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증명을 보내면서

in Korea • 한국 • KR • KO3 years ago (edited)

시골의 불멍 아지트. 그 물건을 갖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평소처럼 유튜브를 떠다니던 주말 밤, 부동산 경매로 돈을 벌었어요라며 떠들던 사람들이 폰 화면에 서너명 지나가고 나서 자세를 고쳐 앉은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누워서 보던 영상을 앉아서 보다가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 컴퓨터를 켜고 경매 물건을 소개해주는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나서 내 눈 앞에 펼쳐진 경매물건 목록 구경은 너무 재미있었다. 이베이나 옥션이 처음 등장하여 노트북이나 대형TV를 입찰가 1달러부터 시작했던 이벤트에서 느꼈던 것처럼, 부동산 경매의 입찰시작금액은 매력적이었다.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그 물건은 내가 갖게 될 물건이었었다. 온전한 한 채가 아닌 부동산 지분에 대한 경매라서 하자가 있고 그만큼 쌌다. 주식을 봐도 잡주가 먼저 보이고 코인을 봐도 잡코인이 먼저 보였기에 경매 또한 하자 있는 싼 물건이 계속 눈에 밟혔다.

평일에 시간이 많은 지인에게 인감과 위임장, 입찰보증금을 맡겨두고 경매를 부탁했다. 구미 선산읍의 논 100평, 구미 도량동의 15평 아파트, 대구 쪽방촌의 20평짜리 불법건축물 등 패찰이 3건이 넘어가고 추가로 입찰할 물건을 3개 정도 예약해둔 무렵에 그 물건은 내게 왔다.

아마 이 물건을 낙찰받지 않았다면 경북 포항, 왜관, 경남 함안, 대구 공단입구, 부산 서구 등등에 위치한 20년째 버려진 개발택지, 10년째 보상문제로 시끌벅적한 땅, 시골 산그늘 아래 땅, 낡은 20평짜리 아파트 1층 물건, 산동네 골목집 등을 순서대로 입찰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낙찰 받은 것은 경북 모처의 100평짜리 땅의 지분 30%. 약 30평짜리 땅을 갖고 나머지 70평의 땅 주인을 만나서 내 땅을 사가든지 당신 땅을 나에게 파는 게 어떠냐고 묻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수소문하여 알아낸 연락처로 전화하였으나,

'지금 당장 돈이 없어서 당신이 가진 지분을 인수할 수 없다, 추억이 담긴 땅이라 내 지분을 당신에게 팔 수도 없다'

라는 대답만 돌아왔을 뿐.

이리저리 알아보니 공유물 분할 소송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상대방에게 협상을 표현하는 내용증명을 두어번 보낸 후에 소송을 걸면 된다고, 판결까지 약 15개월이면 된다는 어려운 내용을 '엄청 쉽게'이야기 하는 사람들 덕분에 인터넷 우체국을 먼저 찾아본다.

긴장감에 쿵쾅거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천천히 '안녕하십니까. 저는 2018타경.....'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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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결과 있기를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노력한 만큼 보람이 있겠지요^^

고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매듭이 지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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