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은 가만히 두어야 이루어진다

in Korea • 한국 • KR • KO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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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고 꾸준히 노력했다. 누군가 "해봤자 달라지는 게 있어? 결국 부의 세습에 놀아나는 꼴밖에 되지 않아."라는 비평을 펼칠 때도 무작정 노력만 했다. 애매한 재능을 갈고닦기 위해 하루 한 편씩 필사를 하고, 우울해도 일주일에 한 권은 책을 읽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 매일 아침 일곱 편의 뉴스레터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자 원하는 기업에 합격했는데 …… 중요한 건 입사할 힘이 떨어진 뒤였다. 스펙을 갈고닦느라 스펙으로 쓰일 능력을 정작 발휘하지 못할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결국 최종 합격을 알리는 전화에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놓고 마무리지었다. 통화를 끊자 굉장히 큰 허무감이 밀려왔다. 열심히 해봤자 결국 나를 기다리는 건 열심히구나 …… 정말 노력은 끝이 없는 거였어 …….

노력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시작하기도 전에 나가떨어지고 말았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또 느낀 사실은 '역시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렇게 쉬려고 온 제주에서조차 제대로 쉬지 않고 무한대의 원고를 썼다. 매일 시간을 들여 소설을 탈고했다. 그러면 성공할 테니까. 틈틈이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한다던 크몽과 숨고를 등록했다. 그러면 돈을 벌 테니까. 더 열심히 준비하면 또 다른 과외가 들어올 테고, 브랜딩 콘텐츠 마케터라는 이름이 새겨지면 어린 나이에 프리랜서로 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손때를 아무리 묻혀도 되지 않는 일이 오면 답답했다. 당연히 붙을 줄 알았던 에세이 공모전에 떨어졌을 때, 내자 마자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자부한 책이 한 달에 몇 권 남짓 팔리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릴 때면 입사를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시무룩하게 전화를 끊었던 날처럼 미칠 듯한 자괴감이 들었다. 나름 강의 준비에 열고 성을 다했는데, 왜 부족하다고들 말하는 거지? 왜 내가 만든 카드 뉴스보다 대충 만든 카드 뉴스가 더 잘되는 걸까? 그때, '너무 열심인 우리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이라는 카피를 단 책을 발견했다. 《노력의 기쁨과 슬픔》. 제목만 보기에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성공에 올라타려는 마케팅 수법 같 …… 기는 하지만, 장강명 작가가 추천한다니 기꺼이 구매했다.

어려움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무엇을 걸었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겠지. 결과에 연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시라노는 칼싸움에도 시작(詩作)에도 실패하지 않았어. 정확히 말하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서 말이야.

하지만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이거나, 고심하거나,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면 시라노마저도 실패해. 이런 시라노를 보고 교훈을 하나 얻을 수 있지. 목표를 이루고 싶다면 그 목표에 너무 매달리지 말 것.

  • 《노력의 기쁨과 슬픔》 Chapter 8. 목표하지 않고 이루기

과외 사이트에 프로필을 올린다고 기다렸다는 듯 수강생이 들이닥치지 않는다. 채용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린다고 내가 좋아하는 기업이 바로 나를 찾지 않는 것처럼. 잘 매만진 이모티콘보다 대충 만든 이모티콘이 더 감각적인 평가를 받는 시대다. 아무렴 열심히 하면 눈에 띄는 성과가 조금씩 나올 수 있겠지만, 기대처럼 나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결과에 연연하며 그간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보다 만들어둔 콘텐츠를 사랑하되 집착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법이겠지.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무언가를 이루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더 신선한 밥을 먹고 덜 위험한 곳에서 눈을 붙일 수 있겠지. 그러니 모든 업적은 위대한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예전에는 이루는 사람이 그저 사는 사람보다 대단하다고 착각했지만, 지금은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생을 유지하는 과정을 버티는 사람 모두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인디 가수는 조회 수에 연연하지 않고 밥을 먹으며 드문드문 음악을 게시한다. 그녀를 바라보면 부끄러워진다. 글을 배웠다는 욕심에 자꾸만 성과를 이루려고 조급해하지 않았나. 목표를 이뤄도 만족하지 않고 금세 더 큰 노력을 하기 위해 다짐하지 않았나.

책은 '어떤 목표는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달성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다른 글보다 더 힘겹게 쓴 글이 조회 수가 낮다고, 용기 내어 말한 유머에 사람들이 웃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종일 토익을 8시간 공부한다고 해서 갑자기 몇 백점이 쉬이 오르지 않는다.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면 차라리 자막 없이 미드를 몰아보거나 회화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토익의 근처로 살살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토익이 2주 남은 이 시점에도 토익 책을 펼쳐보지 않는다. (음?) 누군가 내 가치를 알아봐 주지 않아도 그저 묵묵히 동화책을 읽을 뿐이다. (음!) 이 모든 게 자양분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재밌기 때문이다. 토익보다 드라마가 재밌고, 가끔은 글을 쓰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게 재밌다. 그러다가도 책을 읽는 것보다 영화가 당기는 날이 있다. 어떤 일은 가만히 두어야 이루어진다. 무언가를 만들고 "당장 이걸 봐!"라고 소리 지를 게 아닌, 나는 이걸 열심히 만들었으니 누군가 알아주겠지, 이제 노력 끝! 이라고 외칠 때다. 그러니 이 글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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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ears ago 

작가님 아직 젊고 시간은 많기에 그 노력의 결실이 곧 이루어질 거라 믿어요!!

 3 years ago 

제가 너무 조급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책을 내고 묻힐까봐 ㅠ_ㅠ 천천히 기다려야겠어요. 정말 오랫동안 고맙습니다, 파치아모 작가님! 늘 응원하는 거 알죠 저도??

요아님 화이팅 입니다.
묵묵히 가는게 사람살이 같습니다.
뭔가를 이루는게 아니라 이루려고 그렇게 가는거 사람살이 같아요.

 3 years ago 

고맙습니다. 묵묵히 걷다보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왜 이리 혼자 열심히 하나 싶었는데, @banguri님께서 다정하게 말씀해주시니 더 오래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 의심을 지우게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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