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곡과 소고당 – 정읍 여행 2

in Korea • 한국 • KR • KO10 months ago (edited)

상춘곡과 소고당 – 정읍 여행 2

“紅塵(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生涯(생애) 엇더한고.” 이 구절을 들으면 아 분명히 배운 건데.... 하며 이마를 짚는 사람이 많으리라. 그 중에 똑똑한 사람은 “정극인의 상춘곡!”을 소리쳐 부를 수도 있겠다. 대입 수험생 때정극인은 웬수같은(?) 사람이었다. 이 ‘가사(歌詞)의 효시’인 작품 이후 송순의 면앙정가가 나오고, "임금한테 아부한다고 이런 짓까지 하다니!" 개탄을 낳았던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공포의 삼종 세트가 등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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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없으면 장독이나 깨지 뭣하러 이런 가사를 만들었을까 하는 수험생의 원망은 타당했으나 우리 말 우리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불우헌(不憂軒) 정극인의 존재는 사실은 무척 고맙다. 복잡한 한자로 어려운 운 맞춰 짓는 한시가 아니라 술술 나오는 우리 말로 노래하듯 부를 수 있는 가사를 짓고 노래했다는 것 자체로 정극인의 호는 ‘근심이 없는’ 불우헌이 아니라 영원히 간직될 불후헌(不朽軒)이 돼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가 드높이 섬기는 조선 후기의 천재 다산 정약용이 정말이지 단 한 편의 한글 저술도, 하다못해 편지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하면 더욱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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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렸는지는 알 수 없는 정극인 초상. 아주 옛날 솜씨는 아닌 듯.

