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뭐라도 이룰 수 있을까요?

in Korea • 한국 • KR • KO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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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어떤 문제나 골칫거리가 생겼을 때 이를 유능하게 해결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매우 저조한 상태이고, 정서적 자극을 받아들이고 소화하여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해냄으로써 스트레스의 누적을 예방할 수 있는 정서적 수용성과 개방성 부분에서의 자원이 제한되어 있음.

심리 검사의 일부를 데려왔다. 삼십만 원의 검사여서인지 결과를 논문처럼 주어서 잊어버리려야 잊어버릴 수 없다. 여름에 받은 결과지이기는 하지만 해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전에는 새 다이어리를 사면 연 목표는 물론이고 월 목표까지 미리 세워뒀는데 이제는 왜인지 그럴 마음이 없다. 힘도 생기고 무기력도 많이 나아졌는데 신기한 일이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걷다가 뜻하지 않게 반가운 소식을 만나고 싶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궁극적인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자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죽어도 잊히고 싶지 않는 것이라 답했다. 나는 내 묘비에 '여기 오실 바에는 그대의 인생을 사세요'라 적고 싶을 만큼 빠르게 잊히고 싶다. 그런 사람이 책을 내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으니 이 역시 이상할 따름이다. 물론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오래 기억되는 쪽을 바라지만, 그 밖으로 어떤 문학적 성취를 이루거나 커다란 명예를 안고자 하는 욕구는 없다. 친구보다 명예, 사랑보다 돈을 택하던 내가 어느새 이렇게 변했다. 사후에 유명해지는 것보다야 현생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더 크다.

한동안 사람들에게 연초와 연말 중 어떤 시기가 제일 좋냐는 질문을 하고 다녔다. 크리스마스와 캐럴이 주는 묘한 설렘으로 연말을 꼽는 사람이 있었지만, 대부분 연초가 좋다는 답이 왔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바람으로 하나를 더한 나이와 함께 목록을 실행하기에 딱 좋은 시기라는 뜻이었다. 나는 꿈이 없던 적도 있었고 있던 적도 있었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기면 아무래도 미래가 기대된다. 목표를 위해 뿌린 씨앗이 있으므로 수확을 기대하는 마음이 따라와서다. 다만 기대가 무산될 때는 좌절하게 된다는 슬픔이 있다. 오늘의 행복을 추구하며 웃는다면 매일이 기쁘겠으나 앞으로 어떻게 사냐는 불안이 따라올 여지가 있다. 무엇이 더 좋으냐 하면 확고히 답할 수 있다. 모르겠다고. 그러니 더 끌리는 쪽을 고르자고.

개인의 능력이 우선시 되고 성공과 실패 역시 개인의 노력에 달려버린 나노 사회에서 자신을 알리는 쪽은 생존과 관련되어 버렸지만,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쪽이 맞는 사람도 있다. 자꾸 사회가 본인을 보이기 싫은 사람을 멀리하는 것 같아 기분이 조금 그렇다. 친구들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꿈의 목록을 보아하니 대부분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브런치와 블로그를 시작하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나누어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만들겠다고 쓰여 있었다. 삼 년간 브런치를 하는 사람으로서 아무렴 부끄러움을 잠시 접어두고 취향과 생각을 공유하면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 모여드니 좋다. 다만 그것은 모두 자원이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게 좋다는 얘기에 휩쓸려서 시작하는 건 조금 생각해봐야 한다.

다가올 트렌드는 나노 사회여서, 좋아요가 돈이 되는 라이크 커머스여서 성급히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장을 위해 임한 계획이 도리어 자신의 발목을 잡아 평소 재미있던 일도 재미없게 변할 수 있어서다.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 일확천금을 벌고 싶어서 시작하는 것보다 열 명의 친구를 만들자는 쪽이 지치지 않고 오래 걸을 확률이 높다. 좋아요를 바라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자신을 좋아하지 못하게 된다. 심리 검사를 받았을 때가 딱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 글을 내리고 올릴 때였는데, 이런 해석이 나왔다.

익숙하지 않고 스스로의 적응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잠재력이나 수월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 자존감을 유지하기보다는 주변의 평가에 대한 민감성이 증가되며, 자신에 대한 주변의 호감도, 외적 기준에 따라 자존감이 오르내리는 경향이 예상됨. 스스로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기 쉽겠음.

메모장에 담아둔 글이나 그림을 꾸준히 공개하면 어느 시기부터는 자신만의 개념이 생긴다. 아,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좋아하는구나, 사람들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싶어 하는구나, 라는 것들. 그러면 말하고 싶은 이야기와 충돌하는 지점이 생긴다. 내가 말하려는 얘기는 우울한데 사람들은 긍정을 바라니까 억지 긍정을 가지고 와서 저는 이렇게 나아졌답니다, 하는 거짓말을 할 위험도 높다. 이전의 내가 딱 그랬다.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한 첫 책이 중쇄를 찍지 못해서 나는 더욱더 사람들의 시선에 매달렸다. 저를 좀 봐주세요, 저는 여기 있어요, 당신이 좋아할 얘기를 이렇게나 쌓아두었어요. 어둡지 않은 얘기를 쓸게요.

밥을 먹다 본 오늘의 뉴스에는 끝나지 않는 코로나로 인해 벌어지는 심각한 상황이 들어 있었다. 넷플릭스에나 나올 법한 디스토피아가 지금 바로 여기 있으므로, 화상 회의로 몇 분만에 사람들을 해고해버리는 생경한 사회이므로 우리는 더는 회사를 믿지 못한다. 그러니 회사 밖에서도 살아남을 나의 능력을 늘리고자 공개하기 싫은 얼굴과 얘기도 공개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성공한 사람의 말이더래도 당신이 싫으면 하지 않아야 한다. 겉으로는 자존감도 튼튼해 보이고 강의를 하니 말도 잘할 것 같지만, 실은 나는 대인기피증을 앓아 말을 더듬거리고 심리 검사 결과에서는 자기 회복력도 한참 낮게 나왔다. 나는 그때 숨고 싶었지만 계속 썼다. 돌아보니 숨어서 회복한 뒤에 나오는 게 나았다. 공개하기 싫을 때는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전작에 악플이 달려 몇 개월을 그 악플로 끙끙댔다. 본인은 어른이 다 되었다고 착각하는 반항아라며 스스로를 다 큰 어른이라고 생각하니 오 년 뒤 다시 본인의 책을 읽어보라는 내용이었는데, 충격을 받아서인지 이후로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지 못했다. 정작 나는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있으면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흡수하는 유형인데, 조언을 가장한 악의 어린 충고에 자신감이 깎였다. 조언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야 한다. 파편화되고 삭막해진 세상에서 함께 좌절하지 말자는 바람으로 용기를 냈다.

다른 이들이 너무 많이 걸었으니 새로운 사람은 반기지 않는다는 길, 당신이 좋으면 걷기를. 전망이 안 보여 아무도 걷지 않는다는 길, 당신이 좋으면 걷기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걷기보다 그저 좋아서 걷기를. 나도 앞으로 당신과 함께 무작정 좋아서 걷겠다. 돌아오는 내년 연말에 당신은 어떤 한 해를 보냈는지 나누자. 이제 내가 할 일은, 당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것뿐. 나는 잊혀도 되니, 이 메시지는 당신의 마음에 남기를 바란다. 물론 달갑지 않은 조언이라면 잊어도 된다. 그것도 당신의 마음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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