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식도 / 이승주

잠시 물의 표정을 살피며

젊은 대원들이 뜨거운 커피를 휘휘 젓는다

저마다 목구멍 속으로 남은 커피를 넘기고

주름진 물의 목구멍 안으로 내시경을 넣는다

어룽어룽, 가파른 물의 식도

자궁에서 묘지로 이어지는

휘감도는 물의 계단이 확연하다

대원들이 미처 손쓸 틈 없이 물의 계단은 무너지고

무너진 위에 계속해서 무너지는 물의 계단

물이 위대한 건

무너지는 물의 계단을 쉼 없이 다시 세우는 까닭임을

아침 일찍 물의 부름을 받은 사람 알지 못하지만

물이 두려운 건

누구라도 무너지는 물의 계단을 잠깐이라도 멈추게 할 수 없기 때문임을

한번 물의 계단 아래 물로 돌아간 사람

잠깐이라도 다시 불러올 수 없기 때문임을

대원들은 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종일토록

무너지는 물의 계단을 끝없이 세우는 서늘한 물의 작업

어둑해진 얼굴로 대원들이 저마다의 집으로 돌아간 뒤

둑 위의 키 큰 미루나무

가지 꼭대기에 수군수군 말들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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