정극인은 정읍의 무성서원에 모셔져 있지만 원래 이 지방 사람은 아니다. 경기도 광주 사람인데 세종 때 절 짓는 일에 결사 반대하다가 죽을 뻔하고 북도로 귀양 갔다 온 뒤 처가가 있던 태인(오늘날의 정읍에 포함)에 들어와 살았다. “여보게 이웃들아 산수 구경 가자꾸나. 나들이는 오늘하고 목욕은 내일하자” 하면서 호시절만 보낸 것은 아니었고. 향약을 만들어 촌민들을 계도하고, 모범이 되는 선비로 살았다. 무려 나이 여든에 세종의 증손자인 성종 임금 앞에 나아가 세종 임금의 실책이라 할 ‘부민고소금지법’ 즉, 백성이 지방관의 허물을 고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죄 주는 법을 철폐하라고 호소하고 있으니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가사 읊고 술이나 먹던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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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무성서원 뒤에는 그를 기리는 ‘상춘곡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무성서원 뒤쪽으로 난 산길을 800미터 정도 걸으면 상춘대가 나오고, 정극인처럼 이 지역에 은거한 선비들이 머물렀다는 송정(松亭)이며 영모정이며 하는 정자들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다. 길지는 않으나 오르는 길이 꽤 팍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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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스무 명이면 그 중에는 반드시 산길을 질색하는 이들이 있는 법, 초반부터 헥헥거리며 굳이 이걸 걸어야겠느냐 볼멘 소리도 나왔지만 동기 윤희가 양치기 소녀 역할을 했다. 선봉에 서 올라가면서 연신 “어 다 왔다!” “진짜 다 왔다!” “어 저기가 상춘대구나.” 외쳐 대면서 풀리려는 무릎들을 다잡고 늘어지는 엉덩이들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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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별로 성하지 않아 뵈는 울긋불긋 단풍나무들 사이로 소나무와 대나무 가지와 잎들이 푸르게 한들거렸고, 길목 곳곳에는 상춘곡 가사를 적은 팻말들이 있어서 걸음의 흥을 돋웠다. 오늘 저녁 맛볼 정읍 산외 한우, 전라북도에서 장수 한우와 쌍벽을 이루는 명품 한우와 음주할 생각을 하니 절로 상춘곡 가사가 되뇌어진다. “ᄀᆞᆺ 괴여 닉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밧타 노코 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 막 받아 익은 술을 갈포 수건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잔 수 세며 마시리라. 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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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 쇠고기 만찬은 환상적이었다. “무릉이 가깝구나 저 산이 그곳인가.” 상춘곡의 가사가 절로 흘렀다. 고기는 입에서 녹고 술은 목 적시고 이야기는 구수하며 저녁 먹은 뒤에는 또 다른 미주가효의 장이 열릴 것이니 무릉도원이 따로 있겠는가. 아울러 우리의 밤을 찢을 곳은 이곳에서 터잡고 살아온 명문가의 고택인 다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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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숙소는 동기 고유창의 외가인 ‘규당 고택’이다. 1930년대에 외고조부가 지으신 집으로 최근 한옥 체험 숙박 시설로 지정받아 수리와 정비를 마친, 고택의 고즈넉함과 오늘날의 세련됨을 동시에 갖춘 곳이었다. 아직 숙박객을 사업적으로 받지는 않고 지인 찬스, 가족 찬스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니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특히 이 집은 정극인의 상춘곡의 맥을 잇는 가사 문학의 체현자였던 ‘규방 가사의 마지막 작가’ 소고당(紹古堂) 고단 선생의 거처이기도 하니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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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유창이 자부심 그득한 손길로 뭔가를 가리킨다. 마루 시랑 위에 얹혀진 오래된 소반들이었다. “이 소반들은 손님들을 대접하던 것들이야. 외증조부님은 거지가 오건 양반이 오건 똑같은 차림을 소반에 담아서 내놓았다고 해. 그래서 배고픈 사람들이 몰려들어도 마다않고 다 받으셨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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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어 빛바랜 색의 소반들이지만 그 위에 차려진 국밥과 반찬들이 겹쳐 보였다. 그 음식들 차려내 사랑채에 내 가고, 고맙소 많이 드시오 주고받는 인사가 귓전에 울렸다. 진정한 명문가는 만석꾼 부잣집이나 몇 대 정승을 낸 또르르한 집안이 아니다. 명문세가(世家) 즉 명문 세도가 집안이나 명문거족(巨族) 곧 거창한 집안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온당하지 않을 것 같다. 명문(名門)이라면 “사방 백리 안에 굶는 사람 없게 하라.”는 경주 최부잣집처럼 베풀 줄 알고, 남 어려운 사정 꿰뚫어 볼 줄 아는 집안일 것이기에. . 그런 전통 서린 곳에서 하룻밤 유하는 것 역시 지나칠 수 없는 행운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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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당 고단 여사의 가사 작품은 많지만 그 중 하나가 슬몃 웃음을 맺히게 한다. 이곳을 찾은 스무 명 아재 아지매들은 모두 88학번들이다. 그 이름도 고색창연한 88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대학 문턱을 밟은 이들이다. 고택을 떠들썩하게 하는 그들의 왁자지껄과 고단 여사가 올림픽을 지켜보며 읊은 가사의 낭랑함이 겹쳐지자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썰렁할까봐 현장에서 읽어내리지는 못했지만 짤막하게 되짚어 본다. “개막식이 끝난 후에 여기저기 경기장서 / 기합소리 박수소리 무엇부터 볼거나 / 이것도 보고 싶고 저것도 보고 싶고 / 이몸이 열개라도 모자라고 안타깝다 / 여기가 어디냐 물소리가 요란쿠나 / 물찬제비 여기있다 수영장이 들석이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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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에 모인 88학번 동기들은 청소년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86 88 국가 대사에 대한 세뇌를 받았다. 올림픽 그날이 과연 올까 싶을만큼 지겨웠고,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는 ‘손에 손 잡고’를 구토가 나올 만큼 (표현이 과할지 모르나 그때는 그랬다) 들었다. 그렇긴 해도 35년 전에 열렸던 그 ‘거족적 행사’는 한국의 위상은 물론 그 후 역사의 물줄기도 바꿔 놓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파릇파릇 대학 신입생이었을 무렵, 이곳 소고당에 기거하던 고단 여사는 올림픽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저 가사를 써내리고 계셨고, 서른 다섯 해 이후 반백의 우리는 이제는 당호(堂號)로 남은 소고당을 보며 술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허리가 돌아가고 골반이 흔들리고 목청들이 찢어진다. 노래 제목만 얘기하면 제꺽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오는 현주에게 여러 노래를 주문하던 끝에 산울림의 ‘청춘’도 나왔다. 그 노래 가사를 ‘가사체’로 바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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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가겠지요. 저푸르는 내청춘도 피고지는 꽃잎처럼
큰달밝은 밤이되면 창안으로 흘러드는 내젊은날 연가들도
구슬프게 흐릅니다. 가고없는 날들일랑 다잡아도 소용없고
빈손짓에 슬퍼져서 가버려라 돌아서면 세월그리 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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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웃고 즐기는 가운데 유창이가 갑자기 서늘한 소리를 한다. “내일 아침 다섯시 반에 깨울 거야. 아침 식사 컵라면 때우고 내장산 간다. 그때 안가면 내장산 들어가지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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