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탈출기] 번외 - 휴가에서 돌아왔는데..

일주일간의 로드트립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기존 계획은 하루의 마무리 시점에 글을 써 올리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하루의 마무리 시점에 혼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함께 있는 이와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기도 했구요.
그래서 중간즈음 생각을 바꿔 해야 하는 과업에 집중하기보다 그 순간을 맘껏 즐기자 생각을 바꿨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시들해져버린 식물들이었어요.
얼마 전 집안에 생기를 더하겠다며 새롭게 맞이한 식구들이었죠.
노오란 잎이 여기저기 생겨버린 구문초, 말라버린 유칼립투스, 이파리 몇 개가 검은 빛깔이 돌고 있는 올리브나무까지...
급히 소생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찾아보니 구문초와 올리브나무는 영양제와 햇빛, 물을 잘 주면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문제는 유칼립투스였죠.
이 친구는 2-3일에 한번 물을 줘야 하는 친구였더라구요.
일주일 남짓 물을 주지 못했고, 빛이 잘 드는 곳에 있었으니 물은 금방 말랐겠죠.
아마 격일로 물을 줬어야 했을텐데, 7일씩이나 물을 얻지 못했으니...
저는 막연히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여행을 떠났던 겁니다.

목이 타들어갔을 식물에게 물을 주고 영양제를 꽂아주는데,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생명을 집안에 들여놓고 이 친구들에게 필요한 게 뭔지 제대로 몰랐던 저는 참 무책임했던거죠.
강아지를 데려오는 사람이 강아지를 어떻게 길러야 하며, 강아지를 기르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제대로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일주일 전의 제게 이 식물들은 생명이 없는 인테리어 소품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유칼립투스가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물을 흠뻑 주고, 영양제도 주며 유칼립투스를 키우는 블로그 글을 몇 개 찾아보았습니다.
물을 좋아하는 이 식물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땐 물을 주면 마치 고맙다고 하듯 가지 끝을 바짝 세운다는 표현이 여기저기 있었어요.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제 유칼립투스는 가지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아직 뿌리까지 죽어버린 것은 아닐지도 모르니, 조금이라도 소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바싹 말라버린 유칼립투스의 가지들을 잘라줬습니다.
잘라낸 가지를 보고 있자니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이 됐습니다.
버리자니 마음이 너무 좋지 않더라구요.
어떻게 키우는지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은 제가 이 가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순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번 기회에 깨달은 바를 기억할 수 있도록 보관해야겠다 싶었어요.
잘라낸 가지 중 가장 긴 가지는 문에 걸 수 있도록 만들고, 나머지 잔가지들은 한데 모아 갈색 냅킨과 마끈에 싸 장식품처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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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보기 좋게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 옆에는 사진을 예쁘게 찍어보려 노력한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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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방문을 열 때마다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반성과 다짐하게 해줄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것에 반해 할 수 있게 된 현재는 지난 일주일의 쉼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하고 의미를 부여해봅니다.
식물들에게 두고두고 미안해야 할 일이 생겨버리긴 했지만, 제가 잘 쉬고 왔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기 때문에 어떤 잘못을 했는지 똑바로 볼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이 말을 하기까지 다소 장황했나 싶네요:)
그럼 저는 지난 일주일을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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