 점에서 그러한데, 첫째 ICON Republic, C-Rep라는 개념이 넥서스와 포털로 치환되어 다시 설명될 때에 앞서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들이 나온다는 것이 그러하다. 물론 앞선 내용이 이에 대한 요약이라고 할 수 있긴 하지만 뒤 내용의 중요 내용이 앞에서 언급되지 않아 혼란을 야기한다. 이 혼란은 마치 먼저 아이콘의 원천 기술이 기술되고, 후에 다른 사람이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이해한 만큼의 내용만 적은 듯한 느낌을 풍긴다.
둘째로는 아이콘의 응용 사례들이 너무 나이브하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으로의 적용 사례의 경우 "대학생 커뮤니티는 그 어떤 세대나 계층보다 가장 먼저 가상화폐를 사용하고 전파하는 얼리어답터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라고 되어있는데 솔직히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대학생들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효용을 생각하고 이 집단의 어떤 특성이 이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대학생은 빠르게 습득하고 활용하기 때문에 아이콘을 흡수할 것이라는 희망은 기우제를 지내던 고대인들의 희망과 유사하다. 이는 사실 이더리움의 백서에서 언급된 적용 사례들과 너무나 대비된다. 이더리움의 적용 사례들은 철저하게 기술적으로 그리고 그 기술이 낼 효용들에 집중되어 적혀있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없는 실정인데, 아이콘의 사례는 허술한 사업 계획서를 보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된 '비싼 수수료'와 '네트워크 부하'에 대한 시원한 대답이 없다. 아이콘이 제시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비용이 낮은 합의 방식(SBFT)과 여기에 참여하는 관계자의 수(C-Rep)를 줄이는 방식을 제시한 것이라면 아이콘만의 특장점이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코스모스나 아이온과 같은 다른 체인에 비하여 어떤 점이 뛰어난지 잘 알 수 없다.
이에 내가 좋아하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빛이 백서를 읽으면서 사라져간 것은 너무나 아쉽다고 밖에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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