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6 -노자의 생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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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상의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남아 있다. 그의 본명은 이 이 (李 耳)이고 자는 백양(伯陽), 시호는 담(聃)이라 하였는데 생존 연대는 대개 기원전 570년에서 470년 사이로 본다. 이때의 중국은 춘추 시대 말기에 해당되며 맹자 이후, 한비자 바로 이전 시기이다.
노자는 중국 남부에 자리하고 있던 초(楚)나라 상현이라는 고장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자랐다. 서른 살 무렵에는 은나라의 유민이 세운 송나라 패(沛)지방으로 옮겨 살았는데, 이것이 그가 패배의 미학, 은둔사상 같은 송나라 특유의 사상적 특징을 보이는 배경이 될 것이다. 그 뒤에 주나라에서 장서실 일을 보는 벼슬을 하며 20~30년을 머물다가 권력 투쟁에 환멸을 느껴 다시 패로 돌아갔다.
노자는 70세쯤에 은둔을 결심하고 황하를 건너 남쪽으로 갔다. 여정 중에 도림새(桃林塞)에 이르렀을 때 관윤(關尹)을 만나 그의 청을 받고 자기의 생각을 담은 글을 남겼는데, 그 글이 도덕경이다. 그 후 그는 진(秦)에 은거하며 30여년을 더 살다가 백세 가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중국 사상의 양대 축을 이루는 것은 지배계층의 유가 사상과 민초들의 노장 사상이다.
유가 사상은 나아감(進)의 사상으로, 인문주의, 인간중심주의 성격을 띠며 노장 사상은 돌아감(歸)의 사상으로서, 천지인의 근원인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노자가 살았던 시기는 세력이 약해진 주왕조 아래 여러 제후국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느라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지던 혼란의 시기였다. 위정자들은 개인적 이익만을 도모하고 사치와 낭비를 일삼으며 백성들을 착취하고 억압하였다. 권력자들은 자기 권력을 확대하기 위해 백성들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웃 나라들과의 전쟁을 일삼아 참화가 끊이지 않았다. 노자는 이러한 시대와 사회의 아픔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고민했던 사상가였다. 그는 우주와 인간 세계를 관통하는 자연스런 도리를 통찰하고 이에 따름으로써만 인간 사회의 혼란과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노자는 인위적 규제를 반대했다.
그것은 혼란과 불의를 가중시킬 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제도, 문화, 철학적 성찰, 언어나 인식에 이르기까지 근본주의적 관점을 견지했는데, 이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 그리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라는 그의 유명한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에 잘 나타나 있다.
제자백가 사상은 대체로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정책적 대응을 본령으로 하고 있지만 노자는 다른 학파들의 주장과는 달리 일체의 인위적 규제를 반대한다. 인위적 제도나 규제는 당시의 혼란은 바로잡을 수 있는 방책이 되지 못하며 도리어 혼란과 불의를 가중시킬 뿐이라는 기본적 입장을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다. 노자가 제자백가들과는 달리, 자연을 chaos가 아닌 cosmos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반문화적(反文化的)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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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ears ago 

공자가 노자를 스승으로 생각했다더군요^^
도가도 비상도~~~

맞습니다 ㅎㅎ 정말 흥미롭더군요

오~~ 노자 정말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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