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피하려고 / 이병률

짧게 출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짧았다지만 그것도 십여 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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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서류 없이 당장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고는

짐을 싸서 내려와 길을 건넜다

짐을 쌌지만 커다란 쇼핑백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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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길 한가운데서 쇼핑백이 툭 터져

잡다한 모든 것들이 좌르르 길 한가운데로 쏟아졌다

나는 그것들을 주섬주섬 길가로 옮겨놓고는

다니던 건물 회사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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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수군대고 있었다

겨우 그만두기나 하는 내가 벌레 같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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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지금까지 벌레일 것이나

기어서 도착한 곳이 아직 없으며

고작 비를 피하러 거기로부터 멀지 않은 데서

기웃거리기나 하고 있다는 사실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