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가는 시계

집에 시계 있으신가요? 저희 집엔 시계가 총 4개 있습니다.

재밌는 건, 모든 시계의 시간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시계는 핸드폰 시계보다 5분 빠르고, 어떤 시계는 10분 느리고 그렇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맞춘 것은 아닙니다. 분명 모두 같은 시간에 맞춰뒀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들 자신의 페이스대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보통 핸드폰 시계를 기준으로 빠른 놈느린 놈이 구분됩니다. 시계로서 가장 바람직하다고 평가받는 놈은 핸드폰 시계와 시간이 같이 흐르고 있는 놈입니다. 핸드폰 시계가 없었다면 누가 빠른지, 누가 느린지 비교하지 않았겠지요.

또, 한번 느려져버렸거나 빨라져버린 그런 시계는 열심히 가라고 아무리 다그쳐봐도, 결국 자기 페이스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기준 시간대로 맞추지 않고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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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준을 달리 놓고 보면, 우리는 어떤 시계의 속도가 빠르고 느린지 특정할 수 없습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시계를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에는 그 시계의 움직임이 느려졌을지라도, 죽음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그 시계는 지금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시계는 지금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려고, 일부러 느리게 흐르고 있는걸지도 모릅니다.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저마다의 속도는 다 다른 것 같습니다. 사실 출발선 마저 어쩌면 모두 다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 같은 날 구매한 시계가 아니니까요. 태어난 시간이 모두 다른 우리와 같달까요?

정교하지만 꽤나 단순한 원리로 돌아가는 시계마저 자신의 페이스가 있는데, 시계보다 더 복잡하게 구성된 우리 사람은 오죽할까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각자의 시간대로 꾸준히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준이라고 정해놓은 무언가에 함께 발을 맞추면 우리 마음은 조금 편해집니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흐르면 어떤가요? 우리 마음이 그게 좋다면 그만이지요 :)

저는 종종 작은 불안이 마음 속을 휘집어 놓아 잠 못 이룰 때가 있습니다. 혹시나 저처럼 오늘 하루도 치열한 하루 속에서, 조급해질 수 밖에 없는 마음으로 인해 온몸이 긴장한 탓에 잠 못 이루신다면, 오늘은 그만 놓아주고 내일 다시 생각해보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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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저는 가끔 시계가 없는 하루를 사는 것도 좋아합니다. 시계에 의지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을 느낌으로만 느껴보는 것이죠.

그렇게 하루를 보내보면, 하루가 정말 특별하고 길게 느껴집니다. 특히, ‘시간’이라는 것이 굉장히 무한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약간의 답답함과 핸드폰 마저 사용하지 않아야한다는 어려운 조건이 있지만, 촉각을 다투며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으로부터 의식적으로 잠깐 물러나, 오늘 하루의 감각에 집중해보는 하루도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제 시간은 제 마음을 기준으로 아주 천천히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흔히 기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많이 떨어져있다는 느낌도 종종 받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게 좋더라구요. :)

여러분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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