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와 물고기 / 김경수
애인에게 보낼 편지를 들고 찬 바람에 떨고 있는
한 소심한 사내가 강물 속을 들여다본다.
물고기는 물의 치마에 새겨진 문양文樣이다.
물속 자유민주공화국에서 비로소 자유를 쟁취한
푸른 지느러미가 맑은 소리를 매달고 흔든다.
물고기의 내장을 통해 차가운 소리가 흐를 때
물고기라는 언어는 편안해진다.
물고기란 언어가
꼬리지느러미에 힘찬 사유思惟를 달고 강물 속에서 유영한다.
저녁노을이 산 뒤로 넘어가자
산이 짧은 순간 더욱 선명한 검은색이 되어
언어들이 헤엄치고 있는 강 속으로 뛰어든다.
물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흰 꼬리지느러미를 단 시간이 끊임없이 사라지는 것을
파란 수초 같은 현재가 끊임없이 새로운 현재로 바뀌는 것을
물고기는 시간도 흐르는 알갱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象徵이다.
사라지는 존재가 사라지는 시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물고기란 언어가 사라지는 인간의 뒷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본다.
한 소심한 사내가 살고 있는 산속 작은 집 창문을
저녁 7시가 두드린다.
애인에게 보낼 편지를 아직 보내지 못하고 있다.
편지가 한 사내의 마음을 읽고
꿈속 우체통으로 스스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