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정의관 : “내 어찌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 줄 수 있으랴! 나는 각자에게 나의 것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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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니체의 정의관이 잘 드러난 구절을 번역했습니다. 플라톤과 기독교 이래 유지되어 온 서양의 정의관(꼭 플라톤 자신의 것은 아닐지라도)을 철저하게 전복하는 주장입니다.


“선한 자들과 의로운 자들은 나를 도덕의 파괴자라 부른다. 내 이야기가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
너희에게 적이 있다면, 악을 선으로 갚지 말아라. 그건 적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일이니까. 그 대신에 적이 너희에게 뭔가 선한 일을 했음을 입증하라.
그리고 수치스럽게 만들기보다는 차라리 화를 내라! 또, 너희가 저주를 받을 때 축복하려 들지 말라. 맘에 안 드는 짓이다. 차라리 얼마쯤 함께 저주하라!
너희에게 커다란 불의가 하나 닥치면, 다섯 개의 작은 불의로 재빨리 응수하라! 혼자서 불의에 억눌린 자는 보기에 끔찍하다.
이미 알고 있었는가? 나누어진 불의는 절반의 의로움이다. 그리고 불의를 짊어질 수 있는 자는 불의를 손수 감수해야 한다!
작은 복수는 전혀 복수하지 않는 것보다 인간적이다. 그리고 위반한 자에게 벌이 정의와 명예가 아닌 이상, 나는 너희의 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불의를 인정하는 것이 의롭다고 고집하는 것보다 고귀하다. 특히 자신이 의로울 때는. 다만 그럴 수 있으려면 충분히 부유해야 한다.
나는 너희의 차가운 정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너희 심판자의 눈에서는 언제나 사형 집행인과 그의 차가운 칼날이 보인다.
말하라, 두 눈을 뜬 사랑인 정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모든 벌뿐만 아니라 모든 죄까지도 짊어지는 그런 사랑을 내게 고안해내라!
그렇다면 재판하는 자를 제외한 모든 이를 방면하는 그런 정의를 내게 고안해내라!
이 말도 듣고 싶은가? 철두철미 의롭기를 바라는 자에겐, 거짓말조차 인류애가 된다.
하지만 내 어찌 철두철미 의롭기를 바라랴! 내 어찌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 줄 수 있으랴! 나는 각자에게 나의 것을 준다. 이것으로 나는 충분하리라.
끝으로, 내 형제들이여 은둔자에게 불의를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은둔자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은둔자가 어떻게 보복할 수 있겠는가!
은둔자는 깊은 우물과 같다. 그 안에 돌을 던지기는 쉽다. 하지만, 말하라, 돌이 일단 바닥에 가라앉으면 누가 돌을 다시 끌어올리려 하겠는가?
은둔자를 모욕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미 모독했다면, 그렇다면 그를 죽여버려라!”
― ‘독사에 물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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