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당연히 출근합니다

"이건 불법이에요!"

"당신의 행동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요."
"이 자를 여기서 당장 끌어내요!"

미국 몽고메리 시는 백인과 흑인을 분리하도록 하는 자치 법률이 있었다.

버스 좌석 중 앞쪽 열은 백인석, 뒤쪽은 흑인석으로 지정하며 가운데 좌석은 아무나 앉을 수 있다. 그러나 빈 좌석이 없을 경우 흑인은 백인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어느 날, 한 흑인 여성이 버스를 탔고 가운데 좌석에 앉아 있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몇 정류장 뒤 백인들이 버스에 탔고 앞쪽에는 빈 자리가 없었다. 그러자 운전기사 ㅡ 흑인은 버스를 운전할 수 없다. 백인만 기사를 할 수 있었다 ㅡ 는 흑인 여성에게 자리에서 즉시 비켜날 것을 요구했다.

그 흑인 여성은 자리에서 일어나야 마땅한가? 당시 법에 따르면,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백인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것이 차별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좌석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경찰에 체포 당하고 말았다.

과연 이것이 마땅한가? 당연한가?

무려 1955년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그 흑인 여성의 이름은 '로자 파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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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애인들의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 이동권 시위가 논란이다. 이동권을 두고 논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지만, 몇몇 비판하는 논리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어 말을 얹는다.

"이동권 보장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라, 불법시위를 지적하는 거다."

"당신들 권리도 좋지만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해서야 되겠는가?"

"본인들의 불편함을 빌미로 타인의 생활권을 침해하는 것은 안 된다."

장애인단체의 시위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의 대부분은 시민을 볼모로 불편을 초래한다는 내용이다.

'시위'는 많은 사람이 공공연하게 의사를 표시하여 집회나 행진을 하며 위력을 나타내는 일로, 마땅히 타인의 불편을 수반한다. 불편해서 못 봐주겠다는 식의 의견은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의 모든 시위를 부정하는 셈이므로 결코 온당치 않다.

시위가 아니라 불법이 문제다?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무엇이 불법인가? 대체 왜 불법인가?

이걸 또 굳이 찾아 보았다.

철도안전법

제48조(철도 보호 및 질서유지를 위한 금지행위) 누구든지 정당한 사유 없이 철도 보호 및 질서유지를 해치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열차운행 중에 타고 내리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승강용 출입문의 개폐를 방해하여 열차운행에 지장을 주는 행위

이것 말고는 불법이라고 주장할만한 근거가 딱히 눈에 띄진 않는다.

장애인도 일을 한다. 당연히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 대체 무엇인가?

그저 장애인들이 하필 그 시간에 사업장으로 출근하는 길이라면? 과연 문제 삼을 수 있을까? 이미 수많은 비장애인들은 하필 그 시간에 사업장으로 출근하고 있지 않은가?

또 정당한 사유가 없나? 열차를 타고 내리는데 플랫폼과 열차 간 틈이 넓어 휠체어 바퀴가 빠지거나 승강장에 턱이 있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시간이 걸린다. 이것이 불법의 이유가 될까?

또 정당한 사유가 없나?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3조(이동권)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제4조(국가 등의 책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과 여객시설의 이용편의 및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여야 한다.

이 법은 교통약자의 사회 참여와 복지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 법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간 책무를 다하지 않았던 실정은 정당한 사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불법시위여서, 장애인들의 주장이 그 목적을 훼손할 정도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논리를 그대로 돌려주면, 비장애인들의 일상 역시 불법일 수 있다. 비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어쩌면 장애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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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불법이에요!"

"당신의 행동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요."
"이 자를 여기서 당장 끌어내요!"

로자 파크스의 행동은 차별에 맞서 흑인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데 도화선이 됐다. 더이상 흑인과 백인이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식수대를 따로 쓰거나 엘리베이터를 따로 타거나 하지 않게 되었다. 67년 전, 한 버스에서의 소란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다.

오는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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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혜와 동정의 날이 아닌,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알려내고 공감대를 확장하는 의미로서 이제는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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