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유령 5)

  • 이영광

어뢰였으면, 차라리

수중 폭발로 인한 버블제트였으면

전광석화의 두 동강이었으면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전쟁이 나건 말건

69시간이 아니라 6.9분이었으면

6.9초였으면

중계방송 따위가 없었더라면

구조 없는 구조 속보가 안 들렸더라면

사고든 사격이든 사기든,

깊은 사색이든

뭘 밝히는 중이냐

뭘 덮는 중이냐, 상관없이, 나라?

서해가 마르고 닳건 한반도가 가라앉건 그 나라가 망하건 말건

숨 없는,

한순간이었으면

아비규환이 될 겨를도 없었을 0.69초였다면

유령이 될 수도 없었을

0.069초였다면

섬광이었으면 그냥,

끝이었으면

육백구십일 같은

육십구년 같은

69시간만 아니었다면

69시간이라고, 알려주지만 않았더라면

하늘 아래 가장 안전한 곳,

天安에 내려야 하는데

天安을 지나쳐야 하는데

초청 강연도 시와 트라우마도,

빗줄기도 참이슬 후레쉬도 아우성도 다 함께

머리 풀고

天安에 내려야 하는데

天安을 벗어나냐 하는데

天安에 닿아야 하는데

다운로드.jpg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나 가라앉았다.

69시간은 당시 생존가능시간이라고 언론이 떠들어댔던, 침몰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조차 못해 우왕좌왕 했던 시간이었다.

보수언론은 1면에, 북한에서 쏜 1호 어뢰라며 그 위에 사람이 탄 모습을 그렸는데 ㅡ '인간어뢰'의 이미지가 너무나 선명해서 말도 되지 않는다며 비웃음을 사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그것에 1호가 아닌 1번이라고 쓰여 있다며 북한입네, 아니네 하며 한참 설왕설래가 오갔다.

원인이 밝혀졌다면 응당 마땅한 조치가 있어야 했으나 ㅡ 지방선거 때문인지 무능 탓인지, 그러지 않아 혼령과 유가족들은 천안에 닿지 못했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도 안타까워하다가 육십구일이 지날 즈음에는 ㅡ 이 세상에는 기억해야 할 게 너무나 많으므로, 체념하듯 잊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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